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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부안, 이팝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는데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3년 12월 12일 17:55 분입력   총 120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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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철우(수필가)

부안(扶安)읍에 들어서자, 시장기가 돌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지체되고 있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섰던 길이었다. 휴게소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고, 창밖 경치에 취해 지체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평일인데도 말이다. 이번 여행길은 어린아이처럼 조급증이 자꾸 등을 민다. 웬일일까.

사계절 모두 놓치기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운 부안이지만 그래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꽃이 만발하는 5월의 부안이 제격이 아닐까. 서해안고속도로의 부안나들목으로 나와 변산반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일정을 잡았다. 외길을 따라 반도를 일주하는 셈이다.

변산으로 향하는 30번 국도상에서 한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부안군 관광안내소의 추천을 받아 이미 익숙한 이름의 간판. 부안군 최고의 향토 음식이라면 백합죽이나 바지락죽을 첫손에 꼽는데, 오직 백합(白蛤)으로만 죽, 탕, 찜 그리고 구이를 만들어 부안군 최초로 향토 음식으로 지정되었다는 바로 그 식당이다. 전복에 버금가는 고급 패류로써, 다른 조개와 달리 필요한 때를 제외하고는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하여 정절에 비유되기도 하고,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있어 부부화합을 상징한다는 백합죽 한 그릇은 그득한 포만감보다는 허기를 막 채운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기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아 길 위에 선 사람이 어찌 배를 가득 채우겠는가.

‘구암리지석묘’라는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차를 돌렸다. ‘고창’과 ‘강화도’에서처럼 우리가 살지 못했던 시대의 흔적을 보는 일에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사적지로 지정되어 잘 정리된 입구에 들어서자,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지석묘 13기가 흩어진 것이 보인다. 바둑판처럼 돌을 괸 것을 보니 한눈에 봐도 남방식 지석묘다. 그런데 고창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굄돌은 네 개를 고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덟 개까지 고인 것이 눈길을 끈다. 덮개돌의 크기도 다양하고 어떤 것은 여지없이 거북이를 닮았다. 구암리(龜岩里)란 지명이 괜한 이름은 아니다. 당시 이곳에는 적지 않은 인원의 부족(部族)이 있었을 것이고, 강한 지도력을 가진 지배 세력이 존재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지석묘 아래에서 돌칼과 돌화살촉이 출토된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도 내세(來世)를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서쪽으로 계속 차를 달리니 오른쪽으로 새만금 전시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만경평야와 김해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 만든다.’는 의미의 ‘새만금’ 사업은 33 Km 나 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있어, 길 위에서 흘끔거리며 봐도 까마득하다. 이 사업으로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되는 국토가 생긴다고 하지만, 야미도, 신시도, 선유도 등 아름다운 고군산군도의 섬들까지 육지와 연결된다고 하니 박수를 쳐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다.

변산 해변도로를 따라가다 적벽강(赤壁江)에 닿았다. 바닷가의 산기슭에 주로 자란다는 후박나무 군락지가 방풍림 역할을 하고 맑은 물, 붉은색 암반, 높은 절벽과 동굴이 2 Km의 해안선에 펼쳐져 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소동파가 황주로 유배를 가서 빈한한 삶을 살며 적벽부(赤壁賦)를 지었다는 적벽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적벽강엔 파도가 칠 때마다 몽돌 해안의 자갈 구르는 소리가 세월을 흔든다. 달빛에 술상을 마주한 소동파에게 후박나무는 시중이고, 몽돌 소리는 풍악이며, 달빛은 안주였을 테니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그의 자유분방한 붓은 이런 곳에서 세상을 향해 달렸을 것이다.

적벽강을 끼고 조금만 더 나아가자,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미와 그의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인 수성당(水聖堂)이 나온다. 요즘도 음력 정월보름에 개양할미를 기리고 무사태평과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내는데, 수성당에서의 경치는 온 서해가 다 보일 정도로 막힘이 없다.

적벽강의 옆이 채석강(彩石江)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졌다는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이름 붙인 채석강은 격포항에서 닭이봉 일대를 포함한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말한다. 바닷물의 침식 때문에 여러 가지 색을 지닌 절벽의 바위들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기이한 모습들이다. 자연의 신비를 느끼며 채석강 일대를 걷고 있다. 멀리 방파제 부근까지 가서 보니 채석강의 수려함과 격포해수욕장 그리고 적벽강의 모습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부안을 대표하는 경관이고, ‘변산팔경(邊山八景)’의 하나라더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태백이 아니더라도 이런 바다 위에 배를 띄우고 있으면, 기기묘묘한 절벽의 바위들을 병풍 삼아 바다에 비친 달에게 술잔이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지 않을까?

채석강을 벗어나기 아쉬워 격포항에 들렀다. 위도와 고군산군도등의 섬과 연계된 해상교통의 중심지라서 그런지 꽤 큰 규모의 항구가 길을 막아선다.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평화의 사절단’처럼 잠들고, 이미 한풀 꺾인 태양은 바다 위에 빛난다. 그 바다 위에 오수(午睡)를 즐기는 배들로 가득 찬 5월의 항구…….

다시 길에 올라 궁항과 두포마을의 갯벌, 그리고 상록해수욕장을 지난다. 잦아지던 조급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마구 뛰는 심장을 추스르며 길을 달린다. 길의 왼쪽은 산, 오른쪽은 바다다. 산은 온통 눈에 덮여 있다. 5월에 내리는 눈. 이팝나무와 아카시 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산을 뒤덮고 있다. 코를 찌르는 아카시 꽃과 은은하게 퍼지는 이팝 꽃의 향기를 구분하기 위해 길옆에 차를 세웠다. 이 향기를 맡으며 보는 바다 위의 낙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갑자기 바람이 야속해졌다. 저렇게 바람이 불다간 꽃향기가 이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향기에 취해 길가에 새겨진 마을이름 하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모항을 향해 급히 차를 돌렸다. 왜 모항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부안 방문을 계획하던 순간부터 들르리라 마음먹었던 곳인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모항에 들어서자마자 왠지 모를 포근함이 몸을 감싼다.

모항이란 곳을 알게 된 건 아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몇 년 전 안도현 시인의 ‘모항으로 가는 길’이란 시를 읽다가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라는 글귀가 마음에 들어, 모항이란 곳까지 뭉뚱그려 가슴속 어딘가에 넣어두었었다. 그리고 부안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렵지 않게 ‘모항’과 ‘안도현’이란 이름들을 꺼내 놓았다. 그런데 ‘모항’은 무슨 의미일까. 母港일 리는 없을 텐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부안군 관광안내소에 부탁해서 간신히 찾은 이름이 바로 모항(茅亢)이다. ‘풀로 엮은 집이 있는 작은 어촌마을’ 쯤으로 유추할 수 있을까. 가난하고 외진 어촌마을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모항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먼저 걸었다. 소풍을 나왔는지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과 부모들의 웃음소리가 흰 모래 위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이 떠난 빈 백사장엔 작은 파도 소리와 나만 남겨졌다. 파도 소리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느꼈던 심장 소리 같아 어디에라도 마음 한구석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쿵쾅거리던 내 심장은 거짓말처럼 안정되어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조급증도 더 이상 소매를 당기지 않았다. 그러면 이것 때문이었던가. 모항을 지나칠지 봐 심장은 그렇게 요동치고 있었단 말인가. 길 위에선 때론 심장의 판단에 따라야 할 때가 있다더니….

천천히 모항을 걷기로 했다. 해수욕장을 지나 마을 입구의 소나무 숲을 끼고 어느 대기업이 발 빠르게 지어놓은 수련원 건물 너머로 작은 포구(浦口)가 눈에 들어온다. 짧은 방파제와 낮은 등대, 물 빠진 해변엔 작은 어선들만 한가하게 누워있고, 바다와 접한 마을은 잠든 사람처럼 조용한데, 주꾸미를 잡기 위해 소라 그물을 엮는 부부의 일손만 바쁘다.

포구 옆 작은 언덕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빼어난 산세의 갑남산이 하얀 이팝 꽃을 피우면, 그 산 아래 도로변 천연기념물 호랑가시나무군락은 마을의 수호신이다. 붉게 일군 밭을 따라 내려오니 장작불 앞에 모인 아이들처럼 포구를 따라 붙어있는 마을이 살갑다. 푸른 빛 옷을 입은 배들이 어깨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갯바위에 선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희망을 던지나 보다. 은빛 햇살 부서지는 바다 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세월의 소리를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가는 길이 아쉬워 몇 번이나 돌아보다가 호랑가시나무 군락지 앞에서 다시 차를 세웠다. 마을의 언덕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항을 바라보며 문득 그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茅亢은 어쩌면 母港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이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며, 어머니 품 속 같은 항구로서의 母港.

633년(백제 무왕 34년)에 관음봉 아래 세워진 내소사(來蘇寺)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라는 소사모종(蘇寺暮鐘)도 변산 팔경이라는데 이 길을 걸으며 내소사 범종 소리를 듣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천왕문까지 이어진 600m의 전나무 숲길이 내소사를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면, 천왕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1,000년 수령의 느티나무는 내소사의 아름다움의 증인이다. 대웅전 오르는 길에 무설당(無說堂) 과 설선당(說禪堂)이 좌, 우로 호위한다. 수행하는 장소인 무설당의 낮은 담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돌무더기가 발길을 잡고, 무료로 차 보시를 하는 설선당의 문에 쓰인 글귀가 마음을 잡는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는 무성화(無性花)인 꽃의 모양이 부처의 머리처럼 곱슬곱슬하고, 4월 초파일을 전후해 꽃이 핀다는 불두화(佛頭花)가 자목련과 함께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다. 5월의 내소사가 제일이라더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조선 중기 사찰 건축의 대표작이라는 내소사 대웅전은 화려하진 않지만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이다. 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토막만 꿰맞춰 지었음에도 기울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된 것은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이루어 낸 전통적 건축 양식과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천장의 화려한 장식과 함께 연꽃과 국화꽃을 가득 수놓은 꽃살문 또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어찌 요즘의 획일적인 문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내소사를 나오는 길에 설선당의 글귀를 다시 읽는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게 하네.’ 그 마음자리 찾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세상을 돌아다니면서도 그 마음자리 찾을 수 있을까.

곰소항이 부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곰소’라는 귀여운 어감과는 달리 일제가 이 지역의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수탈할 목적으로 신설한 항구였다. 곰소항보다 먼저 개항한 줄포항처럼 토사의 유입으로 항구로서의 제 기능은 잃고 요즘은 대규모 염전과 젓갈 시장으로서 인기를 얻고 있다. 변산 팔경 중에 ‘곰소 앞의 웅연강에서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의 풍치’를 뜻하는 웅연조대(雄淵釣臺)가 있는데 아마 ‘곰소’ 라는 지명도 여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워낙 젓갈을 좋아하는 식성 탓에 곰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곳에서 젓갈 백반으로 저녁을 하기로 하였다. 열세 가지나 나오는 젓갈이 모두 짜지 않고, 입에 붙는 맛이 여간 감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맛을 본다는 것이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도 아쉬움만 남는다.

곰소를 떠나기 전에 천일염을 생산하는 곰소염전에 들렀다. 기운 태양 아래 염전에 홀로 서 있는 수차와 오래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낡은 소금 창고가 옛 영화를 잃은 항구의 모습 같아 나도 덩달아 쓸쓸해졌다.

‘줄포’를 향해 다시 길을 달렸다.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차창을 열고 부안에서의 기억을 되짚으려 심호흡했다. 몇 번을 더 와야 부안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땐 꼭 모항에서 머물 것이다. 그런데 모항에 들르기 전, 심장을 요동치게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얼마간 이 고민에 빠져있을 것 같다.

서쪽 산 위에 걸린 해가 오늘따라 힘겨워 보인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창밖의 이팝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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