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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윤선
고동탄(bourree@kakao.com)기자2022년 10월 12일 10:48 분입력   총 33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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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철우(수필가)

‘윤선’이라고 했다. 장애인 인터넷 방송국 PD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윤선’이었다. 이윤선. 당시 내가 제작하던 프로그램 제목은 .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이유를 파헤치고자 기획했던 제안이 (사)장애인단체총연맹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었다.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지원되는 것은 없이 오로지 발로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주일에 한 편 제작하기가 벅차기도 했지만, 많은 소재에 비해 접근하기 까다로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주일을 온통 프로그램에 매달리며 제작하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메일로 받은 이윤선 양의 주장은 이랬다. 춘천 한림대학교에서 사학과 학사를 마친 그녀는 같은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여 석사 학위까지 마친 상태였다. 6년간 지각이나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성실함과 학부 과정에서 4.5 만점에 4.07 점, 석사과정에서는 4.44 점의 성적을 바탕으로 박사과정을 지원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성적이야 워낙 월등하므로 탈락 사유가 될 수 없었고, 담당 교수님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장답사가 많은 전공 특성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 그 사유라고 했다. 그러나 학사, 석사를 거치면서도 모든 현장답사에는 늘 부모님이 차량으로 동행하며, 수업에 방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처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휠체어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학자가 되겠다는 일념이 결코 꺾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메일의 내용을 보자마자 장애인차별이라고 판단하고 취재에 나서고 싶었지만, 우선 확인하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이윤선 양이 과연 장애인일까 하는 점이었다. 메일에서 그녀는 뇌 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뇌 병변 장애는 ‘경련 등으로 인해 팔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다는 것’이 당시의 내 얕은 지식의 전부였다. 그러나 메일의 내용이 자신의 주장과 학교의 문제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은 물론 오타나 띄어쓰기 오류가 없다는 점에서 의아하기까지 했다. 혹시 누군가 대신 메일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했다. 결국 통화를 요청했고, 휴대전화를 타고 넘어온 그녀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를 결심하고 먼저 윤선 양이 강의를 수강했던 다른 교수님을 전화로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녀가 과연 대학 과정 수업을 포함하여 대학 생활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교수님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랬다.

‘맨 앞줄에서 한마디도 빼먹지 않고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다. 완성도 높은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10배 이상 노력해야만 가능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점수는 A+를 주었고 결석이나 지각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일반 학생들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부 과정과 비교해 석박사과정은 오히려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할 시간이 많으므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학문에 대한 열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인의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의 판단까지 접하고 박사과정 면접에서 불합격을 결정한 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당시 조교를 통해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시간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와 결국 해당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터뷰를 피하는 것이 명확해 보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학교 측 역시 해당 교수의 결정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내가 더 도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2008년 6월. 그때까지의 취재를 정리해 <왜 그녀는 박사가 될 수 없을까?>라는 제목으로 방송한 바 있다. 이 내용은 포털사이트의 헤드라인 뉴스에 실리며 많은 응원과 동시에 윤선 양을 향해 장애인이 무슨 학업이냐는 비난도 있었다. 나는 비난 댓글에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걱정됐지만, 윤선 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담대한 사람이었다.

얼마 후 윤선 양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내용을 진정, 접수했다. 그리고 90일이 지난 2008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결정문 하나가 발표되었다. ‘피 진정인 소속기관의 장인 한림대학교 총장에게, 진정인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방식을 제공하여 진정인이 재심사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피진정인들에게 장애와 관련한 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고 결정했다.

예상대로 완벽한 승리였지만,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예상했던 결과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법적인 구속력이 전혀 없는, 이름 그대로 권고뿐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학교 측의 반응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누구도 단 한마디의 사과는 없었다. 세상이 쉽게 변할 리 없지만, 이렇게 두드리다 보면 견고한 벽이 언젠가는 부서지지 않을까. 윤선 양 다음의 누군가는 피해를 덜 보지 않을까. 아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결국 윤선 양은 춘천시 장애인 근로 사업장에 취업한다. 학업 말고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은 많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처사를 경험하고, 대구사이버대학교에서 재활 상담학과를 전공, 사회복지사가 되어 같은 사업장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장애인들을 상담하며 부당한 차별 등에 맞서는 일을 한다.

몇 해 전 그녀가 장애를 갖고 세상과 부딪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종이 인형의 꿈』 출판 기념회에 사회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미 정해놓은 약속까지 취소하고, 주말에 춘천을 다녀와야 하는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흔쾌히 승낙했다. 오히려 사회를 요청한 윤선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녀가 일하던 장애인 근로 사업장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과거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은 주위에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출판 기념회를 하는 동안 그녀를 향한 모든 참석자의 사랑이 진심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한 사람을 향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낼 수 있는지…. 얼마나 그녀가 주위에 사랑을 전했는지 사랑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윤선 양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동생의 부고로 알려졌다. 서른아홉 해를 자신의 꿈을 향해 쉼 없이 노력했으며, 부조리에 맞서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장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도 장애인식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존재였으니 그녀를 알게 된 건 행운이었다.

이윤선 양의 명복을 빈다.
뒤로월간암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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