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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10개월의 요양일지②
고정혁기자2008년 07월 11일 14:24 분입력   총 88044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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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균 | 45세. 직장암4기.

전 45세 남자이고 간 전이된 직장암 4기환자입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몇 달간 변이 잘 안 나오고 잔변감이 심하고 혈변이 나와 병원에 갔더니 암 판정을 받고 간, 쓸개, 직장 절제수술을 받고 항암 12회, 장루복원수술을 마쳤습니다.
수술 후 몸무게가 83kg에서 63kg으로 20kg이 빠지고 2시간마다 인공장루를 비워야하는 어려운 생활이었습니다.
제가 독신이다 보니 혼자 밥해먹고 투병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투병해야할지 막막하더군요. 그러던 차 감리교교육원에서 주최하는 3박4일 건강교실에 참석하여 임락경 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내가 얼마나 유해한 환경에서 의식주 전반에 걸쳐서 나쁘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입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 길은 ‘자연생활을 하는 것’ 이라 결론짓고 경남 양산에 있는 자연의원에 보름동안 입원해서 요양생활의 기초를 닦고 다시 전남 보성에 있는 교회운영 전인치유센터에 입소하여 10개월 생활했습니다.(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bn0675.org 문의 061-853-7310)

그간 꿈같은 시간들이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치유가 되어 고통스럽지만은 않고 그동안의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요양원에서 만난 환우들 이야기]

암환우는 자기 처지가 막막해서인지 잘 웁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 아줌마들은 매일 웁니다. 저도 바쁘고 할일이 많아 정신 못 차리면 울 시간도 없을 텐데, 시간이 많으니 감정곡선이 들쭉날쭉 자주 울게 됩니다.
좋은 일에도 잘 웁니다. 산책하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초록 잎을 보면 저절로 감사의 눈물이 납니다.
오! 자연의 축복이여!!

옆방 환우가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응급실로 실려 가면 울고, 돌아가신 소식에 산책하고 수다 떨던 생각나 울고, 음악 들을 때, 묵주기도 드릴 때, 찬양할 때, 통증이 심한 환우가 중보기도(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드릴 때에도 모두 눈물을 흘립니다.
서로를 위한 애틋한 마음과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져 가슴을 적십니다.

제가 요양원생활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 그동안 15분 정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1, 2기 환우들도 있지만 3기, 4기, 말기환자, 항암치료가 끝나거나, 항암거부하거나, 전이 또는 재발이 되어 병원에서는 손을 놓은 분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연치유와 영성치유에 기대는 절박한 심정으로 오는 곳이죠.
의사는 아니지만 남은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징조는 대략 알 수 있습니다.
통증이 심하고 식사를 못하고 산책 못하면 일단 빨간불이 들어오고 본인 스스로도 위축되어 마음이 먼저 알아차리고 준비를 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60대 이상이면 살만큼 살아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는가? 아닙니다. 다 똑같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연령과 관계없이 모두 같습니다.

‘살만큼 사셨으니…’ 하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막막함, 더 살고 싶은 소망, 자식에 대한 애착, 배우자에 대한 서운함, 이 모두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놓지 못하고 세상에 한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 인생이지 않나 싶습니다.

죽음은 처음엔 충격이지만 차즘 무감각해지며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고 오늘 여기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감사하고 공기, 물, 햇빛, 주위사람 모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같이 생활하는 환우들에게 후회 없이 잘해드려야겠다는 소회도 가집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혼자서는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 서너 명씩 모여 결행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남과의 소통과 교제를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환우들의 소통과 교제는 보이지 않는 항암제역할을 합니다.
모여서 수다도 잘 떨고, 웃어도 일부러 크게 웃고 산책하며 하하하 큰소리로 외치며 걷습니다.
솔직히 웃을 일이 별로 없고 어제 같은 오늘에 오늘 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인 단순하고 반복되는 투병생활을 잘 하려면 조그만 일에도 웃어야 합니다.

환우들이 모여 수다를 떨면 인생극장이 따로 없습니다. 구구절절 사연도 다양하고 살아온 인생역정도 가지가지입니다.
남녀노소가 다 모였고 성격도 제각각이니 당연히 사람 사는 세상처럼 별스럽지 않은 작은 일로도 다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죠.

공동체생활에서 부딪치는 가장 잦은 갈등은 사소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서로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부족, 공동체생활규범 위반 같은 것들입니다.
반말하기, 자리양보안하기, 복도청소안하기, 신발정리안하기, 새벽에 세탁기 돌리기,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사용하고 청소안하기, 얻어먹기만 하고 밥 안사기, 식사할 때 토하기, 암얘기만 하기, 사다리타기 내기할 때 혼자 빠지기, 늦은 시간 큰소리로 전화하기, 이런 사소한 것들로 심기가 불편해지고 고참환우에게 신참들은 혼이 납니다.

지나고 보면 우습지만 사소한 일로 트집 잡고 흉보고 꾸지람 듣고 웃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다들 어린아이처럼 행동합니다. 싫든 좋든 이렇게 교제하면서 정신적인 치유를 경험합니다.

자기 병만 심각해서 처지를 비관하다가 다른 환우들의 고생담을 듣고 통증 겪는 것을 보고는 나 정도는 엄살이구나, 내가 이정도 아픈 것은 약과구나 하고 감사해 합니다.
서른네 번 항암을 한 예순 넷 대장암 환우, 아홉 번 수술한 서른 둘 근육암 환우, 가족도 없이 홀로 말기암 투병하는 환우 앞에서 누가 감히 내가 제일 힘들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숙연하고 겸손해질 뿐입니다.

개인적인 생활도 보면 세상적인 것들(욕심, 분노, 어리석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집착합니다.
육 개월 남았다고 병원에서 판정받고도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속상해 한다거나 얼굴에 두드러기난다고 항암제를 기피한다거나, 가족들과 돈 문제로 다툰다거나, 하루 앞도 장담하기 힘든데 장래 생계걱정을 한다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헤어진 과거에 얽매여 마음의 상처에 괴로워하거나 짓눌리기도 합니다.

잘 크고 있는 자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보조식품을 맹신하여 검증된 의술(수술, 항암)을 거부한다거나 피부에 안 좋은 화장이나 몸매에 신경 쓴다거나 고집스레 통증을 참으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병원에 안가고 기도만 하는 경우, 과도한 금식으로 신체밸런스가 망가지는 경우, 사소한 일에 화내고 짜증내고 집착하는 경우 등등...
저의 경우도 사회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자괴감이 드니까 우리 모두가 허망한 것을 붙잡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우화에 보면 무서운 코끼리에 쫓긴 한 사내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는데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고 또 우물 중턱에는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두 팔은 아파서 빠질 듯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매달린 넝쿨을 쏠고 있는 그 와중에 등나무에 매달린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이 사람은 꿀을 받아먹으며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됩니다.
그 위급한 암환자가 탐진치(삼독, 탐욕과 화냄과 어리석음)를 붙잡고 있는 우매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반성해 봅니다.

법사님이 말씀하시길 ‘화살을 두 번 맞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미 육체의 화살을 맞았으니 마음의 화살은 피하라는 건데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그래도, 몸이 아플 때 마음까지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비탄과 마음의 질곡을 해소하고 평화를 갖기 위해서는 종교생활이 필수인거 같습니다.
전에 있던 곳에서는 오전에 5명 정도 환우들이 오전 산책코스로 가까운 암자를 찾아 일백 배 불공을 드리더군요.
이곳도 교회운영 요양원이라 매일 예배를 드립니다. 기도 후 환우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마음의 안식과 평화가 얼굴에 가득 흐릅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평안을 주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겠습니까?

암환자들은 반드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는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과 하나님은 불쌍한 우리에게 구세주고 안식처요, 인생의 촛불이 타고 있을 때나 꺼져갈 때 우리를 비춰주는 유일한 빛이고 동반자입니다.

한밤 어두운 방에 혼자서 통증으로 아파할 때 누가 우리의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제가 주위 환우를 보면 공통으로 믿음이 깊으신 분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담대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 본받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게 다가온다면 그분들처럼 여여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인데 과거에 매여 속상해하는 것은 허상에 매달리는 것이고,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데 오지도 않는 내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허망한 것입니다.
오직 진리는 오늘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처지에서든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사랑받는 세포는 암을 이긴다고 합니다.
사랑의 중보기도를 할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 껴안아주며 “사랑합니다” 라고 속삭입니다.
이것이 암환우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킨십입니다.

암환우 및 가족 여러분! 조금 쑥스럽겠지만 서로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합시다.

뒤로월간암 200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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