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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이어 찾아온 암
고정혁기자2009년 03월 11일 14:13 분입력   총 87970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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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식(32)|5년 치매로 투병 중인 아버지(72)에게 찾아온 위암

우리 가족은 단출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저, 이렇게 셋입니다. 부자도 아니고 형제·자매도 없지만, 부모님의 사랑에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철없던 어린 나이에는 부모님 속도 썩여 드렸는데 이제야 너무나도 후회스럽습니다.
작년 말에 어머님을 잃었는데 채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버님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 닥쳐왔습니다. 위암 말기. 치매에 이어 암 판정까지 받고 나니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마저 떠나실까 봐 저는 너무도 두렵습니다. 이 세상에 저 혼자 남게 됩니다.

아버지는 12년 전, 뇌졸중으로 대구 영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하고 퇴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또 한 번의 뇌졸중이 찾아왔습니다. 다시 5년 전 뇌졸중으로 판정을 받았지만, 이때는 뇌혈관성 치매로 판명을 받았습니다. 치매판정을 받을 때 신경과 과장의 얘기로는 빈혈로 뇌졸중이 발병됐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빈혈보조제인 헤모큐를 처방받아 뇌혈관질환약과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1월 치매아버지를 돌보시던 어머니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계속되는 병구완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병으로 심장병, 당뇨병이 있었고, 척추전방전위증으로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까지 걸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어머니는 영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주무시다 저혈당으로 돌아가셔서 그나마 고통 없이 가신 것만은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은 문득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리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병구완을 맡아야 했습니다. 5개월 정도 간호와 식사, 살림을 했는데 그나마 벌이가 끊기니 경제적으로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또 돈을 벌러 나가자니 치매인 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어서 시설을 찾은 곳이 “논공카톨릭치매센터”였습니다. 이곳에 모시고 17일 만에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치매도 부족해서 위암 말기 판정이라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집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암은 찾아내지 못했을 게 아닌가…. 어쩌면 어머님이 아버님을 살리라고 제게 말씀하신 건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번뇌에 빠져버렸습니다.
연세 높고 치매인 아버지를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지금 편안하게 잘 계시는데 담당의사 말처럼 ‘식사 잘하시고 증상 없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결론이 도통 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암으로 고통받다 떠나보낸 분들께 자문했지만 한결같은 대답은 “생명연장을 몇 년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대로 장기를 팔아서라도 해드려라, 하지만 그렇지 않고 한 두 달 연장이라면 치료로 고통만 받을 것이다”라구요.
확실한 한 가지는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인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큰 병원, 암센터, 대학병원… 그리고 대체요법 등을 따르기에도 현실은 암담했습니다. 사회생활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고 마지막 일자리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영업용 택시를 한 것이 전부입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습니다. 지금 있는 치매센터도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하여 입소를 하였습니다.
암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시설이 있는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을 수나 있을는지…. 4월 17일 위암 말기(간, 폐 전이) 판정을 받고 절망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어떻게든 희망 한 조각을 잡아야겠다 싶어 조직검사 결과를 들고 대구카톨릭 병원을 찾았습니다. 치매센터 선생님이 간 쪽이 암인지 부정확하다고 하십니다. CT와 다른 기록을 살펴본 카톨릭 병원 의사 선생님도 위에는 암이 확실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간은 좀 더 살펴봐야겠다시며 어쩌면 혈액종일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시는데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치매이신 아버지에게 뭔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당신이 사시는 날까지 지금처럼 고통 없이 사시다 보내드려야 하나, 아니면 수술을 하고 항암을 하고 해야 하나…. 아버지를 더 붙들어 두고 싶은 자식의 욕심을 채우려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고통을 드리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간에 보이는 것이 암이 아닌 혈액종이며 때문에 위암 수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지고도 머릿속에는 끝나지 않을 질문만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 저녁이면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의 처지를 비관하며 소주 한 잔에 잠이 들고 배고픔에 잠이 깨어 찬물에 밥을 말아 김치 몇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곤 합니다. 눈물이 흘러 밥그릇으로 떨어집니다. 예전에 우리 집도 옆집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가득했었는데… 행복했었는데…. 슬퍼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기엔 지금의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간의 전이가 아니라 한들, 과연 치매인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까.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버지가 직접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 그대로의 당신이었을 때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5월. 아버지는 위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에 보이는 것은 암은 아니고, 폐에는 암이 있다고 합니다. 치매가 고마운 때도 있더군요. 아버지의 연세나 건강 정도와 비교하면 회복이 빠르고 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일반인이 암을 알게 되고 받는 스트레스를 아버지는 모르시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걱정보다는 희망을 품어볼까 합니다. 더는 비관에 빠져 아버지를 보며 슬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수술하고 잘 이겨내는 아버지를 위해 저도 힘을 내려고 합니다. 이렇게 몇 자 적다 보니 맑은 정신이 듭니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많은 앨범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발병하기 이전에 부모님과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앨범입니다. 오늘 저녁부터는 술 대신 앨범을 보려고 꺼내두었습니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는 그날까지 아버지를 잘 보살펴 드리려고 합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수고했다, 고생했다며 안아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어린아이가 된 아버지. 두 분 모두 사랑합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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