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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일기] 무슨 짓인들 못하랴...
고정혁기자2008년 10월 07일 19:45 분입력   총 87977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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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 이승섭(74)_식도암과 갑상선 아래 전이된 림프절 치료 중. 비절제 식도암 생존율 0%라는 비정한 숫자를 도전으로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무슨 짓인들 못하랴
2007년 6월 11일(토)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하나도 환자같이 안 보인다한다. 그런 나는 속사정이 엉망이다. 이곳저곳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는 것이다.
나이 탓만은 아니다. 항암주사의 부작용과 방사선 조사의 부작용 때문이다.
오후 4시 30분, 서울 기온은 꽤 덥다. 햇빛을 바로 받는 자리에서는 아마도 30도 가까운 기온이 아닌가 싶다. 건조한 바람 탓에 그늘에서는 시원스럽긴 하지만.
무릎 아래 순환계 고장으로 하지가 너무도 시리다. 한여름에도 겨울 내복을 입고 산다. 호주에서 사는 딸이 사준 호주산 양모 세번수로 짠 100% 울 내복이다. 가벼우면서도 보온 효과는 뛰어난 것이다. 그런데도 겨울에는 겹으로 입고 살고 오늘도 입고 있다.
윗도리는 참으로 난처하다. 입으면 덥고 벗어버리면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지고…
하지 순환계 고장을 고쳐보려고 침도 맞고 뜸도 떠봤지만 별무신통이다. 인터넷에서 본 흙 밟기 동영상으로 영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내 다리, 발의 마비 증세와 순환계 고장은 흙 밟기로 고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실행에 옮겼다. 마침 국립도서관에 있었던지라 도서관 서쪽에 있는 나무 몇 구루 심겨져 있는 쉼터에서 맨발로 왕모래와 풀밭 위를 이리저리 걸어봤다.

***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는 앗 뜨거워, 맨발의 늙은이 발바닥은 앗 따가워
*** 걸어도 걸어도 왼발 발가락 세 개는 차디차다. 마비되어 감각이 희미하다.
*** 양 손도 엷은 마비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찍어대면 은행나무 껍질이 움푹 파일까? 소림사 흉내.

새로운 양상의 통증
2007년 6월 30일(토)

악마에게 찍혀 암이라는 병을 얻은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당장 숨통이 끊길 덫에서는 벗어난 셈이며 3주일만 무탈하게 더 보낸다면 2년 생존율 돌파하고 3년차로 진입하게 된다. 남들은 5년, 10년 생존율을 따지지만 식도암 비절제 환자인 나로서는 3년차 진입만 하더라도 기적의 투병기록이 된다.
식도암 통계 자료상 비절제 환자의 3년 생존율은 0%이기 때문이다. 1년만 버티면 3년 생존율을 거뜬히 돌파한다는 이야기이다.
몸의 이곳저곳 사정은 늘 통증이 따라다녀 기력으로 버티어보려는 고령노인의 안간힘을 아픔으로 무디게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누르면 목의 병변 림프절로부터 시작되어 어깨와 앞가슴과 견갑골 등 쪽으로 퍼지던 그 지독한 통증이 철봉 매달리기로 사라져 한시름 놓은 지도 잠간, 새로운 양상의 통증 때문에 어떤 때는 밤잠을 설치고 있다. 누워서 어쩌다 오른 팔을 머리 위쪽으로 올리면 그 순간부터 처음 겪어보는 새로운 통증이 목과 어깨 속에 퍼진다. 무척 쓰린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골고루 아픔의 종류를 맛보아 왔지만 쓰린 느낌의 통증은 없었다. 방사선 조사는 3방향에서 이루어졌었다. 그 방사선 조사의 길을 따라 살 속들이 모두 타들어가는 영향을 받았나 보다. 쓰린 통증의 벨트가 형성되는 느낌의 아픔이다.
아픔이 시작 되면 몸을 이리 젖히고 저리 젖히고 신음 소리가 절로 나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한 20분 정도만 지나면 절로 가라앉는다.
아픈 고비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때로는 일부러 양손가락을 깍지 끼고 팔을 머리위로 올려 통증을 자초하여보기도 했다. 증상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분명한 것은 통증이 확실하게 시작되며 또 확실하게 스르르 가신다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까. 이 새로운 아픔이…
오른팔 내 벌려 아내의 팔베개 삼아주기는 영 글렀나 보다. 그렇게만 하여도 그놈의 새로운 통증이 또 시작되니 말이다.
어제는 통산 열 번째의 CT 촬영이 있었다. 의료진이 처방한 원래의 스케쥴은 8월 하순에 PET 검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목의 병변 림프절이 어느 정도로 소멸 되었나와 양 폐에 전이된 새끼암들의 동태가 궁금해서 호흡기내과 박성훈 선생님에게 간청하여 일부러 CT 촬영을 해 본 것이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알게 될 것이다.
2년간에 열 번의 CT 촬영이라면 꽤나 많은 검사를 한 셈이다. 잦은 회수의 CT 촬영은 많은 경비 지출을 뜻하며 잦은 금식과 잦은 조영제 주입으로 인한 부작용 등 걱정거리를 자초하는 셈이지만, 양 폐 속에 있는 새끼암들에게 어떠한 약제도 사용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새끼암들이 나쁜 쪽으로 꿈틀거리는 기미가 보인다면 그 즉시로 투병 방법을 바꿀 생각에서 내가 취하고 있는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CT와 아울러 혈액검사 항목에 SCC 검사도 포함시켜 달라고 부탁드렸다. 지난번의 SCC 수치는 2.0이었다. 정상 기준치는 1.5라 한다. 병변 림프절도 소멸되었고 폐암도 잠재성으로 바뀌고 있다면 SCC 수치도 낮아질 것이라는 희망에서였다.
SCC와 나와 과연 관련이 있을 것인가는 모르겠다. 관련이 있던 없던 나는 나의 암을 내가 고치기 위해서 나의 생각을 강하게 밀고 나가고 있을 뿐이다. 고마운 것은 의료진 선생님들이 쓴웃음 지어가면서도 이 늙은이의 말을 잘 받아들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주치의들이다.

*** CT 촬영 후에 치루는 의식이다. 생수를 마시고 또 마시고 실업자가 대낮부터 소주병 나팔 불고 있는 꼴의 처량함이여***
오른 팔목에는 정맥 주사 후의 지혈 압박 벤데이지를 하고 아직은 살아 있고 살아 남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

노 체인지(No Change)
2007년 7월 7일(토)

conclusion :
1. no change of necrotic lympadenopathy in right mediastinal area.
2. no change of several small nodules in both lungs since 2007/4/24

지난주에 검사했던 CT 판독 결과지 결론 부분이다. 식도암에 관해서는 아예 언급도 없고, 노 체인지, 노 체인지의 연속이다. 새로운 병변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좋은 결과다. 어차피 장기전이 암 환자의 숙명이니.
다음 검사는 8월 하순에 있을 PET 검사다. 그때까지 no change로 일관되게 끌어 갈 수 있다면, 그 때엔 PET에서 none uptake가 기대되어 일단은 진행성 병변 흔적이 스크린 상에서만은 완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상상만 하여도 가슴 떨려오는 지난 만 2년간의 기적같은 투병 결과다.
제발 한 달 반만 무탈하게 잘 이끌어가자. 교만스러운 마음 안 갖도록 노력하며.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잭팟 터트린 기분이다. 트릿풀 쎄분 데이스에. 헌데 왜 이토록 눈물이 멈출지를 모르는고…

뒤로월간암 2007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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