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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엄마
고정혁기자2008년 01월 26일 20:10 분입력   총 87810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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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 어머니(60세) 직장암 1년 6개월 투병중이십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감정을 표현해 봤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편지를 써 본 경험이 없네.
아껴두었다가 엄마 환갑잔치 때 쓸려고 했는데 더 늦기 전에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쑥스럽지만 쓰려고 해.
그동안 너무도 가까워서 투정하고 짜증내고 엄마 마음을 저미게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년 엄마의 암 선고를 접했을 때 정말 거짓말 같았지. 하늘이 노랗고 손발이 마구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내가 이럴 때는 당사자인 엄마는 어땠을까?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잖아. 괜찮을 거라고.
그 담담한 속에는 세상에 대한 노여움, 배신, 두려움 등 모든 인간의 나쁜 감정들이 숨겨져 있었겠지.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해. 엄마는 엄마 감정을 표현했어야 했어.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숨기는 바람에 이런 몹쓸 병이 온 것 같아.

며칠 전 우연히 엄마의 낡은 수첩을 하나 발견했어.
그건 아주 오래 전에 엄마가 보험 영업을 할 때 사용했던 수첩인 것 같았어.
‘선생님, 보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시작하는 글이 깨알같이 수첩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
새로운 보험계약자를 찾아서 권유하고 설명하는 글이었나 봐.

또 매 페이지마다 똑같은 내용을 쓰면서 열심히 외운 흔적이 내 마음에 울컥 뭔가가 치밀어 오르게 하더라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엄마의 성격으로 그런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권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였겠지.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하는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길이었겠구나 생각하니 그 다음은 뭔가 짭짤한 것이 흐르는 것이었어.

엄마랑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의지하고 많은 것을 같이 해왔잖아.
그래서 막내는 엄마랑 내가 똑같대. 내 생각이 엄마생각하고 똑같다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내 나이가 엄마 한창 고생할 때 그 때의 나이가 되었네.
난 남편 잘 만나 호강하고 사는데 내 나이에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남들이 다들 잠자고 있을 시간에 식당에서 해장국을 팔고 있었지.
엄마가 그렇게 고생해서 우리들을 똑 부러지게 공부시키고 가정교육을 시킨 덕분에 자식들은 모두 사회에서 인정받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의 우리들은 엄마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들이야.
그래, 이제야 멋진 관광도 보내드리고 멋진 옷도 선물해 드리고 싶은데 엄만 왜 그런 병에 걸려서 몸 고생, 마음 고생하는 거야?

옛날에 엄마에게 해 준 얘기 기억나?
옛날에 똑같이 남편을 여읜 과부가 둘 있었는데 그들 사는 방식이 달랐대.
한 어머니는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지 않게 하려고 본인 먹을 거, 입을 거 다 아끼고 고생고생해서 자식들을 키웠는데 늘그막에 효도 받으려고 하는 찰나에 병이 든 거야. 또 한 엄마는 자식들을 잘 키우려면 내가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애들 옷은 안 사줘도 철마다 자신 보약 해먹고 건강하게 살았대.

앞에 것은 엄마얘기 같지?
하긴 어느 엄마가 자식 안 먹이고 안 입히고 나만 생각하는 엄마가 있겠냐마는 아주 조금은 이기적이었어도 됐었는데...
내가 미리 엄마 건강 챙겨주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고 후회가 돼.
우리 4남매 결혼할 때도 하나같이 속 썩혔잖아, 특히 나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까 용서해 줄 거지?

엄마, 아프기 전에는 그저 자식들이 서울서 부산으로 전화만 한통씩 하고 명절에 한 번씩 얼굴 보이고 그러다가 지금은 거의 매일 자식들이 엄마 만나러 오니까 마음은 좋은 거지?
우리도 엄마가 가까이에 있어서 너무 좋아.
다만 우리가 너무 자주 찾아뵙는 게 투병에 도움이 될지 아닐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엄마가 옆에 있는 덕에 나는 스무 살 이후에 먹어보지 못했던 엄마표 밥을 가끔 얻어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어. 형제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한 건가?

행복이란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어.
병원을 등진 지금 오히려 병원에서 들었던 절망적인 언어들을 접하지 않아서 마음이 평온해졌어. 이런 게 행복인가 싶어.
매일 가족들 얼굴보고 밥 먹고 함께 웃고. 물론 마음 한구석엔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야.

엄마가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은 냉정해진 모습에 오히려 내가 마음이 편해졌어.
그 전에는 봄에 피는 예쁜 꽃들, 가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면서 우리 엄마가 다시 가을을,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며 펑펑 눈물 흘렸는데 지금은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추운 겨울이 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나고 죽는 것 이 모든 자연의 순리가 실제로 느껴져.
어차피 누구나 한번 죽는다면 천천히 준비하는 삶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
물론 엄마는 아주 천천히 내가 흰머리 나고 주름생기고, 손주들 짝 찾을 때까지 준비하는 거지.
엄마 그때까지 이겨낼 수 있겠지?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우리 온천에도 다니고 자주 여행하자. 내가 운전사 겸 친구 할게.
그동안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느라 못했던 엄마와의 시간들 올 겨울에는 꼭 많이 만들 거야.

엄마, 지금 참 잘하고 있어. 그렇지만 아플 때는 우리에게 얘기해줘.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플 때도 꼭 얘기하고 푸세요. 엄마는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나타난 것 알지?

엄마, 엄마라는 말은 누가해도 따뜻하고 편안함이 느껴져.
오래오래 따뜻하고 편안한 쉼터를 주세요. 꼭이요. 엄마
그리고 서른일곱 해를 살면서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2006년 초겨울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큰딸.

뒤로월간암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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