원고 투고
chevron_right부대표님이 보내준 에베레스트 등반기입니다.
이 글은 돌고래님이 2008년 01월 28일 15:47 분에 작성했습니다. 총 882832명이 이 글을 읽었습니다.

2007.12/13일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까지
09
35분경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비행시간 7시간 15분 시차가 3시간 15분 현지시각 13:50  비자 발급을 마치고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 가이드 린지 라마가  마중 나와서 목에 노란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정말  원정대 같았다

15 30 5성급인 하얏트 호텔 체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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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4일 카트만두-루크라-팍딩(2,600미터
05 45분 호텔 출발 국내선 공항 도착후 공항에서 빵으로 아침식사  08:30 출발하니 왼쪽좌석이

히말라야 산맥이 잘 보인다길레 우리 일행은 왼쪽으로 앉았다 

20인승 경비행기인데 여승무원도 있었다.무지 이뻤다 ㅎㅎㅎ 사진도 같이 찍었다 좋아서 입이 찢어질뻔 했다

루크라공항(2804미터)에 무사히 도착 후 공항아래쪽 롯지에서 차에 우유를 탄 밀크티

한잔씩 마시니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색다른 맛이었다

이 밀크티를 정말 물리도록 마셨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면 야크(들소)냄새가 날정도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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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5일 팍딩에서 셸파의 본거지 남체(3,440미터)
출렁다리 몇 개를 건넌 후 남체로 올라가는 능선길에 접어들었다
그처럼 해발 3000m를 넘어서면서 호흡곤란 등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곳이 이 능선 고갯길이란다.

따라서 천천히, 쉬엄쉬엄 발을 떼어 놓으면서 고소증도 예방해야하는데

우리 일행(박평기고문님,이명선 유세중)은 평지나 다름없이 걷는 것이었다 

난 킬리만자로에서 고소를 격어봤기 때문에 나만 천천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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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입구 오른쪽 언덕이 바로 남체시장이 열리는 장소였다. 오늘이 토요일 남체 시장날이다.

그래서 올라올때 보니 많은 사람들이 야크에 짐을 싣기도 하고,

카고백 2~3개씩(카고백 1개가 약 30킬로 무게임) 지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남체시장에 장사하러 올라오는 사람들 이었다.

그들은 카트만두쪽, 멀리는 인도쪽에서 장날에 맞추어서 짐을 날라온다고한다.

한편 티베트 쪽에서도 히말라야 높은 고갯길을 넘어서 장날에 맞추어 넘어온다고 한다.

우리 네팔있는 동안 차마고개란  KBS스페셜에서 방송 했다는 애길 들었다

그들은 밤이 되면 진열해둔 상품들 옆에서 노숙하며 지낸다고 하니,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가 몹시 궁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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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마을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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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6일 남체- 쿰중(3,780미터)-캉주마(3,550미터)까지

원래계획은 오전에 고소적응 휴식후 오후 산행시작인데

가이드와 상의후 아침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이날부터 우리의 일정은 수시로 바뀌게 되었다 
어제 저녁 쿰중까지만 가는 한국팀들 롯지에 놀러가서 주는 소주가 하도 아까워서

이명선회원과 먹은것이 영 아닌것 같다

고소 때문인지 속이 메스꺼웠으나 억지로 책임량은 소화했다

  

남체의 샘물은 너무나 콸콸 솟아올라 많은 사람들의 생활용수를 해결하고도 남을 양으로 보였다.

그 샘물이 흐르는 도랑의 양옆에서는 마을주민들과 트레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해발 3720 미터의 샹보체 비행장 옆에 도착 원래 샹보체 비행장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언젠가 일본인 여자 트레커가

에베레스트 뷰호텔에 투숙하기 위하여 비행장에 내렸는데 3000여 미터의 고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소병에 걸려

의식불명이 되었다가 결국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3000미터 아래쪽 비행장터를 물색하다가

지금의 해발 2800미터의 루크라비행장을 건설,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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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에베레스트을 등정한 힐러리 재단에서는 쿰부지역에 발전소를 세워서 전기가 공급되고 있고,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이하여 같은 재단의 도움으로 쿰부지역 출렁다리는

모두 새로이 높고, 크고, 튼튼하게 교체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쿰부지역은 힐러리 재단의 혜택으로 다른 지역에 비하여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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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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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마을을 지나 캉주마(3,550미터)에 도착

롯지 아이들이 정말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잘 따랐다

씻지를 안해서 그렇지 정말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롯지에서 바라다본 아마다블람(6,865미터)이 환상이었다

어젠가는 아마다블람도 갔다 와야지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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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7일 캉주마-탕보체(3,860미터)-디보체(3,820미터)
목적지까지는 길고긴 깔딱고갯길로서 고소증 발생 우려지역의 하나다

이곳의 주요한 땔감인 야크똥을 말리는 광경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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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에 올라서니 불교탑이(라마교) 앞에 우뚝 솟아있고, 왼편 언덕 쪽에 불교사원이 크게 성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여기 사원은 오래 되었으나 누전에 의한 화재로 소실되고 1995년 새로이 신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 에베레스트와 아마다블람이 환상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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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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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50분 디보체에 도착 너무 일찍온거 아닌가? 점심을 간단히 라면으로 먹고 휴식

다들 산행이 신선놀음이네 .고소도 아무것도 아니네 하는데

내가 조금만 기다려봐 4000미터 올라가면 다를거라고 했다

이곳은 해가 4시면 지는데 해가 지자마자 기온이 영하로 곧바로 떨어진다

이 긴긴밤을 뭘하고 지내지?

우린 이날부터 메인가이드인 린지라마를 붙잡고 처음에는 건전하게

산에 대해서 더듬거리는 한국어지만 애기를 나누었다 이날부터 메인가이드는 우리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야만 했다 ㅎㅎㅎ

~~~~~~그래도 심심한걸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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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8일 디보체-페리체(4,240미터

라마교의 탑이다 사방으로 눈을 그려 넣었다

선과악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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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향해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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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황량한 대지를 난 아무 생각도 없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걸었다

무엇을 얻고자 난 이곳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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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19일 페리체(4,240미터)에서의 고소적응
오늘은 고소적응을 하면서 모처럼 쉬는 날이다. 한국에선 대통령선거가 있는 날이기도 하다

모처럼 맛있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페리체 리(해발 4,700미터)까지 고소적응을 위하여 오르기로 했다

역쉬 박고문님.이명선 두분이서 가이드(이름 안까일라)를 몰면서 4,700미터까지 가기로 했는데

어디서 그런힘이 나는지 5,200미터까지 그냥 동네 한바퀴 돌듯이 갔다 오는거였다

가이드 왈 "코리아 넘버원" "스트롱맨" 그말에 우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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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의 아마다블람을 비롯하여 캉데가, 탐세르크, 아일랜드 피크 등이 동북, 동남쪽으로 늘어서 있고, 페리체 남쪽으로는

촐라체, 토보체 등 6000여 미터의 산군들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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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고소증세 없느냐고 두분에게 넌즈시 물었다

아무 이상 없단다 근데 왜이리 내마음이 불안하지? 고소증세가 와야 하는데 정말 이사람들 고소체질인가?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스쳐갔다 난 킬리만자로(5,900미터) 가서 고소 먹고 생고생을 했는데....

난 속으로 정말 고소체질이 있나보다하고 단정을 내렸다

그래서 우린 계획이 급변경 되게 된것이었다

페리체에서 고락셉으로 직행해서 3일 앞당겨서 이왕 네팔 온김에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도 갔다 오자

모두들 이 계획에 환호 했고 메인가이드와 거의 합의까지 했다

모두들 죽으러 가는줄 모르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날밤 9시까지 난롯가에 둘러 앉아

야크똥을 때면서 메인가이드 데리고 네팔의 욕과여자 문화에 대해서 심층있게 취조하듯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대견스러워까지 하면서 우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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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2 20일 페리체(4,240미터)-고락셉(5,170미터) 
우리는 간다~~~~

옛날 T.V 전우란 드라마에서 처럼

모두들 고무되어 출발부터 힘이 넘쳐 났다

어제 5200미터까지 고소적응도 완벽했겠다 우리에겐 두려워 할일이 하나도 없었다

고락셉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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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원래 자야할 로부체(4,910미터)를 지나 고락셉(5,170미터)으로

천천히 걸어 오르던 중 언덕에 에베레스트 등산중 사망한 셸파들의 무덤인 쵸르테가 수십개 흩어져 있었다.

 

근데 이게 웬일 1시간30분정도면 갈줄 알았던 고락셉이 가도가도 나오질 않는거였다

5200미터 넘는 곳에서 오르락 내리락  힘겨운 산행이었다
드디어 마지막 롯지인 고락셉에 도착

저녁을 먹으려고 막 하는데 머리가 "" 심상치 않았다

얼른가서 누웠다 5000미터 이상에선 산소도 50%밖엔 존재 하지 않으니 숨도 제대로 쉴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이명선회원은 그래도 밥을 두그릇이나 먹고 들어왔다 대단한 사람이다

난 나만 고소증세가 있는줄 알았는데 우리 일행 모두에게 고소증세가 한꺼번에 온것이었다

모두들 숨을 제대로 쉬질 못하니 잠은 잘수도 없고 얼마나 뒷골이 땡기는지 정말 죽을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서로의 숨소리를 확인하면서  뜬눈으로 지내야만 했다

숨소리가 안나면 죽은 거니까

내 숨소리가 나다가 안나니 이명선회원이 확인한다고 벌떡 일어나다가 오히려 머리가 더 아파 고소가 심해지는 일도 있었다

그 고통의 시간은 왜그리도 안가는지

내려와서 들은 애기지만 고산에서 생활하는 포-터라고 하여 고산증에 걸리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구라도 영양섭취가 부족하고, 너무 피로에 지치고 추위에 노출된다면 고소증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2007
12 21일 고락셉칼라파타르(5,600미터)-베이스캠프(5,400미터)-페리체(4,240미터)
뜬눈으로 새운 우리일행은 03시에 일어나 간단한 스프를 먹었다

0410분 출발 한시간쯤 올라가는데 왜이리 손발이 시리고 춥던지

스틱을 손에 쥐고 갈수가 없어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스틱을 질질 끌면서 한발한발 올라갔다
우리 일행은 이미 고소증에 걸려 정말 한발한발이 천근만근의 걸음이었다
정말 대단한 정신력인거 같다

드디어 칼라파타르 정상
에베레스트의 좌측능선 봉우리와 우측의 롯체능선 일부 및 눕체 봉우리는 흰눈에 덮여 있으나 에베레스트 정상엔 눈이 바람에 날려가서인지 많은 부분이 검은 바위상태로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푸모리(7,145미터)가 바로 눈앞이다

 

왼쪽봉우리부터 눕체(7,861미터) 가운데 검은봉우리 에베레스트(8,847미터) 오른쪽 로체(8,414미터)

 

누구 눈이 가장 많이 풀렸는지 잘 보시길 ~~~~ㅎㅎㅎㅎㅎ

 

 

 

베이스 캠프(5,400미터)

 

 

 

 

 

베이스캠프 쿰부빙하

 

 

거침없는 하산

우린 고소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한시라도 고도를 낮추는 하산이기 때문에 무리 해서라도 4,240미터인 페리체까지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어디서 그런힘이 났는지 모르지만 하산길은 국내 산행하듯이 내려왔다

그 지독한 고통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으리라

 

 

징징이  2008.01.29 19:01 짝짝짝 잘봤습니다 너무나고생하신것 사진으로만 보아도 느낄수있어요... 몸건강히 다녀오신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