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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함께하는 오늘이 더 행복합니다
고정혁기자2007년 11월 14일 14:55 분입력   총 87778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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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오늘 아침 다른 날보다 더 일찍 눈을 떴습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막내가 잠깨어 엄마 하고 달려와 품에 안겨 볼을 부비며 좋아합니다. 아이와 같이 바라본 창밖의 하늘은 높고도 푸르네요.

당신 기억나요? 작년 이맘때 설거지 하다 말고 "나 좀 놔줘요"하며 카메라 들고 뛰쳐나갈 때 조용히 차 운전석에 앉아서 "알았어, 오늘 하루 봐준다."라고 했었죠.
하늘과 맞닿은 듯, 짙푸른 바다 작은 대나무섬 바닷가를 덮어버린 파도에 온통 마음을 뺏겨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다 여기가 어디지 싶어 두리번거렸었죠. 그렇게 당신을 마음에서 눈에서 놓쳐버린 한참동안도 당신을 나를 찾아 헤맸었던 걸 기억하나요?

그렇게 헤매다가 약속도 없는 그 외딴섬에서 마주친 당신의 친구들. 돌이켜보면 이상한 하루였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기도 한 날입니다.

일 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일생동안 겪어야할 모든 일들을 한꺼번에 다 겪으면서 이제와 생각해보면 왜 그전에는 당신 몸이 이상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질 않았는지, 그런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지요.
가끔씩 "소변이 잘 안 나와", "빈혈이 심해", "소변색이 이상해", "내 몸이 좀 차", 다 엄살이라고 생각했었죠.
꼬박꼬박 건강검진받고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까요.

아~ 얼마나 나는 바보였는지요. 결혼하고 당신, 바로 머리가 한웅큼씩 빠졌는데도 아플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나의 무지가 당신을 더 아프게 방치한 것만 같아서 늘 마음 한구석이 저리게 아파옵니다. 단 한 번도 건강에 대해 의심해본 적 없이 너무도 앞만 보고 살아서 미안합니다. 당신이 일하러 배타고 바다로 가고나면 난 당신이 없는 하루를 일년같이 보내곤 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하루가 나에게는 늘 신기하고도 새로운 날인 거, 당신은 모르죠?
당신이 배를 지금까지 타고 있다면 하고 가끔 생각해요. 그러면 어쩌면 당신은 지금처럼 내 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나하구요. 그러나 당신은 늘 행운이 함께 하기에, 아파도 그 먼 타국에 있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네요.
이렇게 우리 가족이 함께 있음에 신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당신은 모를 것입니다.

아플 때 당신곁에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외롭지 않고 늘 즐거웠으면 합니다.
이왕이면 조금만 더 해서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함께 눈을 뜬 하루가 얼마나 따뜻하고 신이 나는지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빛나는지요.
잠잘 때 내게 다리를 턱 걸쳐놓아도 당신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요.
산을 헤매다가 마주친 엉겅퀴 한 잎에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당신은 모르죠?

내가 당신을 느낄때 그렇듯이 당신도 당신마음 가득히 사랑의 햇살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힘들까봐 일찍 자라고 하는 당신, 하루하루가 내 삶의 전부이며 눈뜨고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오늘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내 아이의 볼비빔과 같이, 부드러운 봄바람과도 같이, 늘 피고 지는 꽃들처럼, 지금은 조금은 피곤해도 당신은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당신 아내의 소란스러움이 몸이 아픈 당신에게는 조금은 힘들겠지만 전 이렇게 함께 하는 지금이 너무도 좋아요. 힘들지만 마음이 이렇게 가까웠던 적이 있었던가요?

지금의 이 고통은 신이 짝을 지워주었는데 너무 표현을 안 해서 내려준 벌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감사하렵니다.
당신이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우리가족을 지켜주었듯이 이젠 우리가 당신 옆에서 당신을 지켜드릴께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 우리 아이들은 당신을, 당신을 암이라는 늪에서 반드시 구해 내고야 말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늘 오늘 밖에 없는 당신의 아내 경희가

뒤로월간암 2006년 10월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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