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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더불어 살아가는 삶으로
고정혁기자2008년 04월 08일 17:11 분입력   총 87839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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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 2004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2004년 한해를 마무리 하던 12월.
독한 감기에 걸린 줄만 알고 가까운 병원을 찾았습니다. 혼자서 정말 독한 감기구나 하며 병원을 찾은 저는 몇 가지의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검사결과는 오래 걸렸고 진료과도 혈액내과로 바뀌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검사결과는 저를 절망으로 밀어 넣어 버렸습니다. 백혈병일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서울 큰 병원으로 이송시켜 줄 테니 거기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구급차에 실려 서울 신촌 세브란스로 이송됐고 이송되는 내내 나의 손을 잡고 아무 일 없을 거라, 괜찮을 거라 말을 하면서도 아내 역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나 봅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바로 골수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게 되니 불안함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더욱이 TV나 영화에서만 봐 왔던 불치의 병으로만 알고 있었던 백혈병이라니,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마르질 않았고 그런 집사람에게 전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정말 힘겹게 학교를 졸업하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행복이라는 단어와 좀 친해지려고 하던 중 왜 내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할까하는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이놈이 저의 최종 진단명이었습니다.
주로 소아에서 많아 나타나는 병으로 소아에선 완치율이 높지만 성인에게는 예후가 안 좋은 병이라고 했습니다.

최종 진단이 내려지자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제 가슴에 굵은 관을 심어 고용량의 항암제와 제 몸에 부족한 피를 수혈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살아서 처음 제 발로 병원을 찾아왔듯이 다시 제 발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두려움과 절망으로 지낼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간병을 하고 있는 아내와 막내 동생을 걱정하는 가족들, 그리고 쾌유를 비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과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서 열심히 치료에 전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40여 일간의 1차 항암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퇴원하는 날, 그토록 원했던 대로 제 발로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치료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깟 백혈병도 별거 아니구나! 이렇게만 예정대로 치료한다면 다시 건강한 삶을 살수가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차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치료에 꼭 필요한 골수이식 준비를 위해 형제들의 유전자 검사를 했습니다.
선생님도 7남매나 되는 저의 가족관계를 알고 분명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저 역시 그랬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명 두명 검사를 거듭할수록 저와 아내는 불안해졌고 그 불안함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형제들 중 저랑 일치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정말 복도 지지리 없구나, 나의 시련의 끝이 어디일까….

이렇게 실망을 하고 있는 제게 아내는 국내 공여자들 중에 일치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은 정말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국내 공여자는 물론 일본, 대만까지 찾아보았지만 일치하는 공여자는 없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밤, 혼자 병상에 누워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끝나는 걸까?
이제 더 이상 내겐 희망이 없는 걸까?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거 같았습니다. 아내 역시 이런 저를 위로하며 잘못되더라도 후회는 없게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치료에 전념을 했습니다. 그리고 4차 항암을 마친 제게 선생님은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치료 성적이 좋아서 이번 4차 항암치료만으로 입원치료를 마치고 외래를 통한 유지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직 완치의 길로 가기엔 멀고 먼 시간이 남았지만 이렇게 치료 성적이 좋아 퇴원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마치고 1년 6개월의 유지요법도 무사히 마치고 올 1월에 모든 약을 끊고 현재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백혈병으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그 못지않게 얻은 것 또한 많았습니다.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내가 받고 있던 사랑을 느꼈고 내 곁엔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런 고마운 분들의 사랑이 저의 아픔을 씻어주었나 봅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면 그 고마움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행이 하느님은 저에게 그 다짐을 지킬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 주셨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년 봄부터 한국 백혈병 환우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프기 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남을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싶습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독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고통 받을 때 좌절하고 원망도하고 많이 했었지만 그런 생각들은 치료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신념과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고가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절망과 포기는 금물입니다.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했듯이 완치의 길로 가는 첫 걸음 또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지금 병상에서 치료 중인 우리 환우분들, 그리고 보호자분들 모두 힘내시고 하루 빨리 함께 웃는 그날이 오길 기도드립니다.

뒤로월간암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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