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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 10] 살아 있다는 것, 참 좋은 거다
고정혁기자2008년 09월 10일 14:53 분입력   총 88185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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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소담 이승섭(74)_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림프절 치료 중. 비절제 식도암 생존율 0%라는 비정한 숫자를 도전으로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참 좋은 거다

2007년 5월 17일(목)

벌써 여섯 번째 밤이다. 여기는 호주 시드니 린필드에 있는 딸네 집이다. 서울과의 시차는 시드니가 서울보다 한 시간 앞선다. 서울의 오후 8시라면 초저녁일 뿐인데 여기서의 9시는 벌써 깊은 밤이 되고 있다. 거리엔 인적이 전혀 없다. 하기야 대낮에도 집 앞 큰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어쩌다 승용차들만 달리는 한적함에 쌓여 있는 곳이다.

인적만 없는 것이 아니다. 주택가라고하나 집이 온통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어 숲 속의 집이란 느낌이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정원수가 아니고 원시림 시절에서 이어져 내려온 십여 미터 키가 되는 울창하고 거대한 유카리나무가 열 그루나 있다.

유카리나무 사이사이로 여러 나무며 정원수들이 있고 이웃집들 또한 모두가 그런 상태니 온 동네가 숲 속의 집 같은 느낌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령이 기백 년으로 천연기념물 지정이라도 받을만한 아름드리나무들이라 당국의 허가 없이 베어버릴 수 없다.

내가 과연 암환자 맞는지…

환자란 것도 잊고 딸과 함께 여러 곳을 다녔다. 주로 녹즙재료와 먹거리를 장만하기 위해서다. 지난 토요일 아침에 도착하여 일요일 하루 빼고는 오늘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시장 보러 다녔던 것이다.

건강할 때도 쇼핑한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면 피로함을 곧잘 느꼈었다. 그런데 ‘다리 힘도 없는 내가’ 건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쇼핑을 한 것이다. 돌아오면 쉴 새 없이 어린 외손녀들과 함께 노는데 골몰했다. 특히, 첫째 손녀 서영이는 그 전에도 그랬듯이 내 주변을 맴돌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래를 부르며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나도 서영이에게 동화되고 만다.

지난 토요일 아침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후 사위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시드니 시가지를 가로지르면서 북상하여 딸네 집이 있는 린필드로 달리는 동안 거리에 심어진 유카리나무 가로수들을 다시 볼 때의 그 감회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는 벅찬 것이었다. 살아서 시드니를 다시 방문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식도암 환자가 아니었던가.

외과적 절제 수술을 거쳐도 살아남기가 힘든 고약스런 식도암환자였는데 수술없이 방사선 치료와 항암주사만으로 식도암을 물리치고 내 발로 걸어 시드니까지 도착했으니 살아 있다는 이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가 있겠는가!

살아 있다는 것이 참 좋은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시드니에서의 식사

2007년 5월 19일(토)

아마도 호주라면 고기 값이 가장 싼 나라일지 모른다. 딸아이 이야기를 들으면 사골 같은 것은 정육점에서 그냥 주었었단다. 한국인이 꽤 많아진 요즘은 사골도 돈 받고 팔고 있다지만.

한국에서는 제비추리를 얼마에 파는지 모르겠는데 엊그제 1kg당 13달러에 사왔으니 약 1만 3,000원을 치룬 셈이 된다. 생선도 야채도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싼값이다. 모처럼 친정 부모를 대하게 된 딸아이 마음은 끼니마다 뭔가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려고 부산을 떤다.

하지만 나름의 엄격한 식이요법을 계속하고 있으니 아내만 음식을 이것저것 맛볼 뿐 나의 식단은 예나 지금이나 단조롭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이다.

여덟 가지 잡곡밥 60그램이 주식이고 찬은 홍합육수 미역국, 구운 마늘 다섯 조각, 마늘종 열 쪽, 부추 여남은 가닥, 방울토마토 세 개가 전부인데 무염식 식사라 아내가 우겨 깍두기 몇 개(두 개만 먹었다)와 김치 몇 조각을 먹었다.

식전 30분 무렵에 녹즙 300cc 정도는 마셨으니 야채만은 충분히 섭취한 셈이어서 식사를 마치면 배부른 느낌이다. 실제로 체중이 암 발병 전 체중을 웃돌고 있으며 요즘은 배가 나와 고민이다.

곁들여져 있는 도넛 같은 것은 어제 밤, 새로 뜬 청국장 날 것이다.

생청국장을 두어 수저 치즈 먹듯이 떠먹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못 할 식사 방법일 것이다. 나야 어차피 과거의 식성, 입맛을 탈피하여 식사가 아니라 끼니마다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이니 날 청국장이나 그저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하다.

그런데 외출을 하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딸아이가 이끄는 데로 어딘가 들려 점심을 사먹어야 한다.

딸아이는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아비에게 뭔가 색다른 음식을 맛보게 해주려고 애쓴다. 그저께인가는 이든가든(Eden Garden)이라는 웰빙 음식점에 들려 점심을 사먹었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웰빙 흐름은 호주도 예외가 아닌 듯 식료품 가격이 이중 구조로 되어 가고 있다.

오가닉(organic)이라 하여 소위 유기농산물이 등장하고 있는데 일반 식료품에 비해 무척 비싼 가격체계를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웰빙 바람이 일고는 있지만 일반 농산물들도 농약, 화학비료, 방부제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과 같은 과일은 바지에 쓱쓱 문지른 후 껍질째 그냥 먹고 있다.

헤드 웨이터가 건네는 메뉴판을 읽어본들 음식을 짐작하기 어려워 값싼 음식을 주문하였는데 13불짜리다. 제비추리 1Kg값이다. 음식 가격을 식료품 가격으로 환산해 보는 것이 좀 촌스런 기분도 들지만…

나온 음식을 보니 박하잎과 고초 등의 생잎이 수복하고 그 아래엔 찐 단호박 세 덩어리, 찐 비트 여남은 조각, 호두 여남은 조각, 각설탕 모양의 치즈 네 다섯 개 등 채식 위주의 내 식성에 알맞은 채소들이었다. 그래도 13불이란 값은 너무하다.

저녁 식사는 청국장 찌개였다. 청국장은 엊그제 내가 직접 뜬 것이다. 서울이나 시드니나 내 식으로 내가 해 먹는 것을 원칙으로 고집한 것이다. 밥은 여전히 잡곡밥 60그램 정도다. 샐러드는 아내와 손녀들도 같이 먹었으니 내가 먹은 것은 불과 일곱 여덟 점이었다.

고기의 나라, 생선의 나라, 과일의 나라에 와서 내가 먹는 식사 범위는 대충 이런 정도였다.

귀국할 때까지 그냥 이 정도의 식사로 끝낼 생각이다.

암환자의 식이요법 중에서 고기 종류의 섭취에 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채식주의가 가장 바람직스럽다는 내 생각 때문에 채식을 하고 있는 것이지 누구나 꼭 채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다. 이 문제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결정 되어야 할 문제다. 또한 그 결과도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급한 귀국 결정

2007. 05. 21(월)

한국 사람이 시드니에 도착하면 맨 처음 느끼는 것이 공기가 맑고 좋다는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서울의 스모그 공기 속에서 시달려 온 사람들이라면 비교조차 무의미한 맑은 공기에 감탄부터 할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의 방문이지만 처음 때나 이번이나 공항에서 맨 처음 느낀 것이 맑은 공기였고 새로운 자연 속에 풀려난 해방감 같은 고양되는 기쁨을 느꼈었다.

관념적 의식 속에서도 호주의 공기라면 무조건 좋은 공기일 것이고 나 같은 암환자라면 가장 바람직스런 공기 라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틈틈이 깊은 숨쉬기만은 계속했다. 날씨가 늘 좋았기에 주로 정원에서 내 식의 깊은 숨쉬기를 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내다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이상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깊은 숨 쉬기는 단순한 호흡운동이 아니다.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일컬어지는 기의 운동이란 성격이 더 짙은 호흡법이다.

이상한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한국에서 느꼈던 것 같은 기의 충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공기야 말할 수 없이 깨끗한데 기의 충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웬일일까?

나의 기가 호주라는 거대한 대륙적 기에 억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한국과 달리 굵직굵직하고 커다랗다. 유카리 나무들의 거대함에는 늘 놀랜다. 모든 나무들이 굵고 크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들의 풀들까지도 큼직큼직하다. 한국에서도 왜소한 체구인데 호주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도 작고 볼품없는 나의 체구다. 말조차 알아듣기 힘들다. 호주 발음은 미국 발음과도 또 다르다.

환경의 차이 속에 하루하루 나의기가 죽어가고 있었나보다.

환자는 우선 기가 살아 있어야 효과적인 치료와 요양생활을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너무도 당혹스런 현실 감각 앞에 깊은 숨쉬기조차 제대로 못했다.

사람은 태어난 곳의 풍토적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풍토가 전혀 다른 곳으로의 전지요양이란 것이 과연 효과적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나의 잘못된 망상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의 생명을 두고 불확실 속에 안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바보같은 결정이며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아냥을 받을망정 나의 뜻대로 요양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오늘 최종적 결정을 내렸다.

금주 금요일 25일은 사랑하는 딸아이 생일이다. 생일 아침까지만 함께 있어 생일을 축하해주고 바로 귀국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 계획된 여정을 닷새나 앞당겨 귀국하겠다는 것이다. 공기가 맑고 좋은 나라에서 공기가 탁한 서울로 서둘러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거, 미친 짓 아닐런지…

3년 생존율을 뚫고 나면 내년 10월 무렵 다시 한 번 시드니를 방문할 생각이다.

[후기]

서둘러 귀국하는 이유 중에는 통증 문제도 있다. 방사선 후유증인 통증들이 많이 줄었고 간헐적 통증은 있었지만 견딜만한 아픔이었기에 여행길에 나섰던 것인데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통증이 잦아지더니 시드니에서는 매일 같이 아픔의 깊이가 심해지며 지속적 통증마저 일기 시작했었다. 진통제는 마약 종류라 통관이 염려스러워 갖고 오질 안했기에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견뎌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현기증도 더 심해지고 여독이라는 것이 몸을 감싸는 것 같아 서울을 떠나 있는 것이 슬며시 겁도 나고 있는 판국이다.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어가고 있어 안경을 써도 모니터 화면 초점이 이중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드니에 더 이상 머무는 것은 몸 안의 여러 질병들을 키우는 일 같아 당장이라도 서울로 돌아가 모든 검사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다시 보자 싸우던 크로쓰(남십자성)여~

2007년 5월 24일(목)

지금 시간은 정오를 지나 12시 20분. 한국은 11시 20분이겠다.

동네도 조용하지만 집안은 더욱 조용하다. 사위는 출근하였고, 애들은 학교로, 아내와 딸은 쇼핑하러 나갔다. 넓은 집안에 덜렁 나 혼자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다. 컴퓨터가 있어 외롭지 아니하고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두어 시간 전부터 앞마당 동백나무에 감긴 덩굴 잡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너무 피곤하여 집안에 들어와 차 한 잔하고 있는 중이다. 두어 시간밖에 안되지만 몸에 힘이 없어 쉬엄쉬엄하여 건강한 사람의 20분도 채 못 될 작업량이다. 그래도 오늘 밥값은 한 셈이다.

내 밥값이라야 한 끼 백 원 어치도 될까 말까하는 것이니…

실은 사위집에서 반가운 식물 두 종류를 만났다. 하나는 무궁화 묘목이며 또 하나는 금은화 덩굴이다. 시드니에서 무궁화 묘목을 만나다니. 왠지 모르게 반가움에 젖었다.

사부인께서 사다가 심으셨다는 사위의 이야기였다. 사부인은 지금 서울에 계신다. 시드니에서 딸 내외가 맘 편히 지내라고 서울로 자리바꿈을 하셨나보다. 너무도 고맙고 송구스런 따듯한 배려다.

처음엔 금은화란 생각을 못했었다. 앞 정원 동백나무에 희고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기에 사위가 너무 바빠서 정원수 손질을 제때에 못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동백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들풀 잡초들은 걷어 내주려고 생각했던 것인데 자세히 관찰해보니 틀림없는 금은화였다.

금은화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귀화식물로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여기 호주에서도 금은화가 맹렬하게 번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백나무 윗부분을 모두 차지했던 금은화를 걷어냈더니 새 순과 꽃봉오리로 수복한 느낌을 주어야할 동백나무 윗부분이 움푹 패버렸다.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카락 다 빠진 꼴이다.

지난 2003년도에 들렀을 때는 정원 일도 많이 했었다. 이번에는 몸이 말을 안 들어준다.

‘해마다 꽃은 같지만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도다’란 유명한 한시는 나를 두고 읊었던가. 3주라는 짧은 여정을 채우지 못하고 닷새를 단축시켜 내일이면 귀국한다. 퍼져가는 통증이 겁나는 상태이고 왠지 기가 자꾸만 죽어가는 것 같아 귀국을 앞당긴 것이다.

너무도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두 가지 일을 얻었다. 하나는 딸이 다니는 ‘열린문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것이며 또 하나는 남십자성을 확인한 것이다.

북반구에서 북극성이 북극을 가리키는 별이라면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이 남극을 가리키는 별이다.

바다를 항해할 때면 늘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는 말이 있는 별이다. 시드니 5월 하순의 성좌는 남십자성이 바로 머리 위에 있어 고개를 뒤로 젖혀 쳐다봐야 볼 수 있었다. 북극성의 광도가 그다지 밝은 별이 아니듯 남십자성의 광도도 밝지 않았다. 광도로 친다면 동쪽에 있는 쥬피터와 서쪽에 있는 시리어스가 무척 밝았다. 맑은 하늘에 글자 그대로 반짝반짝 크게 빛내고 있었다.

체재일도 못 채우고 급히 귀국하는 것이지만 남십자성을 다시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1년 2개월만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3년 생존율 0%라는 식도암 비절제 환자에게 주어진 비정의 숫자를 보란듯이 뛰어넘는 것이다.

꼭 그렇게 되고 싶다.

꼭 그렇게 될 것이니 다시 보자! 싸우던 크로스여! 3년 생존율을 넘는 그 날에…

방사선 통증

2007년 6월 3일(일)

제2차 방사선 치료를 끝낸 지도 어언 145일이나 되었다. 다섯 달이나 된 것이다. 그런데도 방사선 치료 부작용에서 오는 오른쪽 목 부위 통증은 아직도 뒤를 끌고 있다. 평소에는 전혀 느낌이 없다. 만져보면 전이되었던 림프절이 있는 그 언저리에만 둔통이 있다. 멍멍하게 아픈 것이다.

그 정도의 부작용이니까 벌써 다 나은 것 같은 아주 기분 좋은 시간이 지속된다.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으련만 방사선 부작용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느닷없이 목 부위 통증이 살아나고, 목 뒤도 아프고, 앞가슴 오른쪽 가슴 언저리가 면도날로 맨살 도려내듯 날카로운 아픔이 엄습한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어깨뼈 등 쪽 부위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둔하고도 무겁게 느껴지는 압통(壓痛)이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그 순간만은 진통제 생각이 간절하다. 다만 고마운 것은 그러다가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통증들이 저절로 가라앉는 것이다.

벌써 한 달 정도 지속된 현상이다. 호주에 다녀오기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나름대로 관찰과 분석을 하여본 결과 다음 같이 통증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외출하려고 상비구급약이 들어 있는 무거운 손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메어 오른쪽 어깨에 하중이 걸리면 통증이 시작되어왔던 것이다. 목 운동을 한다고 목을 전후좌우로 굽히고 돌리고 하고나면 그 때도 통증이 이러난다. 허리 굽히며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려고 온 몸에 힘이 들어간 후면 또 어김없이 통증이 일어나는 것이다.

통증이 일어나는 부위는 방사선 조사 방향 따라 띠를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방사선이 지나간 자리들이 아프다는 것이다. 방사선이 지나는 길을 따라서 조직들이 화상 입는 현상이 있었다는 추리가 성립된다. 그리고 통증의 발상지는 집중 조사를 받은 전이된 림프절이다.

방사선을 1차 때 6,300선량(cGy) 2차 때 6,000 선량, 도합 12,300선량을 맞고 떡이 되어(켈로이드화) 탄력을 잃은 살덩어리들이 목에 있으니 이놈을 당겨주는 자극을 주면 주변 생체조직과의 경계부분에 불균형 압력이 작용하게 되니까 압력을 받은 조직들의 신경말초에서 통증 물질이 형성되며 순간적 방사현상이 일어나 이미 손상된 조직을 모두 커버하는 통증 벨트가 생긴다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님~ 이런 추리 맞나요? 뭐 대체로 맞겠죠?

그렇다면 암 치료와 관련지어 우려할 그런 통증은 아니라서 마음 놓인다.

시간만 어느 정도 더 지나준다면 통증이 많이 가라앉고 언젠가는 안 아플 테니까. 힘들긴 하겠지만 기분 좋게 견디는 수련을 쌓아보자. 마조히스트(masochist)라도 된 셈치고.

통증을 뗐다. 우연히...

2007년 6월 11일(월)

벌써 2년 가까이 병원을 들락거리다보니 가끔은 실수도 한다. 지난 7일(목요일)은 식도역류에 대한 소화기내과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진료 전날 금식을 하고 채혈해서 검사를 받아 뒀어야했다. 탐식증이 생겼는지 금식을 깜빡 잊고 진료를 4일이나 뒤로 미뤘다.

암 치료도 힘든 판국에 노인성 건망증(치매 초기겠지)까지 앓고 있는가 보다.

(♣ 헛걸음질한 병원에서 바로 돌아오지 않고 공원에 들려 한참을 노닥거렸다.)

호주에서 돌아오자마자 만났던 친구들 속에서 한 친구가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 운동을 해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알려준다.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 침을 맞고 있다하니 한 말이었다. 경험을 통한 이야기니 마다할 이유도 없고 다음 날 당장 매달려 봤었다. 말이 매달리는 것이지 이미 손가락, 손바닥, 손목 등 모두 함께 힘이 다 빠진 상태라서 턱걸이는 고사하고 매달려 지지도 않았다.

손과 팔에 있는 힘을 다해 매달렸건만 힘없이 펴져버리곤 했었다. 턱걸이뿐만 아니라 철봉을 곧잘 했었고 평행봉도 했던 손과 팔인데 너무도 불쌍하게 변해버린 나를 그곳에서 만났다.

이튿날은 더욱 가관이었다. 손가락, 손바닥, 손목, 팔, 어깨 모두가 내 것이 아니었다. 안하던 독한 운동 탓이었겠지만 공연한 짓 했다고 후회하는 마음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과정에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안 아픈 것이다.

방사선 부작용인 목 부위 통증과 가슴까지 퍼져 나가는 통증의 발생 빈도가 줄었으며 아프더라도 그 강도가 낮을 뿐 아니라 전보다는 비교적 빨리 가라앉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 변화였다.

당연히 다음 날은 철봉 스트레칭을 더 열심히 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어깨를 일부러 무겁게 눌러보기도 하고 전이 임파절을 눌러 보기도 하는데 통증은 없다. 간혹 통증이 일어나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미약한 것이었다.

모처럼 찾아간 호주에서 딸과 외손녀들과의 행복한 생활조차 단축시키고 급거 귀국을 아니 할 수 없었던 그 독한 통증을 이렇게 간단하게 물리칠 수 있다니!

허리 고치라는 친구의 어드바이스 덕분에 방사선 통증을 물리치게 된 것이다.

무언가 한 건 크게 한 기분이다.

(♣ 잡고 매달리는 순간 바로 쭈르륵 철봉이 빠져나갔다. 오호라~~)

아내는 아직도 교회 합창단원 노릇을 하고 있다. 리드소프라노라던가 뭐 그런 건가 보다.

이제 씨니어 씰버로 진입해 가고 있는 아내가 합창단 활동을 한다는 것을 요즘은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저 건강하기만 바란다. 나도 세례까지 받았으니 주일날 교회 빼먹을 구실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어제는 정말 열심히 기도드려 봤다. 환우들 얼굴을 일일이 떠올리며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내려 주시어 암의 통증과 맞서 이겨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십사 기도드렸다. 서툴긴 했지만…

(♣ 한손에는 코랑 또 한 손에는 칼! 회교도들의 표어다. 기독교도이며 암환자인 나는 한 손에는 성경책 또 한 손에는 구급약 보따리 다.)

4일을 연기한 소화기내과 진료에 대비하여 오늘은 정확하게 금식하며 아침 일찍 채혈을 마쳤다.

그 길로 공원으로 향했다. 금식 탓에 속이 쓰려서가 아니라 위액의 식도 역류가 겁나서 채혈을 끝내자마자 무언가를 위 속에 넣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과 두 개. 아침 먹거리로 충분하다.

문제는 커피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그리고 공원에서 마셨다. 녹즙 마셔야 할 일을. 엉터리 요양 생활은 병을 더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강조하던 나인데.

암환자의 하루하루가 이렇게 지나고 있다. 3년차 진입을 바라보면서…

뒤로월간암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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