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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수기]스트레스로 생긴 암을 떨치고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01일 16:47 분입력   총 88061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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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아(가명)_50세. 유방암 4년차.

2003년 6월 자궁경부암 1기말 판정
자궁 및 난소 주변조직의 광범위한 절제
2003년 8월 방사선 28회
2003년 12월 오색 뉴스타트 프로그램 참가
2004년 강원도 홍천 연호요양병원 입소. 3년째 생활 중.

저는 딸 하나를 두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활해 왔습니다. 정기적으로 자궁암 검진도 6개월마다 받아 왔기에 자궁암 진단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당시는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나의 암은 스트레스로 왔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누군가의 권유로 투자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시작할 때보다 액수가 커져버려 몇 억도 아닌 큰 액수를 이리저리 융통해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야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일이 터져버리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외국을 나가려는 참에 검사를 받아봐야겠다 싶어 동네병원을 찾았다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너무너무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누군가는 수술하다가도 죽었다는데, 나도 죽는 것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때 신변정리를 한다고 결혼사진도 찢어버리고 옷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언니는 소식을 듣고는 한걸음에 달려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술을 한 달 앞두고 매일 청계산을 도시락 싸서 언니와 함께 다니는데 암 진단 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설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수술은 ‘자궁과 난소를 포함한 주변조직의 광범위한 절제술’이라고 들었습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병원을 나오고 나니 어떻게든 관리를 해야겠다 싶던 차에 안식교회 장로님이 계시는 필리핀의 요양원을 갔다 강원도 오색의 뉴스타트 소식을 접하고 귀국하여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해결되더군요. 그리고 요양원을 서너 군데 돌아다니다가 여기 강원도 홍천 연호요양병원에 자리 잡은 지 3년이 되어갑니다.

이제는 이곳이 내 집과 같고 이 친구들이 가족과 같습니다.
저는 서울사람이라 시골생활을 못해봐서 그런지 더욱 시골의 정취와 공기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여자라서 해야 할 집안일, 가정에서 벗어나 내 자신, 내 몸을 위해 살 수 있어 좋습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그런데 못가, 내가 꼭 있어야 돼, 내가 없으면 집안 꼴이 안 돼 하고 여자들은 많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정말 알아야 합니다.

남편 바람날까 걱정, 자식 밥 거를까봐 걱정이지만 배고프면 다 밥 찾아 먹고 지냅니다. 걱정 마세요. 남편 걱정, 자식 걱정이 아니고 내 욕심입니다. 이 욕심이 스트레스를 만듭니다. 그런데, 가만보니 이 욕심이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오더군요. 남의 남편이 아니고 내 남편 내꺼, 남의 자식이 아니고 내 자식 내꺼, 그러니 만나면 이리해라, 저리해라 속으로 이랬으면 저랬으면 싶어집니다. 결국은 내 욕심과 집착이고 상대방에게는 잔소리가 됩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집에 다녀오는데 만나면 서로 밝은 얼굴로 좋습니다. 남편도 딸도 제가 건강하고 행복해 하니 만족합니다.

암환자 대접도 하루 이틀이지 한 달 지나, 일 년 지나면 가까운 가족들도 무심해집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못합니다. 몸의 조그만 변화에도 움찔해집니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검진 때문에 병원엘 가지만 갈 때마다 큰일입니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있다가 괜찮네요, 소리가 나오기 무섭게 후다닥 도망 나옵니다. 행여나 뭐가 보이는데, 하는 말을 들을까봐 정말 무섭습니다. 사형선고 받으러 가는 기분이 딱 이 기분일 것 같습니다.

3년째 머물면서 많은 암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암은 정말 무섭구나 하는 것입니다. 암을 0기, 3기, 4기 나누지만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항암, 방사선도 필요 없다고 0기로 진단 받고는 손댈 수 없는 상태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제 힘으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손 흔들며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봤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연호를 졸업하고 집으로 가겠지만, 여기를 쉼터로 여기고 친정을 오가듯 다닐 셈입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 좋아 속초에 조그맣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살아보니 당장 먹는 것부터 힘들더군요. 해지면 아는 사람 없어 외롭고 무섭고…. 다시 돌아왔답니다. 도시에 계신 암환자들은 시골로 가고 싶어 하지만, 무턱대고 저처럼 연고도 없이 준비도 없이 내려가면 고생하십니다. 미리 연습하고 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몇 개월 시험 삼아 내려가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의 하루 일과는 단순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하며 한 시간 정도 천천히 물 1리터를 마십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산을 2시간 정도 오르면서 물통을 들고 가고, 점심을 먹고…. 특별한 것이 없죠? 그래도, 스트레칭 한 번을 해도 제대로 하려고 마음을 쏟습니다. 암 걸리기 전의 스트레칭과는 다릅니다. 물도 참 많이 먹네요. 전에는 물 거의 안 먹었습니다. 이제는 하루 2리터 이상은 먹게 됩니다. 피곤한 것도 암 걸리기 전보다 덜하고, 체력도 더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암을 졸업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상태를 항상 유지하는 것,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최우선 항목입니다.
암이 선물한 이 육신과 정신의 고통을 잘 이겨낸다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꿋꿋하게 살아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암 투병을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저의 투병기가 조금이라도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 힘내세요!
뒤로월간암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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