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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이 사는법] Just Like a Woman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
고정혁기자2007년 11월 15일 21:06 분입력   총 87795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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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 진행성위암 3기b 3년 투병 中

딱! 하고 깨끗한 소리.
이게 홈런이구나 싶더니, 공이 날아온 반대방향의 하늘로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방망이를 잡은 양손에 찌르르르한 느낌이 발 끝까지 퍼져나간다. 진행성 위암 3기를 선고받고 8개월 후에서야 시작한 야구!
드디어 첫 홈런을 날렸다.
흠뻑 젖은 야구복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하고 나와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연습실로 꼭 나오는 색스폰 동호회에서 온 것이었다. 지난번 모임에 젊은 사람보다 소리에 힘이 있고, 진도가 빠르다는 칭찬을 들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색스폰을 시작한 지는 1년 4개월째다.
나의 꿈은 마사토 혼다의 Just Like a Woman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이다.

암 판정받은 후 일까지도 그만두고 한동안 정신없이 헤매다가 문득, 더 늦기전에 하고 싶은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암에 걸렸다는 것과 나이를 숨기고 시 야구단에 들어갔다.(미안하다 아우들아. 나이 많고, 암에 걸렸다고 받아주지 않을까봐 그랬다.)
야구는 중학교까지 하다 그만 둔 것이었는데, 다시 야구복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2, 30대 젊은 사람들과 똑같이 훈련 받았다.

암이 발병한 위치도 좋지 않아서 동맥 근처에 자라는 바람에 가끔 피를 토하곤 했다. 암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방안에서 갑자기 피를 토해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서였으니까….
몇 차례에 걸쳐 심하게 피를 쏟고 병원에서 폐활량테스트를 바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폐활량을 좋게 하기 위해 악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 나는 유난히도 악기를 좋아해서 기타, 피아노를 배우곤 했다. 이왕이면 폐활량이 좋아지는 악기를 고르다보니 색스폰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스폰을 멋지게 연주할 정도라면 암이 나을 것만 같았다. 색스폰을 제대로 연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때까지는 살아있을 것 같았다. 건강한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한 항암제 역할을 했음을 나는 확신한다. 이제는 잘 먹고, 잘 웃는다.

지금처럼 되기까지 암이 발병했을 당시 지난 1년 동안의 내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암에 좋다며 꼭 먹어야만 했다. 산삼, 버섯류는 말할 것도 없이 암에 효험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구입을 해야만 마음이 놓이곤 했다. 그때 사들인 온갖 보조제가 아직도 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을 지경이니까….

그러다 책을 보기 시작했고, 암환우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투병생활의 방향을 잡게 되었다.
내게는 암환우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나도 '암이오'하고 터 놓는 순간, 같은 동지로 통한다.
그런 동지들에게 나의 지난날을 이야기해주고, 실수담을 들려주는 만남의 자리는 더없이 행복하다.

처음에 암판정을 받고 힘든 시기를 넘겨야 하는 왕초보 동지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혼자서 끙끙 앓고 투병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병상련의 처지이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는 있다.
전이되었거나, 말기시한부 판정을 받은 동지들이 절망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과 교류할 것을 꼭 권한다.
직접 만나고, 듣고, 손을 잡아 볼 때 '나도 살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희망이 없다', '6개월밖에 못한다' 등의 절망적인 말 따위는 한순간에 날려 버리게 될 것이다.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되풀이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암치유는 시작되는 것이다.
암동지들, 서로 봐주고 덮어주고 위로하며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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