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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편지]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고정혁기자2008년 01월 26일 20:11 분입력   총 87802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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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화 | 아버지-장용재(60세)- 간암 투병중. 장용재님 부부는 올 봄 고향에 농가와 텃밭을 마련해 귀향할 계획 중.


사랑하는 엄마, 아빠께

2006년은 우리가족 모두에게 잊히지 않는 해가 될 거 같아요.
아빠가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벌써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그때는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들 힘들고 지쳐 있어서 이런 시간이 올까라는 생각도 미쳐 할 틈도 없었는데 시간은 참 빨리도 가네요.

B형 간염 보균자로 초기 간경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석 달에 한번, 6개월에 한번, 정기적으로 피검사를 해왔기 때문에 아무도 간암으로 진행될 줄은 생각도 못했지요.
아빠 몸 상태 컨디션도 좋고 별다른 이상 징후도 없었기에 더더욱 믿기 어려웠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암이라는 게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고 TV에서나 일어나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적 없는 일이 막상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니 더욱 인정하기 싫었어요.
전화 수화기로부터 “아빠 암 맞다는 구나.” 떨리듯 울음 섞인 엄마 목소리에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눈물만 닦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아빠 모습을 기억해 봅니다.
평소 우리 앞에서 강인한 모습만 보이셨고 의지력이 강했던 아빠, 괜찮다고, 내색안하시고 담담한 모습으로 태연하게 우리를 위로해 주어지요.
하지만 아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아빠 자신도 무섭고 겁이 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아빠가 밤마다 잠도 못 주무고 남몰래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는 엄마 말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어요.
엄마도 눈만 뜨면 우시며 저에게 전화를 하셨지요.
하지만, 전 울지 않았어요. 아니 엄마 아빠 앞에선 절대 울지 않기로 다짐했었죠.

모두 약해져 있는 모습에 전 걱정 말라며 내가 다 낫게 해줄 거라고. 그깟 놈 다 없애 줄 거라고. 엄마 아빠 나 믿지? 나 믿고 따라 올 거지? 하고 호언장담, 큰 소리 치며 했던 말 기억해요?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것도 아는 게 없기에 무섭고 겁이 나긴 마찬가지였어요.
평생 일만 하시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호강 한번 못하시고 고생만 하신 아빠를 그냥 아프게 놔 둘 수 없었어요.
내가 책임지고 아빠 살릴 거다, 꼭 살려낼 거다, 지금까지 고생한 거 다 보상해줄 거다, 되뇌며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나섰죠.

서점에서 책도 여러 권 사고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에 가입하여 암에 대한 자료와 치료 방법, 식이요법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움 주셨던 고마우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자료를 스크랩하고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니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불안해 하셨지만 아무 말 없이 믿고 하자는 대로 따라와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한창 무더운 칠팔월 한 여름, 병원에서 생활하시느라 아빠, 엄마 고생 많으셨어요.
수술침대에 올라 눈물을 떨어뜨리며 수술방에 들어가는 아빠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무서운 기분이 엄습해왔고 기다리는 내내 대기실에서 눈물만 훔쳤었는데 6시간이라는 긴 수술시간동안 아빠는 참 잘 견뎌내셨어요.

이틀 동안 중환자실에 초췌히 누워 계신 모습에 엄마는 잠깐 혼절도 하셨지만, 아빠는 저랑 어린아이처럼 파이팅하며 웃었잖아요.
면회 불가 시간에도 물티슈 핑계로 혼자 몰래 들어가 아빠 모습 보고 또 보고 온 기억도 나네요.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고 집에 돌아오셔서 한참동안 힘들어 하셨지만 워낙 의지력이 강하신 분이고 지금까지 체력을 잘 쌓아왔기에 회복도 빨랐고 많이 좋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아프기 전엔 아빠가 늘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기분 좋은 일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젠 내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삶의 의미를 찾았다, 하루하루 사는 게 새롭고 신이 난다 하시는 아빠 말에 저 또한 기분이 좋아져요.
매일 유기농으로 녹즙을 갈고 아빠 먹을 거 챙기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시지만 그 안에서 엄마는 안도감과 마음편안 행복을 느끼신다는 것도 저는 알고 있어요.
몸이 아프면 자그마한 일에도 섭섭해 하고 토라져 버리는 아빠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가끔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다 건강을 위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맘 상해하진 마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 맨손체조 하시고 매일 산에 오르실 정도로 체력이 향상되어 산악 동호회도 가입하셔서 동호회 분들과 어울리며 활동적으로 변하신 아빠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정기적으로 CT촬영과 피검사로 재발 방지를 위한 치료가 남아있지만, 지금처럼만 잘 하시고 웃으며 생활하신다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두 분이서 행복하게 사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이번 계기로 우리 가족은 서로가 더욱 가까워졌고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병실에서 아빠가 자식들은 잘 놓은 거 같다고, 나이 먹으면 자식들 밖에 없다고, 얘네들 없었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웃으며 하셨던 말 그 속에서 애틋한 가족의 사랑을 느꼈답니다.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신다는 계획 잘 하신 거 같아요.
아빠가 그리 원하셨던 황토방 짓고 찜질도 하시고 텃밭에 채소 심으시며 산에 오르고 자연을 벗 삼아 아무 걱정 없이 좋은 공기, 좋은 환경 속에서 더욱 건강해지세요.

5월에 태어날 첫 손주 무릎에 앉히며 해맑게 웃는 아기 재롱도 받으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내리 사랑도 듬뿍 주시며 행복하세요.
엄마, 아빠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고, 수술 후 좋은 일만 있다고 하신 말처럼 기분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기대하세요.
두 분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감사드리고 행복해요.

엄마, 아빠 정말 사랑합니다.

맏딸 선화 올림

뒤로월간암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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