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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피아노 치는 남자
고정혁기자2008년 09월 08일 22:45 분입력   총 87876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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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 춘 길_아내(서지숙 48세)의 두 번째 유방암 발병.

아내가 첫 번째 유방암이 발병한 때가 2001년 6월이었고 두 번째 발병이 2007년 2월이었습니다. 암이란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인 줄 알고 무심히 살아왔었는데 아내가 암이라니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기다린 끝에 나온 진단은 의심의 여지없이 유방암 2기말 3기초라는 결과였습니다. 병원의 진단이 있기 전 나의 촉각에 의해 우측 가슴에 멍울이 잡혔었고 그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도 제 엄마 가슴을 만져보다가 기분 나쁜 덩어리가 만져진다고 혹시나 하며 긴장 중에 병원을 찾았었는데…. 그나마 나와 딸애의 촉진으로 빨리 발견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항암주사를 6번만을 맞고 부작용이 심하다며 5년 동안 먹어야 하는 약을 보름 만에 임의로 끊어버렸습니다. 그 약을 먹고 나면 온종일 누워있어야 하고 힘을 쓸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어찌어찌 잘 견뎌오고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학업과 직장생활을 하며 잘 넘겨 작년에는 생존 5년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덕담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또 다시 왼쪽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고 검사와 진단 끝에 유방암 2기 반이라는 결과를 듣고 다시 또 가슴절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으면서 내 생각하기에는 발병원인중의 한 가지를 환자 본인이 받는 심한 스트레스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두 번째 수술직전 담당의사에게 “암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냐?”고 물었을까요.

약 6년 전 절친하고 사려 깊은 두 명의 내 친구들은 아내의 발병원인을 내게서 찾으며 발병의 원인 제공자가 나라는 말을 하며 위로와 비난이 섞인 충고로 우정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을 갖고 누군가는 꼭 옳은 일을 해야 한다며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감을 집사람에게 준 결과가 아니겠냐고 몰아세운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진단이 있기 얼마 전에도 딸아이의 대학입학등록을 앞두고 가슴을 쥐어뜯는 답답함을 하소연했었지요. 심한 정신적 압박이 유방암발병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어진 두 번의 가슴절제 수술로 아내는 여자의 상징인 유방이 이제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스트레스의 원인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가슴의 혹 역시 내가 발견하여 그나마 손쓰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게 한 것은 심하게 말하면 병 주고 약 준 결과라고나 할까요.

나의 부족함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삶의 방식이 아내에게 심한 정신적 피로감으로 누적되었다는 결과가 암 발병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거듭 확인합니다. 이제 다시 또 평생토록 암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운 사투를 벌여가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봅니다.

수술 후, 회복 중에 바람을 쐬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으로 암환자 지원센터에서 주관한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2박 3일 동안의 완도캠프 중 저의 별명은 자칭 “피아노 치는 남자”였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피아노를 잘 쳐서 가슴의 멍울을 그나마 늦지 않게 발견을 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아내의 가슴을 남편들은 유의해서 잘 만져보라는 교훈(?)담긴 별명이었습니다.

내 사정 네 사정 말하지 않아도 다 통하는 같은 처지의 환우들과 어울려 다시금 새 힘을 충전 받고 힘을 내는 가족들을 보며 함께 나눈다는 것의 진한 의미를 새삼 되새겨 봅니다. 어깨 걸고 힘 모아 지혜모아 함께 가노라면 웃을 일도 더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피아노 연주할 아내의 가슴은 사라졌지만 저는 또 다시 정성스러운 연주를 계속합니다.

연륜이 더해가고 힘든 순간순간의 고개를 넘으면서 점점 더 깊어가는 사랑의 그윽함을 위하여….

아내의 마음을 만지는 피아노 연주는 계속 될 것입니다.

 

환우여러분들의 쾌차를 늘 빕니다.

뒤로월간암 200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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