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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가짜신랑은 누구고 진짜신랑은 누구뇨?
고정혁기자2008년 11월 12일 23:36 분입력   총 87952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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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곳에 이름이 광쇠라는 아이가 살았다.
광쇠는 아버지만 계시고 어머니는 안 계셨다. 그리고 나리라는 누이동생 하나가 있었다.
홀아버지가 두 자식을 혼자 키우다가 보니 오죽 힘이 들었겠는가? 벌이는 신통치 않고 자식은 먹여야겠고, 그러다가 빚을 내서 살아가는데, 그만 빚에 빚을 진데다가 이자에 이자가 또한 불어서 그만 빚더미에 눌러앉고 말았다. 결국 빚 때문에 옥에 갇히고 말았다.

쉽게 나오지 못할 옥에 갇힌 아버지를 빼내려고 광쇠는 이웃동네 부자 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머슴 일 년 봉급인 사경을 받아 빚을 갚고 아버지를 옥에서 빼낼 욕심으로 열심히 머슴살이를 하는 사이에 광쇠는 이팔청춘이 되고 잘 생긴 사내가 되어갔다. 참으로 잘생겼다.
하루는 주인이 광쇠를 한밤중에 불러 앉히고 은근하게 말하였다.
“광쇠야 들어라. 네가 알다시피 우리 집 아들 금쇠는 반신불수다. 장가를 가야겠는데, 마침 혼사 자리가 나섰다. 그러니 선을 보여야겠다.”
“참 잘 하셨습니다. 금쇠도 장가를 당연히 가야지요.”
“고맙다. 그런데, 말하기가 좀 무엇하지만 네가 좀 도와주어야겠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아들 금쇠 대신 네가 선을 보아야겠다. 금쇠가 저런데…, 누가 데려가겠느냐?”

광쇠는 머슴을 사는 주제에 거역을 할 수 없어서 그러겠다고 하고 신부 집에 가서 선을 보고 왔는데, 신부 집은 잘생기고 말씨도 분명한 광쇠에 반하여서 승낙을 하였다. 이내 혼인날을 받았고, 하루 하루 차츰 차츰 다가왔는데, 주인이 또 한밤중에 광쇠를 불러서 사정을 하다시피 말하였다.
“또 네가 도와주어야겠구나. 장가까지 가거라. 우리 아들 금쇠 대신에….”
“아, 선이야 본다지만 혼인식에 가짜 신랑은 어렵습니다. 첫날밤을 치르면 영영 부부가 되는데 어떻게….”
“그것은 걱정말아라.”
“그리고 또 제가 지금 머슴 사경으로 돈을 벌어서 우리 아버지를 옥에서 빼드리려고 하는데, 제가 장가를 들면 머슴 사경도 없을 것이고, 아버지가 옥중에 있는데 장가를 든다는 것은 도리상 되지 않고….”
“내 아버지를 내가 빼주면 될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는 신부 집에서 묵는 사흘간 있는 첫날밤을 신부 몸에 손을 대지 않고 고스란히 그대로 있으면 된 것이 아니냐? 사흘 후는 우리 금쇠가 신랑이고. 다 그 여자 팔자지.”
“아, 예. 그렇게 하겠나이다.” 하고 광쇠는 나왔다.

광쇠는 장가를 들었다. 초례(醮禮)를 올렸다는 말이다. 첫날밤 정말 가만히 있었다. 색시 머리를 내려주어야 할 것인데… 곧 족두리를 머리에서 벗어 내려놓고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화촉(華燭)을 손을 저어 끄거나 이불로 바람을 일구어 끄거나. 첫날밤에 신랑은 절대로 입으로 촛불을 꺼서는 안 된다. 안되고말고!
아, 그럴 것이 촛불을 입으로 끄자면 기운이 입으로 빠질 것인데, 정작 기운을 쓸 일과 곳은 따로 있는데 어이 입김으로 기운을 헛되이 쓰랴는 말이다.
아따, 이 대목 설명 하나 되게 어렵네 그려.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그대는 정녕 미성년자로다.

신랑은 목석같이 앉아 있다가 그만 퍽 쓰러져 잤다. 신부가 생각하기를 신랑이 먼 길을 걸어오고 긴장 중에 예식을 치르노라고 고단하여서 그러겠지 하고 눙치고 그냥 한 밤을 고추 앉아 새웠다. 이튿날 밤도 신랑은 그냥 있다가 퍽 꼬꾸라져 잤다.
신부는 소심하여서 그런가, 잠자리를 하지 못할 남자구실 불량이라 그런가, 도무지 궁금하였지만 참는 김에 이틀 밤도 참아 보자고 하고 궁금하고 울분한 마음을 눌러 참고 밤을 지새웠다.
사흘 밤이다.
신랑은 오늘도 꾸어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멀거니 신부를 보고만 있었다.
이러니 신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가더니 비수를 가슴에 품고 들어와서 신랑 앞에 앉아 비수를 겨누면서 용감하게 말하였다.
“신랑, 너 무슨 곡절이 있지?”
“곡절은 무슨 곡절?”
“그러면 신랑 너 병신이지, 고자지?”
“저, 거시기 뭐냐 음…. ”
“이런 답답할 데가 있나? 그것 해? 못해? 아니면 우리 집에 원수를 갚으러 와서 내 신세를 망치는 것이냐? 정 말을 안 하다면 나는 이 비수로 너를 찔러 죽이고 나도 자살할 것이다.”
이렇게 독이 올라 말을 한 신부에게 신랑 광쇠는 말하였다.
“그저 오늘 저녁만 넘기면 당신 팔자대로 살 것이니까 나는 어찌 되었건 오늘 저녁 내 책임을 다 하겠다.”
“이 신랑이라는 자야. 장가들면 신부와 자는 것이 팔자요 책임이지 따로 무슨 엉터리 같은 팔자가 있고 책임이 있다는 말이냐? 참으로 답답하여 환장하겠다. 자, 차라리 나를 죽여 다오, 이 비수로, 콱!”
하고 신랑 손에 비수를 쥐어주면서 자기 가슴을 찌르라고 앞으로 내밀었다.

광쇠는 하는 수 없이 사정을 쭈욱 이야기 하였다. 그랬더니 신부가,
“그럼 우리 집 재산으로, 권세로 당신 아버지, 바로 우리 시아버지 하나 옥에서 못 꺼내줄 것 같소?”
라고 하니, 광쇠는,
“그래도 그렇지 않소. 나는 오늘 저녁만 무사히 넘기면 다 해결이 되고, 당신이야 병신서방하고 살 팔자니까 그렇게 살면 되고.”
그러니까 신부가,
“이런 멍충이가 내 신랑이라니. 나는 당신을 선보고, 당신한테 절하고 시집왔지, 코끝도 보지 못한 그 사람을 어떻게 알고 시집을 왔으리요? 자, 잔말 말고.”
하더니 촛불을 그냥, 그냥 넘어뜨려 끄고 신랑을 그냥 꽉 끌어안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다짜고짜 동침을 해버렸다.

이튿날 주인집에서 신부를 데려가려고 가마를 보냈더니, 신부가 지게 작대기로 가마며 가마를 메고 온 사람을 들고 패버려 쫓아냈다. 신부 집에서 서둘러서 신랑 아버지를 옥에서 꺼내주었다. 이 바람에 신랑 광쇠는 주인과 약속을 못 지켜 주인집에도 못가고 신부 집에서 눌러 살게 되었다.
며칠 후 여동생 나리가 찾아왔다.
“그 주인아들 반신불수라는 금쇠에게 제가 시집을 가겠습니다. 그 집에 가서 은공을 입었으니 나의 몸으로 보답을 해야지요.”
그러니 광쇠는 동생 불행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렇게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자기가 그 집을 망쳐놓았으니 살려는 놓아야겠고, 이렇게 난처할 때 나리는 자기주장으로 서둘러서 그 주인 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가 보니까 신랑이라는 금쇠는 최근 일로 충격을 받아서 그만 목숨이 까딱가딱 넘어가고 있었다.
신부 나리는,
“네 목숨 떨어지면 나도 죽는다”
하고 비상을 물에 타서 머리맡에 항상 두었다.

하루는 나리가 병신 남편 수발하느라고 고단하여서 그만 깜박 잠이 들었는데, 신랑 금쇠가 목이 말라 일어나서 보니까 각시는 자고 있고 마침 머리맡에 큰 대접이 있어서,
“아이구, 우리 신부는 자상하기도 하지. 그래도 내가 목이 마를까 보아서 이렇게 자리끼 물을 떠다 놓았구먼. 내가 먹어야 쓰겠다.”
하고 벌컥벌컥 마셨다. 조금 후 금쇠는,
“어허, 마시고 나니까 몸이 스믈스믈하구나. 몸이 뒤틀리는구나. 핏줄이 울퉁불퉁 솟는구나. 아이구 못 견디겠네!”
하고 마구 뒹굴었다. 그 바람에 자던 나리는 잠이 깼다. 그리고 이상한 짓을 하는 남편을 보고,
“오라. 이제 남편이 죽는구나. 나도 죽어야지.”
하고 비상 사발을 찾으니 누가 먹었는지 하나도 없었다.
누구기는 누구여? 아, 큰일이 났다. 내가 신랑을 결국 죽였다는 말인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자진(自盡)할꼬, 하고 펄펄 뛰고 난리였다. 신랑도 비상국물을 먹고 길길이 뛰고 신부는 비상 국물을 못먹어서 팔팔 뛰고....

가만 가만. 신랑은 병신이다. 반신불수다. 기동도 못하고 거의 누워있었다. 그런데 길길이 뛰다니…. 그러면 팔다리가 다 성하다는 말이 아닌가?
신랑은 어려서 몸에 좋다고 녹용을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감당을 못하고 반신불수가 되었던 것인데, 나리가 먹고 죽으려던 비상물이 뜻밖에 명약(名藥)이 되어서 거뜬히 신랑 병을 낫게 한 것이다.
이런 기적을 무엇이라고 하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인가?
죽을 자리가 살 자리인가? 천생연분으로 짚신짝도 짝이 있다는 말인가?
그후 광쇠와 열혈신부(熱血新婦) 내외, 금쇠와 나리 내외는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엊그저께 죽었다고 나에게 부고가 왔는데, 워낙 바빠서 그만 가지 못했다.

이것은 1999년 종로문화원에서 간행한 <종로구비설화> ‘아버지를 위하다 대리 장가간 아들.’ 이야기다.
뒤로월간암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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