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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전립선암 3년을 넘어서
고정혁기자2008년 01월 26일 20:08 분입력   총 88431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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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운(57) | 전립선암 3기로 3년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죄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2003년 6월         전립선암 3기 진단.
2003년 8월 12일 수술.

어느 날 직원들과 담소 중 전립선 얘기가 나왔다. 남자 40이 넘으면 전립선 암이 많다더라, 검사 비용이 얼마 안드니 모여서 한번 가보자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별 생각 없이 우르르 몰려가 검사를 했는데 나만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라고 한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 처음 PSA 수치를 알았다.
피를 뽑아 검사를 하는 것인데 전립선암에서 특이하게 나타는 항원인 PSA를 검사하는 것인데 이 수치가 4ng/ml을 넘으면 전립선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염려할 정도는 아니니 6개월에 한 번씩 와서 검사를 받으라 했다.
그 당시 외국출장도 잦았고 업무도 몹시 바쁜데 여기에 병원까지 가려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6개월 간격으로 검사할 때마다 수치가 계속 변했는데 다행히 점점 내려갔다. 3.5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걱정되는지라 의사에게 음식은 어찌해야 하나, 술 담배는 끊어야 하나 등 물으니 의사가 다 괜찮다, 술도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검사 때문에 외려 스트레스가 심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조직검사를 해서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판단해서 2003년 7월 초 조직검사를 했고 검사결과 악성종양으로 나왔다.
전이는 없고 0기~1기 사이로 암세포가 순하니 괜찮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이 나왔다. 수술후에는 3기로 확정되었지만.

또? 검사, 또 검사. 수술하겠다는 말에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할 수도 있고, 성기능 장애로 부부생활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계속 검사를 받으며 도저히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조직검사 한 것을 가족에게 숨긴 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소변을 보니 피가 흘렀다.
아내 몰래 팬티를 버리고 통증이 와 속으로 끙끙대는데 쇼핑을 가자고 한다. 딸이 구두를 고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아빠, 하나 사세요, 하는데 사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그땐 끝이구나 싶은 마음에 그래, 너희들은 다음에 신을 구두도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수술날 8월 12일, 최저 4~6시간 걸리며 피주사 2팩을 맞아야 한다는 소리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하려 마인트 컨트롤 테이프를 간호사한테 부탁해 수술 전까지 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2시간도 안 걸려 끝났다. 당시 아내는 너무 일찍 불러 아무래도 열어보니 잘못됐구나 싶었다고 한다. 나중에야 여태껏 환자의 몸이 의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너무 몸이 잘 따라줘서 피 주사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정신력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도 처음이고 등의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다.

실은, 수술 전 1달 10일 가량, 도시락을 싸서 저녁이면 관악산에 맨발로 올랐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4시쯤 퇴근해서 늦도록 밤 1시까지 산에서 지냈다.
밤에 누으면 발바닥이 후끈하는 것이 점점 올라오더니 아랫배까지 후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다녔다. 수술 전에 나름대로 대비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그리고 수술 뒤에 찾아온 통증. 위암이나 대장암과는 달리 전립선암은 수술 후의 회복이 쉽지 않다.
1센치의  턱을 넘으려 발이 올라가지를 않고, 처음 일어나 4, 5발짝을 떼는 데 속된 말로 너무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그때부터 죽기 살기로 움직였다.

7남매의 맏이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키웠는데 내가 죽으면 두 딸이 똑같이 부모 없이 자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퇴원해서 아내의 어깨를 짚고 걸으면 소변이 바지 아래로 줄줄 흘러내렸다. 어른 기저귀를 차고 걷고, 또 걷고.

지금은 다시 직장에 다니고 건강하다. 그동안의 3년 세월이야 말하면 뭣하랴. 암환자라면 누구나 겪는 것을.

다만,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르지만 마음이 질까봐 걱정이다. 미지의 고통이 너무 두렵다.
정기 검진 전이면 두려움을 잊으려고 산에 마구 다닌다.
정신력이 강하다지만 가장 약한 것이 정신력이기도 하다. 잘 버티고 견디다가도 한순간 변화에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걸 수없이 경험한다.

그래도 내게는 한마디 불평 없는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있는 한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살게 하는 가족에게 더없이 감사하고 사랑한다.

뒤로월간암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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