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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버지의 뒷모습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3년 06월 29일 15:52 분입력   총 1136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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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철우(수필가)

뒷머리의 길이와 정리된 정도. 때로 바람에 날려 헝클어지며 머리카락 사이의 두피가 언뜻 보이기도 하는. 어깨의 기울기와 대칭. 등의 굽은 각도. 걸을 때 팔꿈치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상박, 하박의 각도. 감정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지는 것에 의해 유기적으로 흔들리는, 또는 바람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부서지거나 무너지는 것들의 총합.

내가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는 요소들이다. 물론 이런 요소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직관적인 것들이다. 객관화나 정확성을 담보할 필요가 없으니 수치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인가를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내려는, 그런 의도의 기웃거림이 아니다. 내가 바라보는 타인의 뒷모습은 기본적으로 애정과 응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동창 모임의 맨 뒷자리에 앉아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편안한 뒷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이제 한창 험난한 파도를 넘고 있는, 굽고 기울어져 불안한 뒷모습도 눈에 띈다. 그런 친구가 굽은 등을 한번 쭉 펴는 순간에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면 흠칫 놀라며 멋쩍은 미소를 보내곤 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나이를 먹으며 직선이었던 것들이 곡선이 되어간다. 이상과 자존심 때문에 곧추세웠던 것들이 이제는 등을 둥글게 말아 세상과 타협하고 있다. 직선만이 능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제는 주변 환경까지 고려하여 곡선이라는 효율의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직선을 이야기하는 타인의 주장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존중받기 위해 타인을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당시의 내 곧추선 등은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타협이 아니라 결국은 협력하는 것이며, 직선만이 지름길이 아니라, 때로는 곡선이 더 가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된 것인가. 아니 어쩌면 직선의 시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직선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선(螺線) 형태의 곡선 위에 앉아 오로지 직선만이 의미 있음을 외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중학교 삼 학년쯤이었을까. 등을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내던 남자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전쟁으로 부모, 형제와 생이별하며 고향을 등진 사람, 바로 아버지였다. 여름날 해거름이 지나 한강대교 쪽에서 들리던 천둥소리는 여지없이 폭격 소리였고, 집 뒤편 언덕 위에 가득하던 함성 역시 비명 그 자체였다. 아버지가 정신없이 마당으로 뛰어나온 것은 두 번째 함성이 날카롭게 귀를 파고든 직후였다. 그리고 나를 보호라도 하듯이 바로 앞에 서서 북쪽 하늘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손을 뻗으면 등이 닿을 수 있는 거리. 그곳에서 아버지는 오열하고 있었다. 등이 온통 들썩여 바로 뒤에 선 나 역시 눈물로 공명(共鳴)할 수밖에 없었다. 필시 환란의 서막이라고 생각했을 아버지는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공포를 오롯이 떠올렸을 것이다. 험난했던 탈출 과정과 동사(凍死) 직전까지 갔던 피난선 생활 그리고 삶의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피난민수용소에서의 삶 같은…. 그리고 당시의 자신보다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며 공포와 좌절을 함께 맛봤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물과 함께 무너지는 뒷모습을 본 아들은 어느 순간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색(色)뿐만이 아니었다. 윙윙거리는 귀울음이 몇 차례 반복되더니 천둥과 비명을 포함한 모든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아버지가 무너지면 어린 아들의 세상도 이렇게 스러지는구나.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기억의 비늘들이 툭툭 끊어진 채 흑백사진으로 발밑에 쌓인다.

아버지를 안정시킨 것은 아들의 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에 서 있기만 하다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버지의 등에 가만히 손을 댔다. 요동치던 감정의 잔류(殘留)가 그대로 내 가슴으로 옮겨왔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잦아들더니 이내 미풍이 되어 어깨를 스쳐 멀어지고 있었다. 오해에서 비롯된 그 날의 촌극은 내 심장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傷痕)을 남겼다. 애정과 응원을 바탕으로 하지만 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습관 역시 그날의 부작용일 것이다.

뒷모습을 흔히 민낯이라고들 한다. 감출 수 없는, 그래서 날것의 모습을 보이므로 그렇게 불릴 것이다. 확실히 뒷모습은 내 것이지만 타인에게 더 가깝다. 남에게는 지근거리지만, 자신에게는 별처럼 먼 곳. 그게 누군가의 뒷모습이 아닐까.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충격을 받은 나는 본능적으로 뒷모습에 신경을 쓴다. 더구나 아버지는 그날 이후 1년쯤 지나 생을 달리하셨으니 무너진 뒷모습과 삶의 인과관계를 어린 나이에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왼쪽 인공 고관절 치환 수술을 받았다. 면역억제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오른쪽에 같은 수술을 받은 지 13년 만이다. 그동안 나는 얼굴에 가면을 쓰듯 뒷모습 전체에 망토를 두른 셈이다. 우울(憂鬱)의 초상(肖像)을 보일바에야 차라리 한쪽 다리를 저는 것으로 세상의 시선을 빼앗은 것이다.

13년 만에 망토를 벗고 길을 나선다. 남들의 시선을 돌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왼쪽 다리를 땅에 디딜 때마다 뇌를 찔러댔던 통증도 이제는 거의 없다. 수술 후 늘 동행하던 지팡이도 곧 창고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 뒷모습에서 무기력의 조각을 찾아내기라도 하면 어쩌지. 나 자신도 찾아내지 못했던.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멋쩍은 미소를 날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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