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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딸에게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27일 23:10 분입력   총 87811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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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51)_2005년 말 폐선암 3기B. 십여 년 매일 수영하고 주말이면 등산하는 생활 중에 알게 된 암에 지지 않고 투병합니다.


내 삶의 전부인 딸 지혜야!
작년 11월 22일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그날,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운 자리에서 너와 나 둘이서 받은 나의 암 선고.
스물넷의 너는 누굴 닮아, 담당의사에게 밖에 나가 자기랑 얘기하자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었지. 오히려 의사가 학생이냐 물었었지?

그날 이후 정신없이 허둥대는 아빠보다 너를 더 믿어왔구나.
엄마가 강해야 산다며 나를 환자취급하지 않고 누워있지도 못하게 하고 스트레스가 될 만한 일은 네 선에서 처리했지.
나이답지 않게, 혼자자란 아이 같지 않은 너를 보고 엄마 친구들이 그랬단다. 지혜엄마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아 저런 딸을 얻었다고. 너 같은 딸이면 열 아들 안 부럽다고 하더구나.

그래, 난 열 아들 안 부러워.
지혜야, 생각나지?
우리 모녀 암 선고 받던 날, 둘이 미술관 갔었지?
그곳에서 엄마는 아직 학생티를 벗지 않은 널 보며 꼭 살아야겠다 다짐했단다. 내가 살아야만 할 목표, 바로 너였어.

오늘은 오랜만에 아빠가 모임에 나가 술 한 잔 하시나보다.
좋아하던 운동도 그만두고 사무실도 직원들에게 거의 맡겨버리고 오직 엄마 시중만 들어온 네 아빠.
항암 중 종양이 늑막 쪽으로 커지고 문제가 커지자 신약이든 뭐든 전 재산 다 내어놓을 테니 이 사람만 살려달라며 교수님 앞에서 눈물 흘리며 울부짖던 네 아빠.
그때도 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예민하지 말라며 아빠는 엄마랑 밖에 나가있으라고 당차게 나왔었어.
좋은 직장에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엄마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도 넌 엄마에게 미안하다 그랬지.

사랑하는 나의 딸, 지혜야.
엄마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지?
암을 발견한 것도, 검사, 치료과정도 얼마나 운이 좋았니?
암이 얼마나 지독한 지도 모르고 엄만 항암 주사 몇 번, 머리 좀 빠지고 나면 감기 털어버리듯 그렇게 훌훌 일어날 줄 알았단다.
주사 맞는 중에도 구토만 멎으면 퉁퉁 부은 얼굴로 친구네 가게로 가 온갖 수다를 떨었어.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한다며 쑥 뜯으러 다니고 매서운 봄바람도 무식한 엄마에게 두 손 들어버렸나 봐. 감기 한번 안 걸리고 항암을 끝마쳤었지.

지혜야, 엄마는 꼭 이길 거야.
첫째는 너를 위하여,
둘째는 사람 좋은 네 아빠를 위하여,
셋째는 이제 오십하고 한해를 넘긴 나를 위하여.

내일 내려올 거지?
엄마랑 시내에 나가 미장원도 가고 성안골 조용한 찻집에서 오랜만에 구수한 커피 한 잔 마셔보자꾸나.
운전 조심해서 내려오너라.

뒤로월간암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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