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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12]단식원으로
고정혁기자2008년 10월 04일 19:28 분입력   총 88278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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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이승섭(74)|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림프절 치료 중. 비절제 식도암 생존율 0%라는 비정한 숫자를 도전으로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단식원으로
2007년 7월 26일(목)

어느덧 3년차로 진입했다. 그리 알고 있다.
5년 생존율 기산일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나 나대로 몸에 암을 느낀 그 날을 기산일로 잡고 있는 것이다.
많은 감회가 밀려오고 그 많은 생각들을 다 정리하여 기록하기엔 지금 너무 시간에 쫓기고 있다. 내일 단식을 위해 단식원으로 들어 갈 준비에 바빠서다.
순조롭게 요양생활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새삼 단식원에 들어가는 사연이나 몇 자 적어둔다.
암과의 투병은 치료보다 치료 후의 자기관리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아무리 극기심을 짜낸다 해도 역시 하루하루 마음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치료가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진 바로 그 때가 암환자들이 악마의 유혹에 걸려드는 순간인 것 같다.

이젠 과감히 단식을 통해서 체질을 바꾸고 혈액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신념에 따라 체질을 바꾸고 혈액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단식을 택한 것이다. 의사가 뭐라던, 한의사가 뭐라던, 경험자들이 뭐라던 내 상관할 바 아니다. 나는 내가 믿고 있는 나의 생각대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잘잘못은 반년 후의 나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단식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나를 밀어 넣어 자연의 모태 속에서 나를 새롭게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단식은 예비단식 3일, 본단식 7일, 후식기간 3일 도합 13일 간의 강행군이다.


단식, 하루만의 철수
2007년 7월 29일(일)

서울은 승용차로 오후 2시에 출발했다. 오후 4시 드디어 도착했다. 청평 강남금식기도원. 접수를 마치고 대낮 더위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200미터 가량 올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떠나기 4일 전, 구충제 복용했고 하제와 피마자유로 되도록 장을 쓸어 내렸었다. 이틀 전부터 예비단식을 시작했던 것이어서 도착 당일은 예비단식 3일 째였으니 하루 밤만 숙소에서 묵고나면 다음 날부터 바로 단식에 들어 갈 예정이었다.

저녁 6시 반부터 7시 예배가 있었다. 초청 목사님의 예배와 강연에 앞서 30분 동안은 찬송 예배시간이었다. 저녁 식사는 당연히 굶었다.

잠들기 전 그리고 자다 깨어 한밤중에 좀 허기를 느끼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생수를 마셨다. 물 한 두 모금만 마셔도 허기는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기침이 너무 자주 나왔고 한 번 나오면 천식 같은 현상이 있었다. 기침은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있었지만 감기약만 복용하면 바로바로 가라앉아 왔기에 기침에 대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안했었다.
그런데 천식 같은 기침이 계속되고 목도 쓰리게 아파온다. 자면서도 생각했었다. ‘이 기침이 안 멎는다면 단식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라고….

새벽 6시 샤워실에 들렸다. 샤워를 하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목 안을 살펴보았다.

이럴수가!! 내 눈을 의심했다. 입 안이 온통 하얗다. 혓바닥에 흰 백태가 잔득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사! 감기로 인한 기침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 감기 기침이 아니었고 백태가 기승을 부려 목 전체를 하얗게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침을 해오면서 입 안을 한 번도 들여다 본 일이 없었다니! 내가 제정신으로 지내왔던 것인가.

항암 당시에 부작용으로 구내염과 백태를 앓은 일이 있었다. 그랬기에 백태는 항암에만 따라다니는 것으로 알아 왔던 것이다. 제 2차 방사선 치료 때도 방사선이 목과 식도를 조사했으니 부작용으로 백태가 생길 것을 당연히 생각했었어야 했거늘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그저 통증에 시달리면서 통증만 생각해 왔던 것이다.

몸에 쏘름이 끼칠 정도로 정신이 바짝 긴장됐다. “이런 멍청이.” 이런 몸을 갖고 단식을 하겠다고 나섰던 나 자신에게 조소를 퍼부었다. “이런 멍청이!!”
나 자신을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우쭐해 가지고 속세의 일에 너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 몸 하나 챙기지도 못하면서.

숙소 뒤는 바로 울창한 소나무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가파르게 경사진 험한 산세였으나 다리에 힘을 주며 한참을 기어가듯 올라갔다.
웃옷을 모두 벗고 풍욕을 하면서 내내 생각을 했다. ‘단식은 단념하자. 이대로는 할 수 없다. 바로 돌아가 병원에 들려 백태 치료제부터 처방 받아야 한다. 백태부터 고치고, 감기와 기침도 완전히 제거시키고, 위 상태도 재검하고, 혈액검사 다시 거쳐 성분, 구성, 상태, 재확인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휴우.’

산에서 내려와 아침 식사로 죽을 먹었다. 배고팠던 터라 식당 주방에서 나온 대로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여기서도 큰 실수를 하였다. 예비 단식도 단식은 단식이다. 본 단식을 중지했다고해서 바로 평상시 식사로 돌아가면 속이 부대낀다. 그 생각 때문에 죽을 택했지만 그래도 생각이 짧았었나보다. 반 그릇 정도로 멈췄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속이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죽이라도 분량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가라앉히기 위해서 또 이런저런 응급조치를 해야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내내 생각했다. 백태를 고치고 나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기도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그리고 이 멍청이 노릇하는 머릿속도 배설시켜야하겠다고.


소담길과 닷새간의 방황
2007년8월 4일(토)

그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2년 전에도, 작년에도. 다만 모르고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이름하여 목수국이란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흰 눈송이 뭉쳐 놓은 양 소복하게 뭉쳐 핀 꽃송이들이 머리가 무거운 듯 다소곳 숙인 채 소복소복 시원스럽게 피어 있다. 보통 수국의 조화 같은 딱딱한 느낌이 아닌 부드럽고 정결하게 보이는 너무도 정서 어리는 꽃이다.

삼성서울병원 구내 입구 안내소 찻길 건너 맞은편에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 동산 자락 따라서 병원 현관 맞은 편에 이르는 인도가 있다. 지하철 일원역을 이용하는 까닭으로 평상시에는 거의 안다니는 통행로이다. 안내소에서 맞은 편 길로 건너가 병원 쪽으로 십 여 미터 되는 곳 즈음에 동산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 있다. 이 계단길 입구 양쪽에 목수국 꽃이 한창이었다. 계단 입구엔 동산 계단길 이름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이름하여 [소담길].

소담길 계단은 무척 가파르게 나 있다. 체력과 기력이 쇠진한 암환자들이 오르기엔 힘들어 보인다.

소담길이란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은 길]이라는 뜻이란다. 병을 이겨낸다는 것이 누워 떡 먹듯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힘든 일이며 가파른 소담길을 오르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암을 앓고 있는 우리 모두가 꼭 저 계단을 끝까지 올라 넘어서야 할 그런 길이란다.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은
길이라 해서 소담길이랍니다.
아무리 가파르고 힘들더라도
우리 모두 넘어서야 할
희망의 길이라 한답니다.
환우님들 모두모두 힘내시어
함께 소담길을 넘어 가십시다.

금식기도원을 하룻밤 만에 철수한 후 항곰팡이제(Antifungal)인 니스타틴을 처방받았고 화요일엔 호흡기내과에 들려 항히스타민제인 페니라민정과 코데인을 처방받았다. 이 약들로 삼사일 만에 기침을 가라앉히고 바로 금식기도원에 다시 입소할 생각이었었다.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가보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간수치 중에서 AST(GOP)가 80을 넘어서고 있다. 기도원 입소 전 혈액검사 결과에서도 AST는 50을 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땐 그 수치를 무시하였다. 지난 2년 동안 녹즙을 꾸준히 마셔왔고 한약탕제도 꾸준히 마셔왔지만 AST 수치는 늘 정상치 상한선인 40 이하에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며칠 만에 더 올라 80을 넘어버렸으니 내심 당황되고 불안한 마음에 생각이 몹시 혼란스럽다.
간수치 증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수치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것은 간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이다. 체내 생화학적 반응에 따른 AST의 이상 분비이던, 음식물이나 생약재 섭취에서 온 반응이던, 다른 어떤 간의 염증이던,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던, 전이에 따른 간암이던 이상 신호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은 싫어도 인정해야 할 판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쳐 있는 몸인데 마음마저 지치게 하는 숫자가 아닌가.
발병 후 처음으로 소주를 많이 마셨다. 한 병은 못 되었지만 반병은 훨씬 넘은 양이었다. 입에 대보지도 않던 돼지고기 수육 한 접시를 다 비웠고 냉면까지 잔득 먹어 버렸다. 식이요법이고 금식이고 모두 저리 가버려라 하는 심정에 빠졌던 것이다.
물론 그 날 저녁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만 했고 아픔을 서로 이해 할 수 있는 대화상대가 있었기에 더욱 더 술이 당겼고 자제력을 일부러 내던져버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방황이 계속이었다. 다음 날도 마셨고, 또 그 다음 날도 마셨으니 음주가 연이어졌던 것이다. 음주가 AST(GOP)를 높인다면 그래, 어디 실컷 높여봐라 하는 심정이었다. 허겁지겁 대책을 세우겠다고 골머리를 앓느니 차라리 느긋하게 막가파나 되어보자는 조금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만약에 대비해서 초음파 검사 처방은 받아 놨다. 며칠만 더 지난 다음에 다시 혈액검사를 해보고 수치 변동에 따라서 검사를 하던, 간 관련 전문의 진료를 받던 새로운 진료를 받아볼 생각인 것이다. 그 때까지 방황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정신을 차려 새로운 요양방침을 모색해 볼 것인가가 목하의 골칫거리다.

분명한 것은 당분간 녹즙과 한약탕제는 중단해야하고 또 새롭게 거듭나는 마음으로 새로운 투병을 다시 시작할 것이란 점이다.

뒤로월간암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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