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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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사는법] 바람의 언덕 거제도를 품에 안고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27일 23:13 분입력   총 87900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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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48)_2004년 4월 12일 대장암 3기(방광전이) 진단을 받았으나 굳은 의지로 병을 이겨내며 현재 서부경남 암환자모임을 이끌고 있습니다.


나는 대형자동차 정비사였습니다.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그리고 무절제한 음주와 흡연 등을 당연한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생활해 왔습니다.
아마 암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치루관에 염증이 생겨 동네 병원서 수술을 받은 후 거의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준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암인 것 같다’는 애매한 진단결과에 울컥 화가 나서 “암이면 암이고 아니면 아니지, 암인 것 같다가 뭐요?”라며 한마디 던지고는 부산 K의료원에 입원, 2004년 4월 12일 대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4월 27일 수술을 하였고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배를 만지던 중 왼쪽에 이상한 주머니를 달고 있음을 알았을 때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담당교수의 설명을 들었을 땐 죽음이 가까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수술을 하기 위해 개복했으나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커버렸고 또한 방광에 전이가 되며 장기가 서로 붙어 있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장루는 당분간이라도 편히 변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이니 그렇게 아시고 준비하시길.”

준비를 하라니? 뭘? 뭘 준비하라는 것인데. 아내는 그 말을 듣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하였으나 도무지 감춰지지 않았고 나 또한 깊은 한숨과 함께 너무도 기가 막혀 입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깊은 통곡과 함께 소낙비처럼 눈물이 쏟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 남짓 피눈물을 쏟고 살아야 했다고 결심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살리라. 모진 맘을 먹고 의사의 치료계획에 따라 철저하게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항암화학요법 6회, 방사선요법 28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치료 중 부작용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극심한 통증, 바늘로 콕콕 치르듯이 나타나는 통증은 물론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살기 위해 먹어야 했습니다.
못 먹으면 죽는다는 의사의 말에 살기위해 음식을 삼켜야 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먹는 식사라니. 4월 30일부터 70여 일 동안은 생과 사를 결정짓는 가장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70일을 어떻게 버텨냈나 싶습니다.
육체적 고통도 극심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심리적 공황상태는 그보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또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방사선까지 마치고 난 후 의료진으로부터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고 수술 후 담당교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사선치료가 잘 들었던 같습니다. 개복을 해 보니 암이 작아져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장루를 없애고 항문도 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이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10월, 병원을 나오는데 어둠의 긴 터널에서 햇살 쏟아지는 찬란한 세상으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에서도 벗어나기로 하고 11월, 바람의 언덕, 거제도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치료는 의료진의 처방을 믿고 따릅니다. 다만 의사가 해 줄 수 없는 부분은 내가 하고 있습니다.
투병을 위해서 특별히 하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철저히 자연식(거친 음식 위주, 아주 조금의 유황오리를 뺀 일체의 육고기 금지)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통증이 있는 데 통증을 없애기 위해 진통제를 쓰지 않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차돌이나 기와를 불에 데워 수건에 싸 찜질을 하거나 쑥, 비파잎으로 찜질을 하는 정도입니다.
또한 자주 산에 오르고 바다에 가서 낚시를 즐기기도 합니다.
바다와 산, 내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 주는데 없어서는 안 될 너무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지요.

만약 암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생각, 이런 생활을 어떻게 꿈꾸기나 했을까요?
생각도, 생활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지금의 생활에 아주 만족합니다.
그리고 만약 투병에 성공한다면 내 삶은 의욕과 생기로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꼭 투병에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이 항상 함께 하고 있고 산과 바다, 그리고 환상의 섬인 거제도 속에서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우 여러분!
암 투병의 수많은 요소 중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가족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투병의 제일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 준 사랑하는 아내와 아버지를 위해 거제도까지 와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눈물로 기도하시던 장모님, 사랑합니다.
누님과 형님을 비롯하여 주위의 가족과 같은 이웃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뒤로월간암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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