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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고정혁기자2014년 06월 30일 17:10 분입력   총 276059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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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지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든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동네를 산책해서 마을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모습만 보아도 시간을 알 수 있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 많이 도외시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취업 때문인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내면의 궁핍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철학은 종교와는 다른 방법으로 인간 삶의 이유와 방법 등을 연구합니다. 어렵고 애매한 분야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 유수한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론을 토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학문적이지 않지만 재밌는 이야기 정도로 철학을 접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대처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을 찾아본다면 더 지혜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724년에 태어난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지역에서 80여 년을 살다가 그곳에 묻혔습니다.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었는데 현재 지명은 칼리닌그라드입니다. 칸트는 그곳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그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과 과외선생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칸트는 57세가 되어서야 그의 첫 번째 책을 출간하였으며 두 번째로 출간한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는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정신적 토대를 만들었으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다"

칸트가 말한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가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존엄하며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이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성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바로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을 잃었다는 말은 곧 사람이 아닌 짐승이 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의 감정이 이성을 앞지르는 상황에서 하는 말입니다. 분노, 초조, 불안 등등의 감정은 우리의 이성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이성적인 행동을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성적으로 행동했을 때의 결과는 대부분 바른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선택에 앞서서 지금 내 상태가 이성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칸트에 대한 몇 가지 책들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지만 자유라는 개념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오해할 수 있는데 칸트는 자유에 대하여 자율이라는 개념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자율은 사전에서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타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율은 언제나 남을 의식하거나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행동입니다. 칸트의 시각으로 본다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을 위해서 합니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시험을 잘 보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이고, 성형 수술을 하는 이유는 예쁜 외모를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무엇을 위한 행동은 칸트가 보기에 타율적인 행동입니다. 이때 우리는 저 밖에 있는 목적의 도구가 되기 십상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도구로서, 학교의 도구로서 자신의 삶을 잊은 채로 살고 있습니다. 타율적인 삶입니다.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행동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나의 외부의 어떤 것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칸트는 그의 저서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통해서 인간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착한 행동은 어떤 의도도 갖지 않아야 하며 그런 행동이나 생각이 보잘 것 없음에도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 뉴스를 보면 대기업의 대표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외치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 장면을 봅니다. 또 매년 연말이면 전주의 어느 동사무소 앞에 누군가가 돈다발이 든 박스를 놓고 간다고 합니다. 벌써 몇 년 째인데 누군지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칸트는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까요? 칸트는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도덕의 입장에서 누군가는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리고 누군가는 하늘 높이 올린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의 존엄성과 함께 도덕은 땅바닥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뿐입니다. 더구나 암을 진단 받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을 차리라는 우리의 옛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성을 갖고 생활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지배할 때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또 스스로가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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