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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백두대간을 넘어, 암을 넘어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27일 23:09 분입력   총 87831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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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봉준(41)_위암4기 임파선 전이


지독한 공포와 어둠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로만 듣던 암이 제 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 8월 1일.
이 날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날이었지요. 위암 4기에 임파선 전이, 8월의 무더위 속에서 마음은 싸늘한 시체가 된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위를 느낀다는 것은 건강하다는 얘기, 더 이상 더위도 느낄 수 없는 얼음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담당의의 권유에 따라 수술을 하였고 항암화학요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더불어 체력까지 바닥나서 더 이상 주사용 항암제를 맞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항암주사 3회만으로 그렇게 끝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젊은 나이에 암이란 놈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먹을 수 있고 50보만 걸을 수 있다면 어떤 병도 극복할 수 있다는 책 속의 글귀가 그때만큼 가슴에 깊이 박힌 적은 없었습니다. “난 현재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이제 걷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주사용 항암제 대신 경구용 항암제로 바꾸었습니다.

암 환자에겐 등산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이유도 없이 무조건 산에 오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러나 산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산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산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지만 내 삶의 끈을 잇기 위해 산행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걸어야 했습니다. 산을 부여잡고 통곡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기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등산,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산에 오를 때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았습니다.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한조각 심장만 남아도, 제가 올라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고갈된 체력의 제 몸은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는 것만으로 힘겨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힘이 없어 넘어지기를 수십 차례.
처음 넘어졌을 때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의지가 다시 일으켜 세웠지만 두 번, 세 번 되풀이되며 눈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은 이내 통곡이 되어 산을 돌아 흐르는데 몸 하나 일으켜 세우지 못했습니다. 실컷 울고 나니 어느새 몸이 가벼워지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한 조각 심장만 안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등산,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자연의 정기(精氣)를 마음껏 받아들였습니다. 산은 모든 시름을 받아주었습니다. 마음껏 울기도 하고 마음껏 소리 지르기도 하고... 그렇게 산과 하나 되어 가고 있었지요.

2006년 5월,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을 딛고 체력의 한계를 실험하고 싶기도 했지요. 지리산 천왕봉을 시작으로 11월 현재 태백산, 함백산까지 총 23구간을 넘어왔습니다.
백두대간은 지리산부터 진부령까지 총 33구간으로 되어 있고 700㎞에 달하는 머나먼 장정입니다.
진부령까지는 현재 오대산, 설악산을 포함 10구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겨울철 산행으로는 힘든 이 구간은 2007년 봄을 맞이하여 종주할 것입니다.

저는 스트레스로 인해 암이 온 것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술과 담배를 즐겼고 생활이 불규칙하게 되면서 몸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지요. 평소 육식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원인 이외에 다른 것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스트레스가 산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히 나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8월 3일, 정기검사를 통해서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딱 1년 만이지요.

몸속의 암을 몰아내기 위해서 특별한 것을 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생활습관, 즉 술과 담배를 끊고 산을 좋아하게 된 것이 전부입니다.
육류를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암 발병 이전과 식사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오직 수술한 그날부터 걷기를 시작하여, 이제 백두대간을 종주할 정도로 걷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것도 평지를 걷는 것이 아니라 험한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이지요.
이제는 제 자신 하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암을 이겨내 저와 같이 암 진단을 받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암 환우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지금까지 투병한 것을 토대로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가만히 누워 암이 치유되기를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가만히 누워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열심히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자에게 희망은 주어진다는 평범한 진리의 산증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뒤로월간암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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