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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기댈 곳이 있나요
고정혁기자2016년 10월 28일 17:27 분입력   총 673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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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상학자가 “서기 207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여름은 1년 중 절반이 될 것이고 그 중 두 달은 열대야가 지속되어 지금보다 매우 길고 힘든 여름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올해 여름은 정말 길고도 길었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시원한 바람 한 점이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기상학자가 언급한 2070년이면 제 나이가 딱 100살이 되는데 백세 시대라고들 하니 어쩌면 그때까지 살아서 덥고도 더운 여름을 보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 한창 일을 하는 제 또래는 그때는 모두 늙었겠지만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있을 시기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람 중 하나는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앞으로 더 여유 있고 풍요로운 미래가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 부모들 중 한 사람으로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낙관적일 수 없는 현실이 미래의 밑그림일까 두렵고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근래에 몸도 마음도 힘이 없고 무기력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 무감각해지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합니다. 같은 무더위를 겪어도 길에서 마주치는 젊은 사람들의 활기가 나이가 지긋한 분들에게는 드문 것을 보면 더위도 무기력도 나이만큼 먹는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더위도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일까요.

집 앞 노인정 입구에는 크게 “무더위 쉼터”라고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더위를 견디기보다는 에어컨이 있는 노인정에서 한낮 더위만이라도 피해 쉬었다가 가라는 배려입니다. 전기세가 비싸다고 떠들썩하지만 이렇게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다행입니다.

지난 5월 3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조사하여 발표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삶의 질은 거의 꼴찌에 가까웠습니다. BLI(행복)지수라는 것은 삶의 질과 관련된 11가지를 조사하여 각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그 지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힘들게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는가” 하는 항목인데 우리나라는 이 항목에서 꼴찌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항목도 하위권이 많았지만 유독 이 항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는데 누구와 상의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어려움인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믿음이 가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간암 사무실에도 가끔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퇴원을 해야 되는데 비용적인 문제로 퇴원을 하지 못하거나 투병하면서 생활비가 없어서 막막하거나 또는 여러 가지 궁금한 내용이 있는데 속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은 경우 등 다양한 문제로 연락이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암과 투병하는 분들에게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 또 조심하면서 사람을 만나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전화할 사람이 없다면 더욱 힘들고 절망스럽습니다. 암환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면 괴로운데 암과 투병하고 있다면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동병상련”이라는 말처럼 서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9월호를 발행하면 월간암은 120호가 됩니다. 2006년 10월부터 10년 동안 매달 책을 발행하였습니다. 월간암을 보면서 투병하는데 많은 도움이, 또는 위로가 된다는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이 일을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구독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건강관리를 잘하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평생 저희와 함께 가는 든든한 버팀목이십니다.

지난 10년 동안 암환자를 위하여 많은 분야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의료시스템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물리적인 치료 이외에 영양과 마음의 문제도 접근하고 있고 암환자들의 생활과 예후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서적인 문제, 근로자들의 처우, 삶의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맞물려서 암이라는 병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 밝고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면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도 줄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조사한 우리의 생활수준은 암에 걸리기 좋은 쪽으로 발전해 온듯합니다. 그래서 암 발병률 또한 1등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암에 걸린다면 사회의 영향도 막중합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커다란 스트레스에 치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머지않아 큰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의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월간암이 발행되었던 지난 10년은 암환자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우리 사회가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암 발병률이 꼴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암환자에게 암 관련 기관과 병원, 및 시설들이 힘이 들 때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편안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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