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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하늘을 가르시고
고정혁기자2008년 09월 29일 16:19 분입력   총 87913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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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만_대장암3기. 장로회신학대학원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 수료.
대한예수교장로회목사, 교회성장연구소대외협력실장 재임. jesusn@naver.com

금번 8월호에 연재할 내용이 사정이 생겨서 집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정이란 내게 재발의 징후가 보인 것과 아내가 쓰러져서 119로 실려가 입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번 연재의 제목이 ‘혼돈 즉, 재발의 순간에 어떻게 할것인가?’ 입니다. 이 혼돈의 과정을 잘 딛고 일어서서 다음 달에 더욱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신 저는 목사로서 최근의 심정을 대변할 수 있는 글을 올립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히면 내 자동차에 날개가 펴져서 답답하게 있지 않고 곧바로 하늘로 갈 수 있을까? 그런 자동차가 없을까? 하는 꿈을 꿉니다. 언젠가는 상상속의 자동차가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삶에 절망을 느끼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가능성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땅속으로 끝없이 빠져드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솟아날 구멍을 찾아 하늘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평생 땅만 보고 다니던 사람은 숱하게 땅에 떨어진 동전만 줍다가 인생을 끝내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길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끝가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어느 날 비행기가 밤에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송수신을 하는 기계장치가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기계에 의존하고 비행기를 몰던 조종사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승객 중에서 기계를 잘 고칠 줄 아는 엔지니어를 찾습니다. 그런데 아쉽게 그 비행기에는 엔지니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을 조종석으로 안내해 달라고 합니다. 당신이 엔지니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조종석이 가겠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 사람은 하늘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는 천문학자였습니다. 밤하늘의 별은 언제나 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과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근본을 보면 길이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길이 있습니다.

대학 때 부르던 노래 중 「군중들의 함성」이란 노래기 있습니다. 그 노랫말은 이렇습니다.
“저 높은 산에 언덕 넘어 나는 갈래요
저 용솟음치는 함성을 좆아 갈래요
하늘만 바라보다 지쳐버린 젊음에
한없는 지혜와 용기를 지니게 하옵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뜻이라면 하늘 끝까지 따르리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늘을 보는 자, 하늘 길을 따르는 자는 희망이 있고 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봅니까? 자신의 힘으로 안 될 때 원망도 하지만 기대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과 인간의 길을 참으로 묘합니다. 멀고도 가깝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르자니 인간이 울고 인간의 뜻을 따르자니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늘의 뜻과 인간의 뜻이 맞으면 좋겠지만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내 길을 접고 하늘 길을 가야 합니다.

평안북도 중강진 도마봉에 ‘운림지 이야기’ 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 퉁소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총각이 있었습니다. 이 총각이 퉁소를 불면 마을사람들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의 선녀가 퉁소 소리에 반하여 사람이 되어서 총각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총각도 마을 사람도 선녀도 모두모두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늘의 선녀가 땅에 내려온 이후부터 이 마을에는 비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봅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합니다. 어느 날 하늘 선녀의 길을 버리고 퉁소 부는 총각의 아내가 된 선녀가 마을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후에 아내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고 편지를 써놓고 사라집니다. 남자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나서 마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그 후 부터는 도마봉 운림지가 있는 마을에서는 비오는 날 퉁소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모든 조건을 만족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때로는 서로의 길이 어긋나는 것이 모두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영원히 행복한 것도 아니도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영원히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잠시 조건이 안 맞은 것뿐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64장 1절에 보면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 하소서”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본문의 배경을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을 맞습니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은 곧바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은 다 무너졌어도 성전만은 그곳에 그대로 있을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성급한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모든 것에 대하여 전혀 무능력한 지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실망이 커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에게는 크나큰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한 것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상황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떤 힘든 일, 고통, 절망이 내게 닥치면 사람들은 이를 피하기 위하여 남의 탓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위로 할 희생양을 찾습니다. 그러나 남의 탓을 하면 문제가 안 풀립니다. 내 안에 있는 잘못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하늘을 원망하고 탄식하면 마음이 굳어지고 강팍해집니다.
홍수가 나서 집이 떠내려갔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은 공평합니다. 과학에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내 앞에 물건이 타서 없어지면 그것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내 앞의 어려움이 언젠가는 다른 형태로 오히려 내게 복이 되어 돌아옴을 믿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이 암이 발병되고 재발이 되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는 일이 있어도 이 문제를 이 아픔을 이 고난을 헤쳐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도전이 필요합니다. 내 주변에 아시는 분이 뇌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월간 암에 연재한 글을 보내주고 답장을 받았습니다.

*편지지 모양으로 글꼴도 바꿔서 넣어주세요.

목사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군 입대를 앞두고 까닭 없이 두려워하는 젊은이처럼 검진 결과가 믿어지지 않고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날마다 기도하며 선히 인도하시는 주님께 나의 미래를 맡기고 나니 이제 저의 마음도 평안한 상태입니다.

어제 삼성의료원에서 수술 일정을 정하는데 두렵지 않더군요. 오늘 아침 관문 체육공원을 걸으며 생각을 해봤습니다. 병들면 처음 만나는 의사에게 내 생명을 맡기는 게 인간이구나. 그런데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자문해 봤지요. 이제 내가 할 일은

1) 불확실한 미래를 가장 확실하신 하나님께 맡기자.(주님은 항상 내 편이셨고, 나를 책임져 주시는 분이시니까)

2) 수술 후에 빠른 회복을 위해 지금부터 꾸준히 운동해서 몸을 단련하자.

3)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분들께도 건강한 모습으로 기쁨을 드리자.

라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수술 전에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말을 할 때마다 나의 정신 건강에는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 테니까요. 오히려 더 밝고 명랑하게 일상 생활에 충실히 임하려 합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능히 이 수술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신 하나님과 주위에서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해 주신다는 걸 느낄 때 “나는 사랑 받고 사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정말 감사함을 느낀답니다.
세상의 모든 문이 닫힐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또 다른 창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라죠.
오 목사님! 이정숙 사모님! 우리 함께 힘내서 화이팅!!!

이사야 64장 1절의 “주는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시고” 라는 말씀은 즉 땅의 길이 막히자 하늘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는 것입니다. (공동번역 :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십시오, 새번역 : 주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내려오십니다.)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을 걸었던 것이 무너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암 환우와 가족 여러분!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은 변함이 없습니다.
함께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찾아오십니다.
하늘을 가르시고 오십니다.
하늘을 가르시고 내 곁으로 우리가정의 곁으로 오시는 그분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소리를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가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분의 오심은 내 마음을 쪼개는 자, 내 영혼을 비워놓는 자에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십니다.(히4:12)

종교가 다른 분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근본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강경』이나 류시화 시인이 편집한 법정스님의 책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여라』 등을 권합니다. 종교가 없으신 분들은 자신의 중심을 보시거나 자연의 섭리를 보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늘을 보면 ‘하늘을 가르시고 오시는 그분’을 뵐 수 있습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하늘을 보면서 우리의 강팍한 마음이 쪼개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더러워진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감동이 없고 차갑고 식어진 가슴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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