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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암은 내 삶의 전환점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06일 15:44 분입력   총 87887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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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해_2002년 간암진단. 고주파 수술 이후 2003년 재발, 이후마다 6개월마다 재발을 거듭해 5회 색전술을 받았고, 폐전이를 겪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와 감사라고 말씀하십니다.


2002년, 월드컵 신화가 이루어지고 이를 자축하기 위해서 지정된 임시공휴일 7월 1일. 그 날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잊지 못할 날이다. CT를 찍고 확인한 작은 형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모습이 지금도 멍한 잔영으로 남아 있다. 한참이 지나고 작은형은 친구에게 전화로 고주파수술을 부탁한다.
그렇게 시작한 간암과의 투병은 지금 4년 4개월에 접어든다. 고주파를 시행하는 의사선생님은 너무도 친절하였다.

CT를 보여주면서
"간이 검은 색이라면 하얀색으로 중앙에 동그랗게 있는 것이 암인데 그 크기는 약 3㎝정도 됩니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은 암 부위를 절제하는 방법과 고주파시술이라 하여 길고 가느다란 파이프를 암 중앙에 위치시켜 가느다란 관 속으로 전선줄 같은 것이 둥그렇게 나와 거기에 온도가 높은 고주파를 흘려 암을 태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간암의 일반적인 특징은 재발이 잘 생겨 지금 CT 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바다에서 보이는 얼음의 크기는 알 수 있지만 수면 아래에 있는 얼음의 크기는 알 수 없듯이 지금 발견된 암 이외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것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계적으로 시술한 부위에서 재발할 확률이 50%, 다른 부위에서 재발할 확률이 50% 정도 됩니다. 절제술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암의 위치가 고주파하기 적당하고 간경화도 조금 있고 절제수술도 다른 부위에서 재발할 우려가 있으므로 고주파시술이 적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때 작은 형과 공부를 같이한 의사지만 우리나라 의사들이 그분 정도만 되면 모두 존경을 받을 텐데 현실은 너무 달라 투병에 이중고를 겪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암을 진단받으면 죽음과 연관을 지운다. 지난날 작은 형의 "술, 담배를 끊어라"는 충고에 "알았어, 끊을께." 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것도 여러번.
그런데 고주파 시술 다음날 술, 담배를 끊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중학생 딸이 시집갈 때 손잡고 들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5년 생존률이 40~50% 뿐이라는데 내 바람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고 난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마음을 잡지 못한 채 짧은 입원기간을 보냈다.
퇴원 후, 인터넷을 통해서 암에 관한 정보를 얻기 시작하였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보조식품(녹즙, 효모, 셀레늄 등)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심정으로 불안을 느끼면서 2~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하였는데 치료 후 10개월 만에 재발판정을 받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으므로 이때의 재발 판정은 내게 투병의욕 그 자체를 없애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암이 싫고 암을 만들어 낸 내 삶이 싫었다. 그리고 수직 감염된 우리 삼형제의 B형 간염이 너무 싫었다. 격한 감정의 끝은 결국 내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한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실패했다. 깊이가 낮고 평평한 돌이 있었다. 또 한 번 몸을 날렸으나 그 자리였다. 동물적으로 살고 싶었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서러운 눈물이 강물과 하나 되어 말없이 흘러내려갔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죽음으로 쌓아올린 감정을 하나 둘 정리하고 암과의 재전투 상태에 돌입했다. 역시 암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강화될수록 암도 힘을 키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4~6개월 마다 재발이 반복되었고 어느 날 회사 건강진단에서 폐에 전이된 암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이때처럼 적합하게 느껴지던 때는 없었다. 이때가 암 진단 후 2년이 지난 2004년 7월경이었다. “이미 나는 한강에 몸을 던졌을 때 죽은 목숨이다. 지금 죽는다 해도 무엇이 아까울까? 그래 해보자.” 라고 생각하고 S의료원에서 복강경으로 1/3엽에 해당되는 폐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일찍 발견되어 전이된 폐암은 성공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전이된 암을 발견 후 치료하고는 내 인생은 달라졌다.
"아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목숨을 연장시켜 주셨구나."
담당의사도 알 수 없었던 폐에서 자라고 있던 암을 회사 건강진단 때에 발견하게 하시다니.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나님."
탄식이 흘렀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매순간 감사할 뿐이었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8개월 후면 5년 생존율 40~50%를 넘어서지만 그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폐에 전이된 암은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 이놈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간암은 아직 난공불락의 상태에 있다. 아마 장기간 암과 공생하는 삶이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코 암에게 점령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과 믿음이 있다.

암에 있어서 투병하고 있는 개개인의 투병 역점은 병원치료법, 대체요법(식이, 운동, 정신요법 등)이 있으나 그 바탕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희망의 끈은 지금 고통과 절망을 느끼기 때문에 존재하는 실상이다. ‘암과 투병 중에 있으므로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하다.’ 라는 비교는 주관이 배제된 일반적인 생각이다.

암과 투병 중에 있지만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의 사람과 비교하여 감사와 기쁨을 찾는 것이야말로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의 끈을 붙잡을 수 있는 강한 의지는 ‘암은 인생을 잠그는 자물통이 아니라 열쇠가 된다.’ 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암은 삶의 전환점, 반성하는 거울, 참회개의 터전, 엄격한 선생, 의미 있는 죽음의 길잡이, 참사랑의 안내자, 자기정체의 현미경, 절대자를 찾는 길이다.

그리고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암일 수 있으며, 단지 인생은 창조의 근원, 즉 고향에서 와서 여행지를 가볍게 놀고 즐기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삶에 불과하다고 깨달았을 때 암을 잠재우는 기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전철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희망의 끈을 잡고 기적을 만들기 위해 좋은 공기, 좋은 음식, 좋은 생각과 감사와 기쁨을 매순간 오감으로 느끼면서 암 환우 서로에게 작은 배려와 도움을 주면서 살 때 기적도 생길 수 있으며 또한 삶의 길이의 장단(長短)에 불구하고 삶의 질을 높게 할 수가 있으리라는 믿는다.

뒤로월간암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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