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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2] 기적이 아닌 필연
고정혁기자2008년 01월 04일 16:44 분입력   총 88124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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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이승섭(74)_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림프절 치료 중. 비절제 식도암 생존율 0%라는 비정한 숫자를 도전으로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2006.11. 12(일)

의료진의 적절하고 정확한 치료와 보살펴 준 모든 분들의 기도, 원조, 성원, 격려 등 모든 작용요소로 인한 필연이란 결과일 뿐이다.
지난 해 8월 18일 인천제일의원에서 식도암을 처음으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징그러운 식도 내부였다. 덩어리진 암이 보인다. 생검 결과는 편평상피암(squamous cell carcinoma)이었고, 크기는 대략 4.2cm.

치료과정을 거친 후의 식도 내부는 너무도 깨끗하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암 덩어리들이 말끔히 가셨다.
방사선에 타서 뭉개졌을 점막조차 재생되어 적어도 육안으로는 완전 치유로 보인다. 믿고 싶다. 완전 치유를...
식도암이 말끔히 사라진 듯한 결과에 모든 분들이 “기적”이라고 기뻐하며 축하해주었다. 암 중에서도 식도암은 꼭 죽음으로 이르는 난치병으로 여겨져 왔었기 때문에 모든 분들의 축하에 놀라움으로 차 있는 기쁨이 바탕이 되어 기적이란 표현이 서슴없이 사용되었나 보다.

나 자신도 기적이라고 믿으며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고 싶다. 기적을 내려 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찬양하며 믿음을 더욱 더 공고히 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결론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지만 사실은 기적은 아니고 필연적 결과였기에 어느 환자이던 간에 반드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식도암이란 것을, 모든 환우 분들과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서 기적이란 말을 사양하고 싶은 것이다. 크게 외치고 싶다. 적절, 정확한 치료만 받는다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필연의 결과라고...

다만 너무 힘들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치게 하는 너무도 힘든 나날들이었다.

발병은 2005년 7월, 치료는 10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방사선 조사 종료일이 2005년 12월 15일이었고, 화학약품 주입 종료는 2006년 3월 25일이었다. 발병일로부터는 한 해와 석 달이 지났고 치료 종료일로부터는 일곱 달 반인 오늘이다.

치료가 이어졌던 몇 달 동안은 지옥 속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각가지 통증들, 아니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생지옥의 나날들.
57kg 하던 체중이 42kg로 빠져버려 뼈와 가죽인 몸통마저 무겁다고 엉금엉금 힘 빠진 다리로 기어가듯 걸어야 했던 나날들.
그래도 보호자 없이 혼자 용감히 다녔었다.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며.

방사선에 타들어 간 식도가 불에 타듯 아파 물조차 못 넘겼던 수많은 나날들.
주입된 화학약품 부작용으로 침조차 목을 못 넘겼던 수많은 굶음의 나날들.
이 냄새 저 냄새, 이 세상이 온통 역겨운 냄새로 꽉 차 있어 코마저 막아버리고 지낸 나날들.

이 몸이 죽어 지옥에 떨어진다면 생지옥을 헤매었던 그만큼의 기간은 감량 혜택을 받으리라.

몸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이 더 아팠었다. 되도록 웃고 지내라고 충고들이 연이었다. 그 충고들이 더 아팠다.
억지웃음 속, 그 눈 속에는 감출 수 없는 서글픔이 늘 깔려 있었다.
바람만 불어도, 구름 낀 날에도, 비 오면 비가 와서, 맑게 갠 날에도, 고이지 못한 눈물이 마른상태로 흐르곤 했었다.
흐르지 못한 눈물들은 가슴 속에 고이고 고여졌었다.

70년 넘게 몸에 배어버린 식성이 서서히 사라졌다. 양파 껍질 벗겨져 나가듯 한 겹 두 겹 사라지며 이젠 속 알맹이마저 사라졌다. 음식에 대한 생각이 식사라기보다는 매끼마다 약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암을 고치기 위한 하루 세 번의 약물복용 정도로 음식 개념이 바뀐 것이다. 미각마저 잊은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전혀 없다. 수술해서 도려내야 할 암 덩어리를 그대로 둔 채 투병하고 있는 나로서는 달리 선택의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절대절명의 식이요법에 익숙해진 것이다.

식이요법에 대한 신념은 하루하루 굳어질 뿐이며 오늘도 굳게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식이요법이 암을 고친다고 단언할 수 없으나 식이요법 없이 암을 고칠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열 달이 넘게 이어져온 기본 메뉴가 있다. 청국장찌개와 구운 마늘과 데친 브로콜리, 그리고 15가지 잡곡밥이다. 기본 메뉴 중의 기본이 되어 있는 것은 저염식을 넘어 무염식이다. 청국장찌개마저 간기가 전혀 없다. 브로콜리도 드레싱 없이 먹어치운다.
청국장찌개에 잡곡밥을 비벼 먹는 것을 하루는 아내가 한 숟갈 떠먹어보더니 “이렇게 싱거운 것을 무슨 맛으로 먹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약을 맛으로 먹나?” 속으로 대꾸하면서. 그래도 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깻잎김치의 간기는 피할 길이 없다. 더러는 새우젓 새우 몇 마리는 먹으니 나의 무염식 식사도 어쩌면 엉터리인지 모른다.

그래도 허구한 날 청국장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나의 편식(?)으로 빛 볼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나의 밥발이여, 부디 약발이 되어다오.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저 이렇게 식성마저 희생양 대신으로 바치고 있나이다.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이 녹즙이다. 찬반도 많은 녹즙에 관해선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마시기를 이어왔다.

반대론의 주 근거는 간의 손상과 비위생성이다. 찬성론의 근거는 미네랄과 비타민류 그리고 알카로이드의 유효약리작용 등이다. 특히 의료진의 반대는 녹즙의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보다 비위생성과 그로 인한 감염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많이 섭취하라고 권장하면서도 녹즙을 반대하는 의료진의 고충은 이해할 만하다.

보조약품과 보조식품 등은 정말 골치 아픈 대상이다. 나름대로 조금씩은 존재의 이유, 암환자에게 좋다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좋다는 이유와 완치용 치료제라는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경제적 화폐 단위로 표시되는 차이만큼 암의 치유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삼, 홍삼, 진산, 해양심층수, 스피루리나, AHCC, 액체상어연골, 아베마르, 후코이단, 차가버섯, 상황버섯 등등... 참으로 좋다는 종류도 많다.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모두 열거 할 수도 없고 또 정확한 이름도 모르겠다. 이들의 존재와 존재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가 멀다고 날아드는 메일, 쪽지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고약한 것이다. 만든 사람이, 판매하는 사람이, 광고하는 사람이 완치용 약발의 절대성을 믿고 암세포를 자신의 몸에 증식시켜본 연후에 그 제품으로 완치되었다는 과학적 기록만 보여준다면 그것이 아무리 고가라도 나도 사 먹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가 위염의 원인균임을 처음으로 증명하여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배리 마셜교수는 이 세균이 위염의 원인균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먹는 인체 실험을 하기도 했다. 마셜박사같은 절대적 신뢰와 살신성인의 희생과 과학적 기록만 제시하여 준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매달려보고 싶은 것이 암환자의 심리다. 벼랑의 끝에서 추락의 공포를, 다가오는 그 순간을 피할 길 없이 견디고만 있는 암환자로서는 매달릴 것이 있다면 나무뿌리든 풀뿌리든 가리지 않고 붙들고 매달려보려 안간힘을 다 하는 것이다. 나도 매달리고 있다. 몇 달이고 놓지 않으며.

한약재탕도 내 멋대로 조제하여 식간에 마셔왔다. 겨우살이, 부처손, 느릅나무뿌리, 뽕나무뿌리, 꾸지뽕나무, 짚신나물, 까마중, 감초, 결명자 등의 합방탕을 꾸준히 마셔왔다. 귀하고 비싼 약제들은 아니다. 그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잡초들의 꿀꾸리탕이다. 이 탕제가 암을 고치는 약이라고는 생각 안한다. 그래도 특이한 것은 이뇨효과만은 탁월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배뇨 간격이 귀찮을 정도로 짧아지고 배뇨량도 많아진다. 오줌 색깔을 봐가며 간간히 생수도 분량을 조정해가며 마신다.

녹즙과 보조약품과 탕제를 복용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꼴의 혈액검사다. 다행스럽게도 AST(GOP)가 29~39선에서 안정되어 있고(정상치: 0~40), ALT(GOT)가 18~31선에서 안정되어 있다. (정상치:0~40)

현재까지의 녹즙이나 보조약품, 약초탕제들이 정상 간 수치에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은 해왔다. 그것이 현대의학이나 한의학에서 볼 때 필요 없는 짓, 해로운 짓거리로 지적 당할 수도 있다해도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치유라는 필연적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은 어찌되었던 간에 식도암의 치유는 필연적 결과였다고 자부할 만큼의 좋은 성과를 얻은 것도 사실이다.

뒤로월간암 200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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