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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어느 암환자의 하루
고정혁기자2007년 11월 13일 20:46 분입력   총 87992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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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섭 | 식도암. 원발부위 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임파종양을 치료받고 있는 74세의 남자.
 

나의 현실은 요양생활을 하기에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다. 가능하다면 나도 이상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요양생활을 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데 좋은 환경, 이상적인 방법만을 연연하여 아쉬워 할 수만은 없다. 힘은 들더라도 나의 현실을 직시하며 응분한 조건 속에 나의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없다.

나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요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환우 분들이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현실을 떠난 사치스럽고 허황된 꿈은 아예 꾸지도 않고 나에게 주어진 범위 내의 자연요법을 꾸려나갈 생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놈의 식이요법이란 것 너무도 간단하지 않아 골치 아픈 것도 사실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나의 일은 내 혼자서 다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오늘 아침은 당근과 양배추에 생강 약간 가미한 녹즙 한 컵으로 시작했다. 바로 녹즙기부터 깨끗이 닦아놓고 아침 준비다.
아침 식사는 내가 만들어 내가 끓인 청국장에 내가 씨 뿌려 내가 가꾼 브로콜리 새순 한 접시(50g)와, 아내가 해준 생 다시마 데친 것 한 접시(30g), 구운 마늘 다섯 쪽, 열무김치에 멸치볶음과 꽈리고추 3개 그리고 7곡 잡곡밥 60g으로 때웠다. 식후 과일로 사과 하나.
이만하면 호사스런 아침 식사다.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거다.

그런데 약 먹는 일이 복잡하다. 먹어 두어야 할 약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그 많은 가지 수를 한꺼번에 다 돈복할 수도 없으니 약간의 시차를 둘 수밖에. 시차를 두고 어물어물하다간 가끔 까먹는 약도 생긴다.
먹어야 할 약들을 제 때에 스스로 꼬박꼬박 다 챙기는 환자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나의 의식 같은 아침 일정을 마치고나면 얼마 안 되어 간식 걱정이다.

간식을 절대로 안한다는 수기도 읽었지만 나의 경우는 노인성 소식이라 아무래도 간식이 필요할 것 같아 간식은 꼭 챙긴다. 군것질 잘하던 습성의 연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면 또 얼마 안 있어 점심식사 시간이 되어버린다.
또 약 먹고. 또 간식 먹고. 또 저녁 식사하고 또 약 먹고. 뭐야, 하루 종일 먹는 일에 매달려 버리는 것이 암환자의 하루란 말인가? 어쩌다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나? 하루 종일 암에 관한 생각만 하게 된 나의 일상생활이 더러는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득 암과 인연을 맺게 된 지난날들의 일들이 생각난다.

1945년의 봄, 61년 전에 중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때 만나 친구가 되어 반세기가 넘도록 평생 동안 호형호제하며 친한 중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 두 사람이 5년 전 먼저 떠나버렸었다. 암으로. 두 사람이 형제 같이 친했던 것을 증명이나 하려 듯 두 사람 모두 식도암이었다. 나란히 발병하더니 같은 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발병한지 1년여 만에 치료한 보람도 없이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졌던 것이다.

두 친구와의 사별을 내내 못 잊고 가끔가끔 꿈에서 만나곤 했었는데 친구가 아니랄까봐 나 또한 지난해 여름 같은 식도암에 걸리고 말았다. 나마저 식도암에 걸리자 많은 동창생들이 수군대는 것 같았다. 그 놈의 술꾼들, 역시 술 좋아한 한패거리더니 결국은 같은 조가 되었다고. 식도암 발병을 확인하게 되었어도 치료받을 생각은 떠오르지 안했었다. 치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서였다. 결국은 친구들 같이 1년이면 갈 텐데하고. 더욱이 나의 경우는 갑상선 아래에 전이된 임파암까지 생겨 목소리가 잠겨버린 고약한 상태이니 나보다도 가벼웠던 친구들의 초기 식도암과 견줄 일조차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암이 징그럽게도 선명하게 퍼져 있는 식도암 사진을 본 가까운 의사 동창생도 진행이 빨라 해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던 것 같았다. 나 자신도 연말까지는 못 갈 것으로 생각했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에 만 신경쓰고 치료 받을 생각은 아예 안했었다.

사태가 바뀐 것은 딸 때문이었다. 호주 시드니로 시집가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딸이 치료받기를 간청하고 성화였다. 딸아이 말이라면 무엇이던 들어주고 싶어해온 애비 마음이었으니 느릿느릿 치료받는 시늉이라도 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냥 늦장부리며 병원을 다녔을 뿐 치료라던가 고쳐질 것이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었다. 결국은 딸아이가 외손녀 둘을 데리고 귀국했다. 아비 걱정 때문에.

딸의 정성스런 닥달에 이끌려 본격적인 병원 치료를 시작하고 말았다. 딸은 한 달 동안 머물다 돌아갔다.
그 한 달 동안 나도 변해버리고 말았다. 변해도 크게 변했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기로 마음을 바꾸게 됐던 것이다. 눈 감을 땐 갈망정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하고 이왕 치료를 하는 바에야 고칠 수 있는데까지는 고치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오리무중 속에 암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암에 관한 인터넷 서핑도 시작했다. 늙어 침침해진 눈으로 밤늦게까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고행을 자청했다. 그런 나를 보고 걱정이 앞서는 아내는 암이 더 도지겠다고 핀잔에 핀잔을 거듭했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암에 관해서 너무도 무식했고 너무도 불치병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이나 나의 병세가 나의 변한 의식과는 달리 나쁜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 한들 이제 나는 나의 신념을 굽힐 생각도 없거니와 어느 날 내가 쓰러진다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은 정신적 고통도 안 받을 것이고 나의 요양생활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기 시작한 오늘날이다.

돌이켜보면 무척 많은 일들을  겪은 지난 한 해였다.
처음에는 치료 받기를 거부하였었는데 딸아이 성화에 못 이겨 병원 다니기를 제 집 드나들듯이 하였고 숙명에 순응하는 마음으로 병상일기마저 써가며 열심히 치료에 응하면서 지옥 같은 통증들도 겪어낸 한 해였다.
오늘날 성공적으로 2년차를 보낼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참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왔던 것이다.
고마움을 생각할 때에는 거이 종교적 경건함까지 느껴보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외우 노산 정원석박사의 끝 없는 사랑과 베품만은 죽어도 죽어도 못 갚을 것이고 갚아도 갚아도 다 못 갚을 빚으로 되어버렸다.

연초까지 만해도 덤으로 살게된 삶이니 그저 모든 것을 고마워하며 마음 비우고 하루하루를 지내자 라고 다짐 했었는데 2년차로 진입하게 되니 슬며시 욕심이 이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욕심이란 생존율에 도전하여보자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도출해낸 통계인지는 모르겠는데 현재 보편화되어 있는 식도암의 5년 생존율은 20% 정도로 되어 있다.
그나마도 그 20%란  식도암 초기에 발견되어 전이가 없는 상태에서 식도 절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효과적 요양생활을 한 환자라야 5년을 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보다.
나같이 절제수술을 안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0%로 되어 있다. 어느 한 사람도 5년을 넘기지는 못한다는 비정한 숫자다. 더욱 기막힌 일은 3년 생존율도 0%로 되어 있다.
5년은 커냥 3년도 채우지 못 할 것이라는 최악의 숫자로 되어 있다. 그 지긋지긋한 지옥의 통증을 견디어냈고 갖가지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극기심과 자제력을 바탕으로한 자연요법에 힘쓰는데도 한 두 해 속에 죽어 사라져야한다는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싫어진 것이다.

삶에 대한 집착때문은 아니다.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초연해져 있는 나다.
생존율이라는 그 비정한 숫자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오기인 것이다.
이왕 생존율에 도전하는 것이라면 5년 생존율을 뚫어보고 싶다.
느닷없는 돈키호테식 발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5년 생존율을 돌파하는 그 날이 온다면 그것은 바로 이땅에서 모든 식도암환자에게 구원의 날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해볼 만 한 일인 것이다.

"너나 잘 하세요~~"라는 유행어가 있었던 것 같다. 너인 나는 지금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시행착오는 겪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다. 그러기에 환우분들께도 한마디 격려의 말을 올리고 싶다. 환자 스스로가 암에 대한 공부, 치료에 대한 공부를 하셔야 한다고. 가족에게 의지하지 말고 본인 스스로가 공부하고 연구하고 대비할 때 보다 효과적인 치료 결과를 얻을 것이며 치유에 대한 확신도 갖게 된다고.

환우분들 부디 힘내시고 함께 공부들 해나가십시다요!!!

뒤로월간암 2006년 10월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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