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 투병수기
김경희의 간병기 - 위기를 넘기고
고정혁기자2009년 03월 11일 14:12 분입력   총 880924명 방문
AD

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바꾸니 두려울 것이 없어집니다.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망설이던 마음이 이제는 확신하고 실천하기로 결심이 굳어졌습니다. 보리를 심어 즙을 내어 먹는데 여름에 심어서인지 냄새가 강해 남편이 잘 먹으려 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하루에 꼭 한 잔씩 마시고 일단 피를 맑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연근은 복수를 내리고 소변과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저녁이면 한 잔 즙을 내어 마시고 잠자리에 들게 하였지요. 밥은 유기농으로 여덟 가지 곡물을 넣어 지어먹었고 반찬은 채소 샐러드와 생야채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마음과 말을 바꾸어 나가기로 남편과 약속했습니다. 화를 잘 내던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저와 눈을 맞추고 웃기로 했지요. “눈 뜬 아침, 행복합니까?” 그럼 저도 웃음을 머금고 “네.” 대답합니다.
일어나면 녹즙 한 잔을 마시고, 밤꿀 한 숟가락 떠먹고, 겨우살이 달인 물을 데워 마시고 알로에 한 잎을 과일처럼 깎아 남편과 나누어 먹습니다.
아이들은 “오늘은 희한하네”하며 아빠를 보고 신기해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로, 남편은 산으로, 저는 제 일터로 씩씩하게 출근합니다. 각종 즙과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늘 바라던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복수의 양이 눈에 띄게 줄었지요.

어렵게 구한 보리밭을 제가 바빠서 못 돌보자 남편이 팔 걷고 나서서 거두어 옵니다. 한 고랑을 심어놓고 보름이 지나면 거두어 먹고 또 한 고랑 심고…. 보리싹이 화학약품의 독과 수은의 독까지 풀어준다고 하여 열심히 심고 거두어 짜 먹습니다. 자라나는 보리는 자꾸 베어가니 이상했나 봅니다. 땅을 빌려주신 분이 왜 심느냐고 물어보십니다.
남편이 간암이며 여차여차 사정을 말씀드리니 한 고랑을 더 주시면서 채소도 심어 먹으라고 하십니다. 보리가 자라기 시작하니 정말 빨리도 자라더군요. 양이 많아져서 일부는 잘라 말리기도 하며 두 달을 보리즙에 매달렸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운동도 하고 뛰어다니더니 자신이 생겼는지 갑자기 병원을 가보겠다고 하네요. 서혜부 탈장을 수술해야 한다며 예약날짜에 입원하려고 습관처럼 또 보따리를 쌉니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해 걱정스러운데 남편은 소풍 가는 아이처럼 마냥 좋아합니다. 입원한 날 퇴근 후에 연근즙을 짜서 병실에 가니 아이들은 아빠 위문공연을 한다며 병원 복도에서 그동안 닦아온 웨이브 춤 실력을 선보이며 아빠를 즐겁게 합니다.

다음날 아침, 녹즙을 준비하는 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녹즙을 해오지 말랍니다. 대변검사를 하기로 했다면서요. 그리고 소식을 전하기를 수술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술하기에는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수술이 힘들고, 문제가 되었던 서혜부 탈장이 지금은 그리 심하지 않아 잘하면 자연치유될 수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했답니다.
수술 시기는 기다려보기로 하고 퇴원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약간의 복수는 아직 남았지만, 대장도 이상이 안 보이고 탈장도 그만하면 괜찮고, 남편은 신이 나서 말하는 데 그중 B형 간염이 활동을 멈춘 것 같다고 했다며 의무기록 사본을 떼어 같이 보자고 합니다.

고주파 수술 후에 가파르게 올라가던 병의 진행이 늦춰지고 수술해야 한다던 서혜부 탈장도 지켜보는 것으로 바뀌고 암 수치도 네 배는 떨어지고, 빵빵한 임산부 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감마 GT 수치는 높지만, 간암도 활동을 멈춘 것 같다며 문종환씨는 녹즙과 식이요법 그리고 전체적인 운동법을 이야기해 주었고 기꺼이 수용했지요. 반신반의하던 남편이 이제는 확신을 가지고 합니다.

그러다 또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돼지등뼈를 넣은 감자탕을 해서 줬는데 남편이 너무 먹고 싶어했지요. 그대로 줄 수는 없고 해서 고기를 수육으로 만들고 채소를 많이 넣어 찜을 해줬습니다. 맛있다며 정신없이 먹고 난 남편은 또 해달라고 합니다. 내리 사흘을 먹더니 드디어 탈이 나고 말았지요. 복수가 많이 줄었던 배가 또 불러오기 시작하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임신 육 개월인 임산부의 배처럼 불룩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복수 물리치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팥물 먹기, 조릿대 달여 먹기, 호박 달여 먹기, 아침 일찍 해보기….
복수에는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고 하여 아침에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나서 남편을 발가벗기고 일광욕을 시키며 맨손으로 마사지해줍니다.
종아리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벅지로, 배는 아래로 쓸고, 손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겨드랑이까지 몸 앞쪽 뒤쪽을 해를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부드럽게 맨손으로 전신을 문질러 줍니다. 몸 전체를 골고루 문지르는 데 시간은 아침 9시부터 11시 반까지, 매일 한 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열심히 하니 빵빵하게 차오르던 복수가 잠잠해집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웠지만, 남편을 놓치는 줄 알고 제정신이 아니었는지라 팔이 아픈지 빠져나가는지도 몰랐습니다. 제겐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남편은 그렇게 문질러 주고 만져주면 정말 행복하고 기분이 좋다고 했지요.
이 사건은 남편과 저에게 음식의 중요성을 절실히 일깨워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6월호
추천 컨텐츠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