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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10개월의 요양일지 세번째 이야기
고정혁기자2008년 09월 08일 22:47 분입력   총 88419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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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공창균_45세. 직장암4기.

저는 45세 남자로 간 전이된 직장암 4기환자입니다. 간, 쓸개, 직장 절제수술을 받고 항암 12회, 장루복원수술을 마쳤습니다. 그 후 감리교교육원에서 주최하는 3박4일 건강교실에 참석하여 임락경 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운 후 자연의원(경남양산)에 보름동안 입원, 요양생활의 기초를 닦고 다시 전인치유센터(전남보성)에 입소하여 10개월 생활했습니다.(복내전인치유선교센터 bn0675.org 문의 061-853-7310)

지금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치유되었고 지난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요양생활을 하실 환우님들께 도움 되기를 바라며 10개월간의 경험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요양원생활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

요양원이 나에게 좋았던 점 10가지를 보면

 1. 식사가 좋습니다.

1식 5찬 황제식단으로 울긋불긋 모양도 예쁩니다. 제가 너무 식욕이 좋다보니 먹성을 보고 다들 놀랍니다.

“참 잘 드시네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식욕이 나네.”

잘 먹어도 이곳에선 인기가 좋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다들 깨작깨작 먹습니다. 특히 위암환자들은 밥은 많이 퍼오는데 먹지를 못하고 부러움 반 인상 반으로 쳐다보며 놀랩니다.

“요양비 더 내셔야 할 것 같은데...”

 2. 물, 공기, 산책로, 자연이 좋습니다.

물은 화장실물 그냥 먹습니다. 공기는 말할 필요 없지요. 폐암환자가 그래서 제일 많습니다. 산책로는 임도로 잘 뚫려져 있고 동네 제일 위에 위치해서 일반인도 없습니다. 1시간 코스, 30분 코스,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겨 걷습니다. 저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합니다.

 3. 동병상련 환우들이 있어 좋습니다.

암의 모든 과가 있습니다. 폐, 대장이 제일 많고 위, 간, 뇌, 유방, 자궁, 백혈병, 췌장, 후두, 근육 등. 가끔 우울증도 옵니다. 가족들은 암환자 심리를 몰라 서운할 때가 있는데 환우들끼리는 같이 울어주고 같이 웃어주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줍니다. 다양한 인생경력들. 평범한 회사원인 제가 어디서 이런 분들을 만나 하루 종일 붙어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나누겠습니까.

 4. 매일 예배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종교든 갖는 것이 마음안정에 좋습니다. 저는 성당에 다니지만 예배는 교회에서 보고 방안에선 금강경을 읽고 묵주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은 다 좋은 말씀만 하시고 영적치유를 해주십니다. 믿음, 소망, 사랑, 감사, 자비, 평강, 은혜, 구원, 축복, 아뇩다라삼막삼보리(무상정등각; 바른깨달음),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이런 긍정적이고 선한 말들은 치유에 큰 도움이 됩니다.

 5. 천사 같은 아이들이 있어 좋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 직원분들 가정에 자녀들이 같이 사는데 환우들도 자녀들 데리고 지냅니다. 암환우랑 애들이 같이 밥 먹고 노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보통 요양원처럼 노인환자들만 있지 않고 아이들이 있어 활력이 됩니다.

 6. 다양한 프로그램과 방문자가 많아 좋다.

전인치유를 지향하므로 영성치유(예배), 음악치료, 미술치료, 운동치료가 있고 교회 네트워크가 발달되어 있어 다양한 외부인들이 찾아와 서로 소통합니다. 교회사람, 봉사자들, 음악 공연, 전인치유세미나 등등.

 7. 5일장 구경과 시골풍경이 좋습니다.

복내장(4일/9일), 화순장(3일/8일), 보성장(2일/7일)이 제가 누비고 다니는 장터입니다. 2만원만 들고 나가면 웬만한 건 다 사고 시골장구경도 재미가 쏠쏠하며 만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과 알고 지내며 그 분들 바라보는 것도 사진속의 한 컷으로 남습니다. 주암호반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도 아름답고 대원사 벚꽃의 찬란함, 보성녹차밭의 푸르름도 가슴에 담겨 있습니다.

 8. 숙소가 좋습니다.

1인실로 황토, 소금, 숯으로 도배한 방과 베란다에서 숲을 내다봅니다. 맥반석 돌침대, 화장실, 욕조, 나무책상, 냉장고, 서랍장, 장롱, 웰빙 팬션입니다. 이전에 머문 곳에서는 다인실인데 저같은 환자는 배변이나 불면증, 통증 등으로 화장실 있는 1인실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와서 방을 보고는 다들 놀랍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9. 목사님과 직원들이 좋습니다.

헌신적으로 부부, 자녀들이 들어와 살고 식당은 목사, 전도사 사모님들이 일합니다. 처음 밥 먹을 때 다들 또 놀랍니다. 통상 주방은 나이 드신 듬직한 아주머니들이 일하는데 여긴 젊고 아름다운 처녀들이 요리를 한다고 좋아합니다.

 10. 요양원의 마스코트 햇님이, 달님이가 좋습니다.

그레이트 페레니츠. 신문 우유배달도 한다는 놈들. 내 방에서 망원경으로 항상 놈들을 쳐다보며 행복감에 젖습니다. 내 꿈이 시골에서 백구두에 몸빼 입고 마당에 똥개 2마리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암 선고받고 이런 꿈도 못 이루고 가나 슬퍼 울었는데 소원성취 했습니다.

 

 

요양원이 나에게 불편했던 점 10가지

이곳 요양원도 불편하지만 참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 또 새롭게 거듭나는데 필요한 과정들이라 생각합니다.

 1. TV가 없습니다.

전에 있던 양산 자연의원에서도 TV는 없었습니다. TV가 소비를 자극하고 외출하고 싶어지고 규칙적인 생활을 흐트러지게 하고 속세의 무절제한 생활이 연결될 수 있고 취침시간 10시를 넘기게 할 우려가 있고 산책, 예배에 소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 핸드폰이 안 터집니다.

산속이라 안 터지는데 산책할 때 산에 올라가면 문자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요하면 공중전화를 사용하거나 유선전화를 설치하면 됩니다. 자주오던 전화도 으레 핸드폰 안된다니 안옵니다. 내가 잊힌 건 아닐까 염려되지만 이젠 내가 먼저 잊어버립니다. 내가 없어도 친구, 직장동료들은 바삐 잘 살고 있고 세상은 잘 돌아갑니다.

 3. 심심합니다.

가끔 네온사인이 그립고 도시생활도 그립습니다. 영화도 보고 싶고 사람구경도 하고 싶습니다. 가족이 보고 싶고 속세의 번잡함과 바쁜 일상에 빠지고 싶고 비오는 날이면 소주에 삼겹살이 그립습니다. 그 많았던 술친구들은 지금쯤 어느 대포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을까? 평생 술, 담배 못하고 소주에 삼겹살을 먹지 못하고 콜라도 못 마시고 초코파이, 라면, 순대, 피자, 튀김, 오뎅, 치킨, 아무것도 안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인생이 심심해지더군요.

 4. 암 얘기가 듣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선택해서 온 귀양이지만 전부 암환자다보니 암 정보과잉입니다. 아프다는 얘기, 항암얘기, 대화도 암!암!암!

 5. 대화상대가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정과 친구, 직장을 떠나 왔으니 요즘 말로 코드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새로 사귄 사람들과의 교제도 좋습니다. 사회에서의 교제는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여기서의 교제는 강제로 주어진 것인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 입맛에 맞는 편식성 교제보다 종합비타민처럼 입맛에 안 맞을지는 몰라도 정신건강에 유익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분들과 공동체생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암이 준 선물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요양원엔 남자보다 여자가 많습니다. 특히 교회 운영하는 곳엔 더 그렇습니다.

남자는 아파도 집에 있으면 부인이 밥 빨래 다 해주고 투정도 짜증도 받아주고 하는 간병인이 있으니 요양원에 올 이유가 적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밥해 줄 사람도 없고 남편은 돈 벌러 밖에 나가고 누가 간병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 짜증 다 받아주고 같이 수다 떨어주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남자라서 친구는 남자가 좋습니다. 같이 형, 동생, 친구처럼 지낼 수 있으니까요. 오죽했으면 30~50대 남자환우 들어오라고 기도까지 했겠습니까.

 6. 요양체계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곳 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 요양시설이 시스템이 열악합니다. 영세하기도 하고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 있고 암 정보나 시설, 치료기구, 대체요법프로그램들이 매뉴얼화 되어 있지 않고 주먹구구식입니다. 통증, 체력관리, 식욕관리, 비상응급체계 환자정서관리, 1:1 맞춤간병 서비스 등등. 그래도 제일 중요한 자연환경과 영성생활이 갖춰져 있어 그런대로 만족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양원에 오면 다 나을 수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투병하는 것보다 조건이 좋고 자연생활을 통한 면역강화, 체력보강, 마음의 안정을 기대하시면 됩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도심 공기가 안 좋은 곳이거나 아파트거나 간병해줄 사람이 마땅히 없거나 유기농 식이요법 하기 힘들거나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경우, 정신적으로 시골 산속에서 넉넉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경우 가족이 화목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요양원이 좋습니다.

 7. 경제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있는 사람이야 괜찮지만 없는 사람은 요양비가 부담이 됩니다. 어떤 환우들은 수술하고 나서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이곳 환자들은 보통 암환자들보다 증세가 심해서 일할 몸이 못됩니다.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은 자녀분들이 비용부담을 해줘서 자식들한테 미안한 눈치이고 자녀가 어린 사람들은 배우자와 자녀들은 별도로 생활하므로 생활비가 이중으로 들어 힘들어 합니다. 그래도 다만 몇 달이래도 이런 지상천국에서 지낼 수 있어 고맙고 우리끼리도 우린 행복한 사람들이다 라고 얘기합니다.

솔직히 대체요법, 보조식품에 돈도 쏠쏠히 들어가고 전체적으로 암투병의 비용은 의료보험 혜택이 늘어 의료비보다는 생활비(요양비, 유기농 식품비용, 보조식품 비용)가 더 많이 드는 실정입니다. 효과도 불분명하지만 들으면 만병통치약처럼 솔깃한 보조식품들은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8. 요양전문인력이 부족합니다.

영성, 행정, 주방인력, 시설관리, 영농, 간호의료, 운동/대체요법, 치료인력이 필요한데 규모가 영세하고 요양산업이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전문인력 양성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불치병 치유라는 사명으로 봉사와 희생의 소명감으로 헌신할 전문가들이 보람을 갖고 뛰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9. 공동체생활이라 자유가 좀 그립습니다.

여기도 요양원 공동체생활이다 보니 공동체에서 나름대로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난 자유스럽게 사는 스타일이라 외부에 자주 나가는 편이지만 눈치는 보이고 프로그램도 다양하지만 좀 게으른 유혹에 빠지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외출중독증에 걸리면 나갈 핑계를 찾게 되고 원래 목적인 요양에 불충실하게 됩니다. 묵묵히 구속받더라도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 참고 견디고 혼자서 자기성찰도 해보고 요양 프로그램을 규칙적으로 습관화시키는 인내와 절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너무 자유스럽게 생활한 결과가 이 몸이니 엄격한 자기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10.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가 아닙니다.

꼭 요양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암환자가 모인 곳엔 이런 편견들이 있습니다. 암환자 스스로 병에 걸린 원인을 자기 탓이라 하며 잘못을 저지른 양,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다고 자책하거나 심리적으로 자기비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심지어 설교나 강의 때도 가끔씩 그런 말이 나옵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의 특징, 성격유형, 생활을 잘못했다고 하거나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걸렸다며 앞으로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훈계.

암환자는 죄인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소심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남편이 속 썩여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몸이 아픈 것이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매도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음까지 상처입힐 필요는 없습니다. 화살을 한 번 맞았으면 됐지 화살을 두 번 맞지 말고 화살을 두 번 쏘지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상담강사인 구성애씨가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극복하고 치유한 것은 어머님의 사랑과 포옹이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울고 있는 어린 딸을 꼬옥 껴안으며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맺는 말]

요양원을 나오면서 감정이 벅차올랐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정도 많이 들고 많은 환우들과 교제하며 사랑을 나눴고 몸과 마음이 많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자연치유와 영성의 힘으로 완치되어 집으로 사회로 복귀하셨지만 더 많은 분들이 소천하셨고 아직도 아파하고 있는 데, 이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서 나간다고 여겨져 돌아가신 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요양원에서 배운 것은 투병방법이나 몸에 좋은 식품, 치유프로그램이 전부는 아닙니다. 암환우에 대한 사랑과 연민 자비심을 가슴속에 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리라는 다짐을 합니다. 요양원생활은 자연속에서 병을 완치하려는 좋은 환경을 이용할 수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인생을 정리하고 여유롭게 평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정감을 내게 주었습니다.

내가 암환우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것은 요양원생활을 몇 개월 해보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만 힘들게 투병하는가 하는 소외감이 없어지고 의식주전반에 걸쳐서 어떻게 생활하고 투병할 것인지 많은 정보와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거칠고 불안한 마음을 환우들과의 교제를 통해 치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믿음까지 갖추면 영원한 보호자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건이 안 되면 단, 일주일, 10일이라도 가보시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음악치료하시는 목사님이 좋은 항암보약을 한 첩 처방해 주셨는데 그 탕재는 “항기쉬기범감탕”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 (데 5,16~18) 우리 환우들이 이 말씀대로만 산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어차피 인생이란 40세에 죽으나 100세에 죽으나 뒤돌아보면 찰나이고 암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노환으로 죽든 언젠간 가야하는 지금 닥친 현실이고 두려움과 불안이 실재이므로 매일매일 마음을 비우고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라 과거에 자유롭지 못하고 속상해하는 것은 허상에 매달리는 것이고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고 오지도 않는 내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도 허망한 것이며 오로지 진리는 오늘 "지금 여기에" 살아있다는 것이며 그러하기에 어떤 처지에서든지 현재 숨 쉬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사랑받는 세포는 암을 이긴다고 합니다.

사랑의 중보기도를 할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서로 껴안아주며 “사랑합니다”라고 속삭입니다. 이것이 암환우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킨십입니다.

암환우 및 가족 여러분 조금 쑥스럽겠지만 서로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합시다.

뒤로월간암 200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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