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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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거름으로 크고 있는 씨앗하나 - 네번째이야기
고정혁기자2009년 03월 13일 13:52 분입력   총 87969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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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귀|아들 간모세포종 4년 투병 중

수치가 올라 퇴원을 하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중에 미용실에 들러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밀었다. 슬픈 마음이 들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나가던 꼬마에게 “아가야, 안녕?”하며 모자를 벗어 보인다. 꼬마는 하규의 모습에 놀라 기겁하며 뛰어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하규와 둘이서 깔깔거리고 웃었다. 모자를 벗어 공중으로 확 띄었다가 다시 받아 쓰면서 장난을 친다.
입원실에서 있다 보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거나 음식을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어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서 받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렇게 밝은 마음으로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잘 견뎌주었으면 하는 것이 이 엄마의 자그마한 바람이다.

학교에 가지 못해 개그콘서트보다 더 재미있는 친구들과 놀지 못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치가 좋으니 친구들을 만나고 오겠다고 하는데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맘이 상할 것 같아 만류하였는데 생각과는 달리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 기분 좋아했다. 어제 친구들에게 학교에 갈 것이라고 문자를 해놓더니 친구들이 많이 반가워했나 보다.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었으면 저 모습으로 학교에 갔겠나 싶으니 또 마음이 좋지 않다.

어린이병원의 아침은 아가들의 울음소리로 시작한다. 각종검사로 인한 채혈과 골수검사,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혈압을 재러 와도 아이들은 겁에 질려서 먼저 울고 본다. 씨디디피를 맞고 아드리아마이신을 96시간 내리 맞는다. 중간에 심장보호제인 카디옥산을 4시간 간격으로 15분씩 맞으면서…. 약이란 양날의 검 같은 것이다. 하여 약을 위해서 약을 더 넣어야 한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있는 중학생 HS는 제 병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고 먹지를 않아 엄마가 애를 태우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그런 것이 무섭다. 구토가 날까 봐 먹지 않겠다고 하여 메스껍지 않은 것들만 조금 먹었다. 뻥튀기 20장 옥수수 조금 바나나 1개 방울토마토 20개 오렌지 반개 가끔 콘푸레이크 조금…. 이 정도가 하루의 식사량이었다.

퇴원하는 날은 같은 병실의 어린 환자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얼마나 기다렸던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준비하느라 바쁘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가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엇을 나도 어쩌지 못해 눈물을 머금는 내 눈을 본다. 그런 어느 날 나에게 주는 다짐을 아이를 향해 다시 한 번….
“하규야 네 병은 너도 선생님께 들었듯이 8-90% 완치시켰고 100% 완치를 위하여 수술 후 항암치료 하는 것 알고 있지?”
“엄마 알아요. 확률이 5%라도 저는 살 수 있고 확률이 0%만 아니라면 1%라도 저는 살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하규야. 봄이 오기 전의 꽃샘추위라고 생각하고 이 추위 잘 견뎌 멀지 않은 어느 날, 이 시기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해 보자.”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던 어느 날, 하규가 갑자기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또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고도 했다. 그러더니 코피까지 흘렸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옆의 아이를 보니 코피가 나도 그냥 평소처럼 아무 솜이나 가지고 코를 틀어막는 것이 아니고 소독약 솜으로 소독하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던 멸균 거즈를 꺼내어 코를 막아 놓았더니 작은 거즈 두 개를 적시고 코피는 멎었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지면 피가 응고되지 않는다고 했고 이때가 항암치료 받고 11일 후면 수치가 떨어질 때라 갑자기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코피가 멎었다. 하규 제 말로는 코의 어느 부분을 누르고 있으면 피딱지가 생기기 때문에 더는 코피가 나오지 않을 거라나 뭐라나 하더니 정말 멎었다.

외래에 가서 현기증과 이명과 코피를 말씀드렸더니 혈소판 수치가 낮지 않아 코피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고 이명에 대하여는 항암제 씨디디피의 부작용으로 청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청력검사를 해 보라 하셨다. 긴장하면서 청력검사를 받았는데 이상이 없었다. 이 약을 투여하고 있는 동안과 끝나고도 어느 시점까지는 일정기간마다 청력검사를 겸해서 해야 한단다.

암을 고치면서 부작용은 없는 약은 만들 수 없을까? 한 가지를 고치면 또 한 군데가 상처를 입으니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다.

신발장에는 각 종목의 운동화를 준비해놓고 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참 오랜만에 아이는 농구화를 신고 농구공을 들고나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뛰다가 들어왔다. 담임선생님 말씀이 축구를 하면 남들 두 배나 뛰고 수비를 보면서도 상대편 골대까지 공을 몰고 갈 수 있는 체력이 있는 아이였는데 하루아침에 웬일이냐고 하셨는데 나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미스터리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저녁을 먹을 즈음 갑자기 병동이 소란스러워졌다. 한 아이는 폐렴이 악화하여 중환자실로 가고 15개월 된 또 한 아이는 집으로 가라는 얘기를 듣고 엄마의 오열이 시작되었다. 누구인들 내일 일을 알 수 있으랴. 먼 길을 가야 할 우리는 너무 먼 곳을 보면 지쳐서 힘이 든다. 오늘만 생각하고 아니면 한 발짝씩만 앞으로 나가야 한다.

항암제를 맞을 때는 1시간에 25밀리 정도의 양이 들어가도록 기계를 조작해 놓았다. 96시간을 맞아야 하지만 중간마다 신장보호제, 심장보호제 진토제와 이뇨제 등을 맞는다. 그 때문에 대여섯 시간이 늦어져 27밀리까지 넣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가 힘들어한다. 1밀리만 더 넣어도 아이는 알아차린다. 얼마나 독한 약이면 1시간에 1밀리가 더 들어가도 힘들어할까? 항암제의 위력을 새삼 느껴본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4차 항암을 하고 나서 CT를 찍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항암을 2차 더하고 종료하고 혹시라도 이상이 있으면 치료방법을 바꾸던지 더 병행하든지 하여 1년까지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청력에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도 아이는 자꾸만 이명이 들린다고 한다. 씨디디피 부작용이지만 생활에는 이상이 없는 정도라는데도 아이가 불편을 호소하니 뇌파 검사까지 했다.

늘 타인의 부러움을 샀던 하규의 혈소판 수치가 21K로 바닥을 쳤다. 다음 외래까지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혈소판 수혈을 하고 가라고 하셔 수혈을 하는데 부작용이 난 것이다. 수혈을 받은 지 5분쯤 지나서 아이는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점점 더 심하게 가렵다고 하더니 온몸이 불난 것처럼 빨개졌다. 아빌을 맞혔지만 한번 솟구치던 두드러기는 얼마쯤 계속 솟아오르다가 멈췄다. 평소에는 정말로 친절하기 비길 데 없는 주사실 선생님들이 하규야 너 불강아지 같다, 불고구마 같다고 얘기하는데 늘 보는 일이고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겠지만, 엄마로서 듣기가 거북했고 선생님들이 미웠다. 내 아이는 저렇게 괴로워하는데….
두드러기는 겉으로 보이는 것은 없어졌는데 집으로 오려고 준비하는 도중에 속으로 난 두드러기 때문에 구토까지 하여 한참을 앉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이 중간고사가 끝나자 집으로 찾아왔다. 1교시만 치르는 시험이었는지 미처 청소가 끝나기도 전에 친구들이 와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점심을 시켜먹고 게임을 하고 놀다가 내가 돌아왔는데도 끝날 줄 몰랐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 준비를 하려니 나가서 영화를 보고 먹는다면서 하지 말라고 한다. 고3이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도 잊지 않고 친구를 위하여 전화도 해주고 또 가끔은 밖에서 만나기도 하고 집으로 와주기도 한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나는 아이의 머리 깎은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가족모임조차도 가지 말자고 하는데 아이는 내가 죄인도 아닌데 꼭 모자를 써야 하느냐면서 가끔은 모자도 벗고 다닐 때가 있다. 제 마음이 그런데 내가 강요할 수만 없어서 어제도 양가에 어버이날 행사에 다녀왔다. 아이의 생각은 엄마가 갈 곳은 빠지지 말고 다녀야 제가 완치되고 나서도 엄마가 왕따 되지 않는다고 갈 수 있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간다고 한다.

뒤로월간암 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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