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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27일 23:10 분입력   총 87837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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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형_2004년 간암 3기. 현재는 직장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계십니다.


지금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너무나 나쁜 남편이었습니다.
가정을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당신에게도 너무 소홀히 해 왔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해 온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니 암에 걸렸다”는 어느 암 환자의 말처럼 우리도 지금 그런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지난 2년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분노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나날들이 영상처럼 지나갑니다.
이 못난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었지요. 밤이 새는 줄 모르고 한 박스 책을 끌어안고 씨름하던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더 아파하는 것 같아서 쓰린 마음을 안으로 삼켰습니다. 책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든 당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좋은 풀을 뜯으러 간다며 새벽길을 나서는 당신에게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난 당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암이 당신의 정성으로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도 이미 포기한 몸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을 품은 채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내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화를 당신에게 냈습니다. 점점 쇠약해져가고 정신마저 희미해져 갈 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도 견딜 수 없는 뭔가가 치밀어 오르면 그 화풀이는 오롯이 당신에게 쏟아졌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지금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용서해요 여보, 막말을 퍼부으며 고래고래 악을 쓰던 날이 기억납니다. 말 한마디 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눈물만 흘러내리던 당신. 조용히 이런 말을 했지요.

“병원이, 혹은 의사가 당신을 버려도, 그리고 하늘이 당신을 버려도, 난 버리지 않아요. 당신이 스스로를 버리고 나를 버려도 난 당신 놓아줄 수가 없어요. 당신이 너무 불쌍해서 떠날 수가 없어요. 건강해져요. 암 따위 나아버리고 나면 그땐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 제발 그때까지는 화내고 소리치고 욕해도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줘요.”

당신의 그 애처로운 모습을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당신에게 못된 남편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를 온전히 버리는 연습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나를 감동시켜 변화시켰습니다. 고집불통인 나를….

그리고 당신이 하자는 대로 믿고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당신의 노력, 당신의 수고가 마음은 물론 몸까지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뭔지 모르는 강한 신념이 당신에게서 흘러 들어왔습니다.
순간순간 죽음의 공포가 고통스럽지만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세상 어떤 것보다 당신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오늘날까지 나를 있게 해 준 동인(動因)입니다.

이젠 암이 치유된다 해도 그것이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이자 정성의 결과입니다.
그 긴 시간동안 당신은 안 보이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이제야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남은 삶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신과 함께 그 길을 가게 되어 정말 행복합니다.
그 동안 힘들고 상처 준 만큼 이제 사랑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여보! 사랑합니다.

뒤로월간암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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