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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처럼 발견된 폐암, 재발을 이겨내고
장지혁기자2012년 06월 26일 16:08 분입력   총 79413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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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헌(60세) |폐암 재발, 대전 거주

나는 집을 지어 분양하는 건축시행사를 오랫동안 운영해왔다. 그리고 남들처럼 우연히 폐암을 발견했고 재발을 지나 지금은 다시금 건강을 되찾았다. 사실 그다지 투병과정이 대단하거나 요란스럽지 않았는데 폐암이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고 조기에 수술을 받아도 5년 내 50%가 재발하는 악성 암에 속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래서 투병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다른 암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이 있다. 또, 나처럼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암이 이제는 없다는 말에 방심하다가 재발이나 전이에 호되게 당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당시 일을 돌이켜 보면 아내의 감기가 내게는 행운이었다.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고 두통까지 심해져 마나님을 모시고 병원을 같이 갔다. 마침 대전 지역에 내가 지은 병원 건물이 몇몇 있던 터라 의사도 몇몇은 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였던 "하나로 건강검진센터"를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의사는 기왕 온 김에 같이 검사를 해보자고 하여 받은 영상과 검사에서 폐에 점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결핵의 흔적 같지는 않으나 크기가 작고 급하지 않으니 좀 더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내심 찜찜한 마음에 충남대 병원을 방문해서 문의하니 3일을 입원하여 조직검사를 하자는 것이다. 3일이나 입원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병원을 방문하여 PET-CT를 찍었다. 찍고 보니 젖꼭지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점이 보였다. 의사는 아내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 암이었다.

폐암을 확인하고 바로 서울의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초기였는데 담당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로또에 당첨되었다."라는 표현을 하면서 아주 초기이니 큰 걱정 할 것 없다며 수술을 말했다. 얼마 후 전신 마취를 하고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었는지 담당의사는 3일 만에 퇴원을 권유했다. 마음속으로는 항암치료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담당의사는 그런 치료까지 할만큼은 아니니 안심하고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나의 컨디션도 괜찮았기에 그대로 퇴원하였다.
퇴워 전에 담당의사에게 주의 사항을 물어보니 아주 초기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예전처럼 즐겁게 지내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3번째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이때까지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식장산이라는 좋은 산이 있다. 15년 동안 거의 매일을 아침에 일어나서 등산하는 고마운 산이다. 어느 날 변함없이 산을 오르는데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 성령님이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였다. 몸에는 어떤 이상도 문제도 없었고 정기검진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생각하면서 처음 방문했던 "하나로 검진센터"를 방문해서 다시 검진을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담당 의사를 만나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될 때까지 무얼 하였느냐"는 식의 질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정기검진도 잘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삼성병원의 담당의사가 시키는 대로 잘 먹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재발을 한 것이다. 그래서 폐에 물이 차 있는 상황이었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기검진에서는 PET-CT를 찍는데 PET-CT의 가장 큰 단점은 물이 찬 걸 못 찾는다고 했다. 다시 서울의 삼성병원에 방문했다. 담당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재발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다던 의사를 질책하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 때문에 그냥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니 신기하게 밥맛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무 맛도 없는데도 나는 악착같이 밥을 먹었고, 항암하지 않는 날에는 기어서라도 산에 올라갔다. 항암 맞고 온 날은 오후에 집에 와서 보신탕 한 그릇 입에 우겨 넣고 산을 올랐다. 총 6번의 항암주사를 맞았는데, 악착같이 먹고 운동한 덕분인지 큰 부작용 없이 무사히 마쳤다. 다만 몸무게는 10Kg 가량 줄어 있었다. 그 때 줄었던 몸무게가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데 덕분에 몸이 많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한다. 항암주사가 끝나고 나니 폐에 있던 물도 말랐다. 지금은 먹는 항암제 이레사를 처방해주어서 복용중이다.

다른 사람들은 암에 걸렸다면 많이 놀라겠지만, 나는 진단받으면서 암을 받아들였다. 모든 게 내 탓이고, "내가 살아오기를 잘못 살아서 암에 걸렸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삶이 방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먹는 게 일이다."
나는 원래 미식가이고 잘 먹고 잘 잤다. 예전에는 먹는 양도 남들보다 3배는 더 먹었다. 그런데 암에 걸리고는 음식의 양을 반 이상 줄였다. 투병하면서 음식은 자유가 아니고, 제약이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못 먹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없다. 밥도 쌀은 일절 넣지 않고 현미 잡곡밥을 먹고, 현미 쑥떡은 산에 갈 때 도시락처럼 싸서 산에 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건강식품을 많이 먹는 거 같지만, 나는 '음식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일절 건강식품을 먹지 않았다.

아는 지인들이 암이나 건강에 좋다는 것들을 많이 갖다 주지만 일절 먹지 않았다. 믿음이 가지 않아서 그랬다. 그런데 몇 몇 지인이 젤옥시겐이라는 제품을 동시에 선물로 사다 주었다, 같은 제품이 여러 사람에게 오기에 제품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한 달 정도를 먹었다. 항암이 끝나고 나서는 목소리도 갈라지고 등산을 할 때 참으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힘이 남아도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젤옥시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는 매우 에너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번은 지리산에 가서 살라는 사람이 있어서 며칠 지리산에 자리를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몇 백 년이나 살 거라고 집 떠나서 이 고생을 해야 돼.'
그리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산에 가서 좋은 공기 마시는 것이 꼭 산에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이다. 매일 산에 가는데 집까지 산으로 이사를 해야 하나. 이제는 지금처럼 늘 산에 가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정도면 산이 주는 좋은 것들을 모두 취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들이 전화를 하면 대뜸 이런 이야기를 한다.
"좀 어떠세요?"
그럼 나는 호통을 친다.
"야! 이 사람아 살아 있으니까 전화 받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확인하는 거야? 너나 조심해, 이 사람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암은 감기처럼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하다. 암 자체를 잊고 살면 이전과는 또 다른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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