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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의 간병기 - 도움주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
고정혁기자2009년 02월 06일 17:48 분입력   총 88338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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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공개 투병을 하니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남편의 상태를 알게 되었고 정보를 주었습니다.
우선 녹즙 관련해서는 문종환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의무기록 사본을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암 시민연대에서 간암과 간경화를 죽을 먹고 고칠 수 있다는 강좌를 하고 있어 남편과 함께 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상 밖으로는 나오지 않으려는 남편 때문에 저 혼자 다녀와야 했습니다. 바보죽요법을 강의중이였는데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여러 암 환자를 처음 만났고 죽으로 삼 개월 만에 나으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간에 있는 암덩어리 크기가 23cm나 되는데 의사 선생님도 자기가 의사 생활하며 본 암 중에서 가장 큰 암이라고 했답니다. 그분은 아기처럼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죽만 먹고 자고 또 죽만 먹고 자고, 아무런 생각 하지 않고 마음을 비웠다 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신기했습니다. 그분에게 개별 시간에 질문을 했습니다.
“무섭지 않았나요?”
“죽을 병이라는데 겁날 게 있나요? 한순간에 다 비웠지요. 놓아 버렸다고 보아야지요.”
“그게 쉽지 않잖아요.”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너무 많이 집착하고 내 생활방식을 강요했고 나 스스로 편하게 해 준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는 방식을 바꾼 것이지요. 생각과 행동을요. 그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니 너무 편한 것을 알았고 죽만 먹고 자고 똥 싸고, 아기처럼 먹고 자고 똥 싸고 했더니 생활이 단순해졌고 모든 잡념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아주 편해지더군요.”
그런데 그분을 뵙고 나니 너무 많은 생각과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 남편도 저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두 권 사서 왔지요.
“여보, 이분이 바보죽이라는 것을 개발했는데 좋대. 우리 따라서 해보자.”
한 삼일 해 보더니 “배고파서 죽겠다. 기운 빠져서 도저히 못하겠다.” 합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암 시민연대에서 암환자를 추적해서 항암하신 분들과 방사선 치료 후 추적 관찰한 내용의 책을 열었습니다.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긴 처음 몇 페이지를 보다 덮고 말았습니다. 절망이 가까이 오니 두려웠습니다.

그 다음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시는 분인데 어느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상태를 알려 달라고 했고 필요한 것을 구해 주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욕심이 났지만 차마 욕심나는 것을 말하지는 못하고 여기서 구하지 못한 산마와 산더덕을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날 그분이 산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저기, 이런 일이 처음이라 참 신기해서 전화했는데요. 산마를 캐려고 넝쿨을 걷고 뿌리를 찾다가 산삼 두 뿌리를 발견했어요.”
“어머나! 좋으시겠어요.”
“아뇨. 이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를 부탁해서 마를 캐다 발견했으니 당연히 임자는 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보내 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넋이 나갔습니다. 그분은 거듭 이것의 임자는 마와 더덕을 캐려고 왔다가 캤으니 당연히 임자가 우리 것이라고 합니다. 일단 주소를 문자로 찍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지요.
“여보, 살다가 이런 일도 다 있네. 산삼 캐고 약초 다루는 카페 있잖아. 그곳 주인장이 산삼을 캤는데 보내준다고 하시네. 당신 먹으라고.”
“정말로? 아니 그리 고마운 사람이 있나.”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주소는 문자로 보냈는데 어떻게 하지? 우리는 돈도 없는데….”
남편은 심각해졌습니다. 어찌해야 하나.
그 다음날 택배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건너편에 들고 온 상자를 보자 싸늘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게 산삼이 든 박스였습니다. 산삼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더군요.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산삼을 모셨습니다. 이리 귀한 삼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보내 주셨으니….
남편과 산삼 먹는 방법과 먹는 전후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보고 나서 하루는 죽을 먹고 하루는 물만 먹고 드디어 삼일 째 귀하게 모시던 산삼을 떠온 약수로 씻고는 이른 새벽에 남편이 먹었습니다.

산삼을 하나 먹는데 새벽 네 시부터 시작해서 아침 아홉 시까지 천천히 산삼 한 조각씩을 물이 되게 해서 삼키고 또 삼켰지요, 방안에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향이 가득 차는데 마치 천상의 향기인 듯했습니다. 남편은 다 먹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눈을 뜨며 첫마디가 이상하다 합니다. 뭔가 머리에 무거운 것이 가득했는데 개운하고, 눈이 침침했는데 다 없어진 기분이라며 무척 맑고 좋다 합니다.
나는 방안의 향에 취해 혹 밖으로 새어 나갈세라 꼭꼭 가두고 문도 조심해서 열지 않았습니다. 그 향기는 일주일 동안 방 안에 머물다가 사라졌는데 어찌나 아쉽던지요.

산삼을 먹고 난 뒤에 변화가 생겼지요. 남편의 검푸르던 입술색이 분홍빛으로 밝게 바뀌고 얼굴도 평화롭고 마치 아기와 같습니다. 피부도 말할 수 없이 좋아지고 발의 무좀도 없어졌고 손이 갈라지고 터져 거칠었는데 그런 것들도 사라졌습니다.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음으로 받은 큰 선물 덕분에 살면서 가장 행복한 날이 그 날들인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구름을 타고 있는 듯 했습니다.
남편은 날마다 노래했지요. 그리 고마운 사람도 다 있네.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까? 당신이 나쁘게 세상을 살지 않았나봐. 그래서 하늘에서 도와주시는 게 아닐까?
행복하니 모든 병마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마운 분을 만나러 가자고 했습니다. 충청도 청주 인근에서 만나 초정 약수터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산행을 하기로 했지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서 약수를 마시곤 다리가 뻣뻣하고 이상하다고 합니다. 급한 대로 다리를 주무르고 나니 괜찮다 하여 산행을 했습니다. 산에 가서 약초와 산삼에 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듣기도 하고, 또 저에 대해 칭찬을 하시는 데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저는 풀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분은 약초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는데 다 모르겠더군요. 그냥 헛똑똑이 노릇이지요. 녹즙에 대한 확신이 깊어 갈 때였고 그분은 다려먹는 약과 버섯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상황, 능이, 차가버섯에 대해, 또 겨우살이는 어느 것이 약효가 있는지 등 온갖 약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풀꽃 하나도 귀하고 귀해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약초라고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뜯지를 않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남편이 먹고 있는 약이 레가론인데 이리저리 알아보니 엉겅퀴 전초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부지런히 엉겅퀴만 잔뜩 뜯었습니다.

그때는 산삼에 대한 이야기도 보약이나 산청목에 대한 이야기도 다 잊어버리고 오직 엉겅퀴 이외는 관심이 없었지요. 그분 따라 가서 자루 하나 가득 엉겅퀴를 채우고, 또 한 자루는 짚신나물과 질경이를 채워 개선장군마냥 하산했습니다.

돌아와 식당에서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데 그때서야 남편이 입을 엽니다.
다리가 이상해. 다리를 보여 주는데 정맥이 다 튀어나와 보기만 해도 하지정맥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다가 벌통을 본 기억이 있어 급히 생수통을 하나 가지고 가서 부지런히 벌을 잡아 남편 다리에 수십 군데 벌침을 놓았지요.

갑자기 하늘이 노랗습니다. 이건 아니야 어떻게 이런 일이 아직은 아니야 벌써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한순간에 절망의 늪에 빠진 졌는데 바로 앞에 있는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니 그저 땅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보았던 희망과 생명의 줄이 한순간 탁하고 끊어져 버린 것 같아 처음으로 속으로 울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세 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의 불안한 모습에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속으로만 삼켰지요.
‘오 하느님 아직 안 됩니다 벌써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맥류가 터지면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잘못하면 식도정맥류도 터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다행히도 벌침을 맞고 30분이 지나고 뻣뻣했던 다리는 부드러워졌고 무사히 집으로 올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부릅니다.
“여보 나 좀 봐. 여기 공 같은 게 튀여 나와 있어.”
그때는 잘 몰랐는데 후에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나니 서혜부 탈장이 진행 중이었던 겁니다. 꼭 골프공만한 것이 콕 불거져 있었지요.

산삼으로 인한 좋은 변화로 그동안 여유로웠던 마음이 갑자기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경희대 한방병원에서 간암 환자들을 치료 해준다고 했다던 얘기가 생각나 급한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남편의 상태를 물어 봅니다. 병의 진행 시기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등.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서혜부 탈장을 먼저 치료한 후에 전화를 하라고 합니다.

다시 암센터로 뛰어가니 다른 의사 선생님을 불러 만나게 주선을 해줍니다. 선생님이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는 데 다른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그대로 방치하며 살이 썩어들어 갈 수도 있고 얇은 막 같은 것이 찢어져 제 기능을 못해서, 또는 소변을 감당 못해서 참을 때까지 참았다가 수술을 하게 되지만 결국 아파서 오게 될 거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살이 썩어간다고? 머릿속에는 온통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한데 일전에 암환자지원센터에서 있다던 강의가 생각나서 남편에게 가자고 했습니다. 김태식 소장님의 강의가 끝나고 개인 면담 시간에 남편의 성격과 상태 등을 보시더니 “아 힘들겠다. 5개월에서 일 년을 보면 편할 거야.”하십니다. 아랫배도 좀 문제인데 심각하다고요.
앞이 캄캄해서 돌아서니 저쪽에 있던 남편이 다가옵니다. “나 괜찮다지?” “응. 앞으로 십 년은 까딱없대.”

그런데 갑자기 힘이 솟구칩니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보고 들은 것이라곤 절망뿐인데, 의사도 잠시라고 하는데…. 오기가 생겼습니다. 한번 해보자. 겁먹지 말자. 죽음의 문턱이라고? 웃기지마. 뛰어넘을 거야.
남편은 먼저 집으로 들어가게 하고 불도 안 켠 어두운 빈 가게로 들어가 혼자 처음으로 눈물을 쏟았습니다. 너무 불안하고, 남편이 아깝고, 이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온몸이 바늘로 찌른 듯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저렸습니다.
나 어떻게 해.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요. 울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만 울자. 다시는 울지 않을래. 흘릴 눈물을 아껴 남편 살리는 데 기운을 보태자. 이제 나는 약한 여자가 아니야. 난 어미고 각시이고 며느리이고 이제 집안의 가장이다. 모든 것은 현실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했습니다. 남편 중심에서 이제는 나를 중심으로 하기로.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했습니다. 그 사이에 남편은 아랫배가 나날이 불러왔고 서혜부의 탈장도 점점 커져만 가고 하지정맥류도 더 굵어지고 울퉁불퉁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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