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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과 루즈벨트 대통령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16년 08월 11일 17:45 분입력   총 1208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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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창원 | 고려대학교 의학대학교 졸업 뉴욕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역임

유명한 사람의 죽음이나 영향력이 간혹 의학의 역사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죽음이 그러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프랭클린 루즈벨트(1882~1945)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이다. 그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간 미국의 대통령으로 일했다. 그가 대통령직을 시작한 1933년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 있던 때로, 미국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는 뉴딜정책을 시도하여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건져냈다. 1939년부터 시작하여 1945년 결국 연합국의 손을 들어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는 그의 큰 업적 중의 하나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아브라함 링컨 다음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다. 그뿐 아니라 어느 면에서는 연합국의 승리 뒤에 찾아온 1945년 우리나라의 광복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대통령직을 시작한 1933년 이전에는 그에겐 특별한 건강 문제가 없었다. 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시가를 태우기를 좋아하였다. 대통령직이라는 어렵고 고독한 시간은 그의 건강을 갉아먹었다. 시가를 즐기는 그의 습관과 운동 부족이 그의 혈관을 망가뜨렸다. 대통령직을 시작할 때 그의 혈압은 120/80 정도로 정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업무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그의 혈압을 높였는데, 1945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 그의 혈압은 220/130 정도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결국 그는 뇌출혈로 사망했다.

1945년 당시의 의사들은 고혈압을 질병으로 보지 않았다. 신체의 혈관 어딘가가 막혀 있어서 혈압을 높여야만 원활한 혈류를 유지하여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혈압이 오르는 것은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 혈류를 원활하게 하여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상작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치의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높아지는 혈압을 관찰만 했지 적극적인 치료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사망 이후에 의사들은 고혈압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고, 적극적인 약물 치료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혈압은 말 그대로 혈압이 높아진 상태이다. 120/70 정도의 혈압이 정상이라면, 140/90 이상의 혈압을 고혈압이라고 말한다. 젊을 때는 괜찮았는데, 50, 60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올라간다. 실제 고혈압 환자의 90%는 높아진 혈압의 원인을 몰라서 일차성 고혈압, 또는 본태성 고혈압이라고 진단받는다. 10% 이내의 환자에게서 갑상선 질환, 부신 질환 또는 신장 질환으로부터 고혈압이 유발되어서 이차성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원인을 찾지 못하는 일차성 고혈압은 왜 생길까? 가족력과 같은 유전적 요인, 과다한 소금 섭취, 운동부족, 정신적 긴장과 스트레스, 음주 등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힐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세혈관의 막힘이 고혈압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힘찬 심장 박동에 의해 뿜어져 나온 혈액은 대동맥을 거쳐 동맥, 세동맥을 지나 모세혈관에 전달된다. 우리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각각의 세포에는 모세혈관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가 공급된다. 또한 세포에 쌓여있는 노폐물과 이산화탄소는 다시 모세혈관을 타고 나와서 세정맥, 정맥을 거쳐, 간, 폐로 전달되어 혈액은 정화된다. 이 모세혈관은 머리카락보다도 더 가는 통로 (약 8~10 마이크론)이다. 또 모든 모세혈관을 일렬로 이어놓으면 약 10만 km의 길이가 되는데, 그것은 지구를 두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거리이다. 우리 몸의 각 세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많은 양의 모세혈관이 필요한 것이다.

모세혈관의 혈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혈압, 혈액의 점성도(끈끈한 정도), 그리고 적혈구의 상태이다. 혈액의 끈끈한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혈액순환이 더디어질 것은 자명하다. 적혈구는 도넛처럼 생겼는데, 크기는 10 마이크론 정도이다. 때로는 자기 크기보다 더 작은 모세혈관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때는 똑바로 못 들어가고 접힌 상태로 통과하게 된다. 의학 용어에 Rouleaux formation (루로 포메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동전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처럼 원판형의 적혈구가 서로 쌓여서 붙어있는 적혈구 응집상태를 말한다. 적혈구가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모세혈관 통과가 쉽지만, 서로 엉키고 붙어있는 상태로는 모세혈관 통과가 어려워지니 각 세포로의 영양분이나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적혈구의 응집상태가 심할수록, 또 혈액의 점성도가 높아질수록 모세혈관이 막혀 혈액순환이 안 좋으니, 심장은 더 센 힘으로 혈액을 짜주어서 막힌 혈관을 뚫고 각 세포로 혈액공급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상태가 고혈압인 것이다.

대부분의 고혈압 약은 혈관확장제이다. 혈압이 높으니 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압을 낮추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혈관이란 동맥을 말한다. 굵은 크기의 동맥은 근육층이 있어서 혈압약에 의해 혈관이 확장되고 혈압은 떨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모세혈관은 근육층이 없는 단순한 세포층으로 되어 있어서 약에 의해서 확장은 되지 않는다. 결국 고혈압약은 모세혈관은 확장시키지는 못하고 동맥 혈압만 낮추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혈관이 막혀 있어서 혈압이 올라갔는데, 막힌 모세혈관은 그대로이고 혈압이 더 떨어진다면 혈액순환이 더욱 안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고혈압을 약만으로 치료하는 것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는 질병 치료에 있어서 너무나 지나치게 약물에 의존한다. 평소에 아무렇게나 살다가 질병에 걸려도 적절히 약만 잘 먹으면 건강을 회복할 것 같은 착각 가운데 지내고 있다. 질병이 발견되어 무슨 약물을 처방 받으면, 그 약이 아니면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이제는 그 약의 노예가 되고 만다. 질병이 생긴 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되는 문제가 있는데, 그 근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손쉽게 약물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의사의 약물 처방이 지나칠 정도로 과하다. 약은 양날의 검이다. 좋은 약효가 있는 반면, 원치 않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약물을 한꺼번에 먹을 때 상호작용에 의해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혈액의 점성도를 증가시키고 적혈구의 응집력을 높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심한 스트레스, 음주, 흡연, 과도한 육류의 지방이나 단백질 섭취, 고염분, 고당분의 음식 섭취, 운동 부족, 이 모든 것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스트레스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그 영향으로 혈관은 좁아진다. 뿐만 아니라 피브리노젠이라는 혈액응고 물질이 많이 분비되는데, 이는 혈액의 점성을 높여 끈끈하게 하며, 적혈구의 응집력을 높여 혈액을 뭉치게 하며 결국 혈관이 막히게 한다. 심근경색과 그에 따른 부정맥을 유발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의한 돌연사의 원인이다.

우리 조상들은 각 가정마다 약초를 재배하며 가족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으며,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절제된 음식 섭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평소의 건강관리 보다는 문제가 생기면 약을 먹으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떤 치료가 혈관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절식이나 채식이다. 오랜 기간 시행하기 어려우면 단기간 자신의 상태에 맞게 절식이나 채식을 활용해 보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뒤로월간암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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