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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보다 강한 것은 없어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4일 15:02 분입력   총 87942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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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38세) | 백혈병
 

지난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12월 달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일에 거의 모든 시간을 다 바칠 만큼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아까워 참고 일만 했고, 그러다보니 식사를 거르는 일도 잦았습니다.
회사에서 인정은 받았지만 몸은 지쳐 너무 고단했습니다.
아마도 그게 원인이었겠지요. 어디에 부딪히면 몸에 멍 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감기, 몸살이 잦아 동네 병원에서 포도당 주사 맞고 견디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포도당 주사를 맞고 일하다가 어지러움에 눈의 초점도 흐려지고 잇몸 출혈까지 왔습니다.
이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하곤 치과를 찾았습니다. 치석이 많아 스케일링을 했는데 지혈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쓰러져 의식을 잃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중앙대 병원 응급실. 발과 팔에는 온통 주사와 링거 줄이 사방팔방 걸려있고 장출혈에, 혈변까지. 이어 가슴사진 찍다가 다시 한 번 기절. 깨어보니 병실이었습니다.

그날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주치의가 엉덩이에서 살을 도려내 조직검사를 한다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부모님께서 병원을 옮기자 하셔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로 가니 병실이 없다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계속된 출혈로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았고, 그날 저녁 13층 무균실로 올라갔습니다. 다시 검사한 결과 급성골수성백혈병(M2)진단을 받고 그제야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고 가슴에 히크만 카테터(히크만 카테터(Hickman Catheter)란 가슴 위부분의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가는 대정맥에 삽입하는 관. 백혈병 환자는 약물 주입이나 채혈을 위해 사용)를 달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지요.
다른 환우들과 마찬가지로 수치가 바닥을 칠 때는 말하지 않아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정말 견디기 힘들 때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이겨냈습니다. 다행히 1차 관해유도요법하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2차 입원해 공고요법, 3차 공고요법과 네 번째는 전처치와 타인골수이식을 하였습니다.
물론 다 말하지 않아도 너무 힘들었고 아팠고 고통이었고 눈물의 나날이었지만,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컸었는지 퇴원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외래를 다니고 제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먹고 생활하는 패턴을 길렀습니다.

5년을 살겠다, 10년을 살겠다는 욕심보다는 그저 지금 이 순간, 오늘을 감사하게 살면 그게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어 뒤돌아보면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구나’ 생각되어지더군요.
서른세 살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내가 서른여덟,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저는 “덤”이라는 아름다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힘든 투병을 하고 계시는 많은 환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의 기회를 주시고 또 건강도 함께 주셔서 저는 정말 생활에 불평, 불만을 할 수 없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는데 무슨 투정을 하며 고민을 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 같이 투병하던 환우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죽어가는 것을 보면 두려움이 너무 커서 우울했었지만 나 역시 그 사람들에 속하지 않고 꼭 살아서 희망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의례 ‘백혈병에 걸리면 다 죽는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저처럼 건강해 질 수 있고 예전과 같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병원에 있을 때는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나? 내가 무슨 죄를 그리 크게 지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잘만 살고 있는데?’ 하는 생각들이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화가 날 때마다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질 거다. 나중에 아플 거 지금 아픈 거다. 나는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고 또 위로했습니다.
삶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가 매달렸을 때 외면하지 않고 기도를 들어주신 부처님, 주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희망이 될 수가 있구나.’를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람보다 강한 건 없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꼭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시면 저처럼 건강과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이 평범한 일상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의 나날입니다.

수기를 쓰다 보니 떠오르는 한 얼굴이 있네요. 황길호씨!

비록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지만 같은 병실에서 치료받을 때 형하고 치료 다 끝나면 여행가자고 한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비록 같이 여행은 못 갔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이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때 내 마음속으로 “꼭 내가 너의 삶까지 살아줄게. 내가 꼭 희망이 되어줄게.” 라며 함께 울었던 기억이 스칩니다.

병을 진단받고 4년을 투병하며 지내오면서 눈물의 시간들, 경제적인 어려움, 말 못할 일들이야 셀 수도 없겠지요.
저는 백혈병으로 인해 잃은 것도 크지만 깨달음과 얻음이 더 많아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데 지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환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희망이고, 또 투병하시는 분들의 희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시고 꼭 나을 수 있다는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뒤로월간암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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