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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희망으로 순항하는 배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06일 15:56 분입력   총 87777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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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홍


“이봐! 복부에 왜 혈관이 보이지?”
남편이 날 부르며 한 이 말이 암과의 인연이 될 줄이야.

2005년 1월 중순경에 옷 갈아입던 남편이 이상하다며 보여준 복부에는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혈관이 여기저기에 보였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간경변일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되어있더군요. 동네 종합병원에 진료예약을 하고 검사하고 기다리는 동안 불길함이, 설날을 며칠 앞두고 결과를 보던 날 현실로 제 앞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경황없이 명절을 보내고 CT CD와 의사소견서를 들고 일산 암센터를 가며 오진이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2월 16일 입원하여 모든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2Cm정도 크기의 종양과 멀티플하게 작은 것들이 여러 군데 있고 2기와 3기 사이의 병기, 간경변도 있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의사가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입원해있는 일주일동안 색전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얼굴이 너무도 수척해 보였지만 내색 없이  웃어 보이더군요.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현실감 없는 여러 날이 눈물 속에 지나갔고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굳게 다지길 여러 번하여, 인터넷이며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대체요법을 병행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여겨져 녹즙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현미위주의 잡곡밥, 콩류, 조개, 버섯 등등으로 식단을 짰고, 조리는 싱겁게, 일체의 조미료를 배제하고 다시마와 멸치 등으로 국물을 내서 식탁에 올렸습니다.

시간이 나면 휴양림도 가고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나가고, 되도록이면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애를 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직장에도 별 탈 없이 다니고 생활도 피곤함을 피하며 지내다보니 가끔씩은 암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잊기도 하지만, 불현듯 엄습해오는 불안함은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라도 웃음거리를 만들어 남편을 웃게 하려고 노력했고 남편도 그런대로 따라주다 보니 집안에 전보다 웃음소리가 많이 났고, 아이들도 불안함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3월, 5월에 검사를 했고 별다른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더 열심히 잘해보자고 다짐을 했는데 7월 검사결과에서 여러 군데 퍼져있는 것 중 하나가 자랐다며 8월에 색전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시술 예약을 하고 우리는 여름휴가를 갔습니다. 막막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남편도 제 마음을 안심시키려는지 불안함을 들어내지 않으며 웃어보였습니다.
그렇게 더운 여름을 보내고 9월에 찾아간 병원. 8월에 혈관조영하여 색전술을 했는데 그것은 양성종양인 듯하다고 하여 한시름 놓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조용히, 살얼음판을 걷듯이.

그리고 12월, 2006년 3월.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며 큰 변화없이 지내던 중 간이식을 한 친척어른과 통화를 하고 그 방법도 생각해보게 되어 아산병원에 진료를 받았는데 가능은 하지만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기형이라 전간이식이 더 나을듯하다는 말을 듣고 쉽지 않은 국내현실에 형식적인 등록만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아직은 간기능이 나쁘지 않다는 말에 힘을 얻으며…
그래도 처음에는 간이식도 할 수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주치의에게 들었던 터라  할 수 있다는 말이 그리 고맙게 들릴 수가 없었고, PET검사에서도 다른 이상이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러던 중 언듯언듯 얼굴에 노란빛이 더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검사를 해보니 황달수치가 좀 더 올라가(2.6) 걱정을 하니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고 해 음식조심을 더하며 다음 검사일을 기다렸습니다.

6월에 다시 찾은 병원!
석 달에 한 번씩 가는데 갈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짧은 진료 속에 많은 질문을 할 수 없어 저는 늘 의무기록사본을 신청해 받아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훑어보니 깨알같이 많던 결절들이 줄어있고, 아직은 많이 높긴 하지만 수치도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8개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처음에 저희 시아버님께서 집안 아는 의사(소화기 전문의학박사)에게 물어보니 일 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해서 당신 혼자 속을 많이 끓이고 계셨다고 하시더군요. 결과를 알려드리니 그제야 그 말씀을 하시며 가슴을 쓸어내리셨습니다.

요즈음에는 동네에 있는 산에 주말이면 갑니다. 산이라고 해봐야 낮아서 산책정도 수준밖에 안되지만 처음에는 그것조차 힘들어하던 남편이었습니다. 워낙 등산을 싫어해 산으로 이끄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지금은 남편이 먼저 가자고 나섭니다. 남들은 단숨에 오르는 산이지만 우리는 몇 차례를 쉬어가면서 오릅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며, “다음엔 어느 산에 갈까” 하고 호기를 부린답니다.
여기저기 투병성공기를 보며 우리도 해낼 거라는 믿음을 가져봅니다.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그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욕심이 더 마음을 힘들게 할 수도 있기에 한 걸음씩만 치유라는 목표를 향해 나갈 수만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순항하는 배로 옮겨 탈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이글을 마칩니다.

뒤로월간암 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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