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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이야기] 김영숙의 포도요법 이야기
고정혁기자2008년 11월 12일 21:01 분입력   총 88564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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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_시인. 노래그룹 해오른누리 기획실장. 1992년 월간 문학 신인상.
시집 <슬픔이 어디로 오지?> <고통을 관찰함> <흙 되어 눕고 물 되어 흐르는>이 있음

*이야기(Episode)라고 이름붙인 까닭은, 저의 경험이 저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처럼 지극히 개인적일 것이기에 큰 목소리 내지 않고 조용조용 들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다처럼 막막하다

*2007년 3월 6일. 일산 병원 유방 외과, 유방암 3기 진단

한 3년 전부터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는데 설마, 제가 암일 줄이야 꿈에도 상상 못했지요. 이렇게 아주 가까이에 죽음이라는 이름과 같은 의미의 명사인 암이 내 안에 살고 있을 줄은. 그저 일 욕심 많은 성격에, 밤에도 일 있으면 잠 안자고 일하는 습관 때문에 나는 늘 피곤한 사람인가보다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엄격하고 냉정하게 -그게 멋있는 인생인 줄 알았나 봐요. ‘게으름 피우지 말자’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고 일했지요.

일중독이었던 것 같아요. 오른쪽 눈 시력이 천천히 떨어져가고 귀도 염증이 생기고 심지어 오른쪽 턱 관절이 어긋나고…. 아무튼 계속 증상은 심각해져갔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증상 처치는 했지만 어떤 의사선생님도 제가 암인 줄은 모르셨어요.
2006년 가을 조금 불안하고 미심쩍고 가슴에 통증도 있어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도 ‘전혀 이상 없음’ 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냥 내가 몸이 허약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유명한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하니 아주 피곤하고 간이 안 좋다고, 유방 뭉침도 약으로 다스려보자고 하시기에 열심히 약을 먹고 침도 맞았답니다. 암을 키웠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가 가고 올 2월 통증도 심해지고 가슴 모양도 더 변하고 하도 이상해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니 섬유낭성종일 것 같은 생각에 스스로 진단하고 일산 병원 유방 외과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왜 이제야 왔냐고 하세요. 아! 바다의 큰 파도처럼 막막한 물결이 밀려왔어요. 내일 입원하고 항암주사 맞으면서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셨지요.
“아 네, 선생님. 그런데 내일은 제가 강의가 있는데 모레 입원하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여유가, 이제 생각해보니 제 자신도 참 기가 막혀요. 하하.

**살아온 어떤 날들보다 바쁘고 숨 가쁘게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더군요. 다른 병원 가서 더 진단 받아보자고 아우성이었어요. 그 어렵다는 대학병원들을 어떻게든 이리 저리 수소문들 하고 날짜를 잡아 세브란스,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다니며 계속 검사, 검사.
아! 그 조직 검사의 아픔은 너무 괴롭습니다. 조직검사실에 누워 솟구치는 눈물을 꼭꼭 삼키면서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지? 생각해낸 것은 속으로 찬송가를 4절까지 계속 부르는 거였답니다. 부르고 또 부르면 이제 끝났습니다. 그런데 다 똑같이 ‘항암은 8번, 중간에 수술, 수술 수 방사선’ 이런 절차를 얘기하셔요. 가슴에 두 덩어리 겨드랑이에 두 덩어리 사이즈가 크데요. 정밀검사 결과 척추 2, 3번 뼈와 양쪽 쇄골 밑, 혀뿌리 아래 각각 전이에 의한 부종 확인되고.

**암 환자가 되어

3월 22일 서울대병원 6시간 동안 1차 항암 주사(도세택셀, 아드리아마이신).
4월 15일 2차 항암예정.
4월 9일 1차 항암 결과를 위한 의사 면담.

이후 항암 및 수술 포기를 마음으로 결정하고 모든 일정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암 환자도 참 많고 유명한 의사선생님이 하루에 진료하시는 100여 명 가까운 환자 중의 하나로 그냥 저들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4월 10일, 피마자 찜질을 시작하면서 대체요법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
이상이 저의 간략한 병원 다닌 이야기입니다.

**포도요법 이야기

3월부터 시작된 동물성 식사 제한과 녹즙, 청국장. 기타 내 몸을 생각하는 유기농 식단 등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먹는 것은 참 소홀하고 대강 대충이었더라고요. 아무튼 몇 주간만 녹즙 잘 먹으면 깨끗이 낳을 거라는 호기로운 확신이 아~, 점점 더 자신이 아주 오래 전부터 암세포를 키워온 한심한 대사 장애의 허약한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현실에 당도하게 되었답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강렬한 의지 하나로 그날, 항암 주사 맞은 당일 이후 오늘까지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는 산행을 쉬지 않고 있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포도 요법을 얘기하겠습니다.
사람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져가듯 새로 바꾸고 세워주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그런데 대체의학 자연 요법이 훨씬 사람에게 안정되고 해가 적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항암 주사 한 대에 머리털이 다 빠지던 걸요. 이런 저런 무지막지한 고통도 크고. 여러 경로의 정보와 이엽 선생이 쓰신 <암, 대체의학적 치료방법>에 참 많이 도움 받았습니다. 포도 요법도 제 자신 암 환자인 걸 인정해나가는 과정처럼 여러 번의 감정 학습과 다짐 후에 시작되었지요.

일 기

8월 22일(수)-이틀 예정의 물 단식 시작. 하루 종일 음식은 넣지 않고 배고픈 생각나면 생수를 마심. 하루쯤이야~, 견딜만함.

8월 23일(목)-기운 떨어짐 아, 아주 얌전히 말하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게 됨. 저녁 8시경 물을 미지근하게 데워 마시는데 울렁거리기 시작함. 그래도 참아야지 생각하고 자리에 눕는데 아홉시 경 왈칵 토하기 시작함. ‘시은아(딸) 너 왜 안 들어와? 은비야! 은비야! 와서 이거 도와줘.’ (동생네가 옆에 살아요. 조카를 불렀습니다.) 내 일은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않는다는 내 인생관 철학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와! 물만 조금 먹었는데 몸속에서 엄청난 물-거무스름한-이 쏟아져 나오던 걸요, 속의 노폐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나 봅니다.

8월 24일(금)-본격적인 포도, 포도, 포도. -상주에서 직접 유기농 포도하시는 김하동씨에게 내가 암 환자인데 한두 달 동안 계속 포도 먹어야 되니 매주 보내달라고 미리 말해 놓았는데 아주 성의껏 잘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시 간 표***

06:30 생수 500ml
07:00 포도 200g(후에 배고파서 300그램으로 100그램 추가되었음)
08:00 농축알로에 물에 희석시킨 것
오 -캐나다에서 주문해서 포도 시작 1주 후부터 먹었습니다. 이것도 아주 굉장해요.-
08:30 생수 800ml
10:00 포도 200(300)g
전 11:00 농축알로에 희석액
11:30 생수 800ml
1:00 포도 200(300)g
2:00 농축알로에 희석액
오 2:30 생수 800ml
4:00 포도 200(300)g
5:00 알로에 희석액
5:30 생수 800ml
후 7:00 포도 200(300-400)mg-밤에 배고프지 않으려고 조금 더 먹었어요.
8:30 생수 500ml
9:30 커피 관장 후 따뜻한 생수 조금

전체적으로 위와 같은 시간표에 의해 정확하게 지키려고 했습니다. 아주 부지런한 생활이었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혹독했습니다. 포도는 미리 다음 날 분량을 저울에 달아 비닐봉투에 넣어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기 전에 꺼내 아주 차게는 먹지 않았고…. 꼭 일주일 되는 8월 29일부터 요로법(자기 소변 마시기와 소변으로 습포)도 실시했습니다. 첫 소변만, 내가 이것까지 해야 되나 생각했지만 ‘네가 40년 동안 네 몸을 방치했으니 네 몸이 하라는 대로 다 성의껏 해야 되지 않겠느냐’ 는 스스로에 대한 엄중한 결론을 내렸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시 일기로 돌아가.

8월 25일(토)-포도 먹기 시작한 이틀째 원기가 아주 약간 회복됨

8월 26일(일)-몹시 몹시 어지럽고 몸이 차갑게 되고 애들에게 온 몸 저리니 주무르라고 했음
몸무게는 하루 1Kg씩 빠져 40Kg

9월 1일(토)-알로에 희석액 병행

9월 2일-몸무게 39Kg

9월 3일-엄청난 현기증 엎드리고 기어 다녀야 할 정도

9월 5일-암 부위 뭉침 현상(특히 알로에 희석액 먹으면 더 똘똘 뭉침)

9월 8일(토)-2주째 통증이 약화되기 시작

9월 9일-몸무게 38Kg

9월 10일-느낌으로 통증 거의 사라짐

9월 13일-너무너무 기운이 없어 해초처럼 흐느적거림. 물 단식 후 처음으로 자리에 눕다.

9월 14일-현저한 통증 완화/일단 3주간의 포도 요법 끝

9월 15일(토)-보식 프로그램 들어감. 몸무게 37Kg

제가 6주간 포도 요법을 하려고 작정했는데 암환자지원센터 임실장님이 말렸어요. 하긴, 진단 받기 전 몸무게가 52Kg이었는데 식이요법 하면서 47Kg으로, 그리고 포도요법하면서 37Kg까지 내려갔으니까 전체적으로 15Kg 빠졌죠. 정신이야 더 왕성해지고 자신의 삶의 태도와 습관도 다 바뀌고 인생을 보는 눈도 바뀌고 의욕은 넘쳤는데 긴 싸움에 체력 소모가 크면 안 된다고 아주 많이 염려하셔서 참았습니다. 포도요법 마치고 다소 통증이 생긴 걸로 보아서 이것이 꼼짝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가 살살 다시 기력을 회복했나봅니다. 아무튼 저의 안색은 극히 맑아졌고 안구 충혈도 거의 사라지고 다시 서대문구 소재 안산 정상을 거뜬거뜬 올라갈 정도로 여타의 건강은 회복되었습니다.
아예 병원은 가질 않으니 수치 같은 건 별로 안중에 없고, 저 자신의 상태를 아침마다 파악해보는데 예전의 저보다 훨씬 맑고 건강합니다. 포도요법 마치는 날까지 제 이빨로 포도알을 낱낱이 씹어 먹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마지막 날까지 즙 내지 않고 이로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언제 어느 날 어느 시각에 아, 다 나았구나! 할까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저는 요즘 저 자신이 참 좋아요.

**큰 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쉰 가까운 나이에 암 환자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절망적이고 아주 많이 슬펐는데 지금 정리해보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낮아지고 조용해지고 사물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존중하게 되었거든요. 저는 계속 앞으로 갑니다.

계속 저를 포기하지 않고 격려해주신 우리 해오른누리 식구들과 이호찬 대표님 고맙습니다. 하긴, 뭐 제가 유능하니까 빨리 나아서 일 잘하라는 의미겠지요? 하하. 새로운 풍경이 앞에 놓였습니다. 전에 보지 못한 크고 큰 바다입니다. 겉으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지만 무한한 생물체를 담고 있는 지구의 반 덩어리. 그 앞에, 거대한 바다 앞에 무력하고 무지한 제가 겸손하게 새로 펼쳐질 제 인생의 다음 장을 눈물어린 눈으로 응시합니다. 모두 모두 포도요법도, 식이요법도, 항암치료도 다 너끈히 이겨내세요. 새로운 경험이잖아요. 자기에게 도전하는 놀랍도록 새로운.

뒤로월간암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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