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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포, 과거로의 시간여행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24년 03월 05일 16:19 분입력   총 106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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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철우 (수필가)

경주(慶州)만큼 고도(古都)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나오는 곳이 있을까. 둔한 탓인지 대여섯 번을 방문하고 나서야 그 향기가 느껴졌다. 보문호 근처의 숙소와 주요 유적지만을 다니다가 감포(甘浦)를 알게 된 것은 석굴암의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의 시선 때문이었다. 석가여래불이 바라보는 곳은 동짓날 해 뜨는 방향인 동남 30도로 그 시선 상에 감은사지와 대왕암이 있다.

4번 국도를 따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들 중 하나라는 감포가도를 달린다. 천년고도인 경주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나가기 위해 달려야 했던 길, 감포가도. 오른쪽의 토함산엔 불국토를 이루기 위한 불국사와 석굴암의 부처가 세상을 내려보고 있다. 추령재를 지나며 643년인 선덕여왕 12년에 창건된 기림사(祇林寺)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기림사 본전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의 꽃살문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고요하고 참된 진리의 세계가 온 우주를 찬란히 비춘다’는 의미인 대적광전의 꽃살문. 극락과 사바(娑婆)의 경계에 있는 문(門)에 꽃으로 문양을 넣은 것은 석가모니께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연꽃을 매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은 것과 무엇이 다를까. 더구나 단청조차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본성을 찾으라며 짓는 따뜻한 미소 같은 것이었다.

부처님 앞에 삼천 배를 한 적도 없고, 변변히 화두(話頭)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가끔 사찰의 이정표를 보며 가슴이 뛰는 것은 불교의 존재론(存在論)인 공(空)을 접하고부터였다.

존재에 관한 사구문(四句門) 즉, 존재에 관해 ‘있다’, ‘없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있기도 하며 없기도 하다’라는 물음에 대해 “네 가지 모두 아니다” 란 의미의 공(空)은 지금껏 ‘무엇은 무엇이다’라며 규정하며 살아왔던 사고(思考)의 틀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큰 충격이었다.

감포항 방면과 감은사지, 대왕암 방면으로 나누어지는 길 위에서 잠시 고민했다. 길 위에서는 흔한 고민이다. 들러야 하는가. 어딜 먼저 들러야 하는가 아니면 지나쳐야 하는가. 인연(因緣)은 나뭇가지 위의 바람처럼 흔들리다가 다시 방향을 잡는다. 감은사지(感恩寺址). 본사(本寺)보다는 말사(末寺)가, 말사보다는 폐사(廢寺)가 더 마음 한구석을 내려놓기에 좋다. 북적거림에서 벗어난 한가로움 때문일까. 조선 초 이성계의 왕궁이었던 양주 회암사지나 백제시대의 대사찰이었던 서산의 보원사지 그리고 신라 호국신앙의 중심지였던 경주 황룡사지가 모두 그랬다.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동해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진국사(鎭國寺) 창건을 시작하였으나 불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왜구를 막기 위해 스스로 동해의 용이 되기를 바랐던 문무왕의 유언대로 시신은 화장하여 가까운 동해의 바위섬에 안장하였으니, 이곳이 대왕암이다. 왕위를 이은 신문왕은 진국사 금당 밑을 동쪽으로 공간을 내었으며, 용으로 화한 부왕이 용혈(龍穴)을 통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아직도 감은사지 옆을 흐르는 대종천이 과거엔 바다였으며 문무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지척인 것이 떠오르자, 고개가 끄덕여진다. 682년에 불사를 마치고 부왕의 호국충정에 감사하는 의미로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고쳐 부르게 하였으니, 1,300여 년 전 이 땅 위에 나라 사랑과 부자(父子) 간의 정이 빚어낸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3층 석탑 가운데 가장 장중하고 기백이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감은사지 삼층 석탑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찰주(擦柱)까지 포함해서 13.4 미터나 된다. 두 개의 기단 위에 삼 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동, 서로 서서 마주보고 있는 쌍탑 가람형식으로,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나타나는 양식이라고 하니, 이 삼층 석탑이 어쩌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세워진 최초의 쌍탑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3.9 미터나 되는 찰주가 1,300여 년 동안이나 해풍을 견디며 원형이 보존되고 있는 것은 통일할 당시의 웅혼한 기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황룡사, 사천왕사와 더불어 당시 호국불교의 상징이었던 감은사. 하지만 폐사된 시기와 이유조차 알 수 없이 남겨진 절터 위를 혼자 서성이고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아 감은사, 감은사 탑이여!’라며 감탄했다던 그 탑을 돌며 1,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당시 선조들의 충혼이 깊은 공명(共鳴)이 되어 가슴을 울리고 있다.

다시 차를 달려 신라 문무대왕의 수중릉인 대왕암이 보이는 바닷가에 닿았다. 바다는 숨을 죽이고 갈매기들은 대왕의 호위병인 양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걸 보니 대왕은 주무시나 보다. 해룡(海龍)이 되시어 감은사 금당을 다니시며 불법을 듣고, 왜구를 막아내던 것을 지켜보았던 감은사 탑은 오늘도 하늘을 향해 두 개의 창을 찔러 놓은 채 말없이 서 있는 것을 대왕은 아시는지.

북쪽 언덕 위에 아들인 신문왕이 세웠다는 이견대(利見臺)에 서서 대왕의 호국 충정에 다시 한번 경의를 드리고 돌아섰다.

31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길을 달리다 만여 평의 송림(松林)이 펼쳐진 ‘나정(蘿井)’을 만났다.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 전설이 깃든 우물이 있는 나정 주변은 최근의 발굴로 신라의 잃어버린 4세기까지의 역사를 채워줄 것으로 기대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기원전 57년에 태어나 치열한 삶을 살며 이 땅의 역사에 초석을 놓은 선조들의 생을 생각하며 솔향 가득한 소나무 숲을 걸었다.

감포항에 닿았다. 방파제가 잘 정리된 것으로 봐서 동해남부의 중심 어항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항에 인접한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9월 중순에다가 점심시간도 지난 시간이어서 그런지 넓은 식당엔 손님이라곤 나 혼자뿐이다. 항구에 드나드는 배들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광어회 한 접시와 함께 나온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다. 잡어들의 뼈를 발라 넣고 끓인 미역국은 보기와는 달리 손이 자주 갔다. 언젠가 강원도의 아야진 항구에서 먹은 백반에 나온 국은 이름도 모르는 생선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 낯설었는데 이곳의 방식은 전혀 거부감이 없다. 소매물도에서 먹어본 작은 꽁치가 들어간 시래깃국처럼.

항은 한가했다. 이제껏 봐왔던 여느 항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한 항구의 모습 그대로다. 다른 게 있다면 항의 높이가 수면과 비슷해 마치 바다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는 것. 3일과 8일 서는 감포장이 있었다면 모를까 오늘 항을 지키는 파수꾼은 먹이를 찾아 나선 갈매기와 줄에 널린 오징어뿐이었다.

‘소나무가 많은 육지 끝부분’이라는 송대말(松臺末)에 올랐다. 해송 150여 그루가 하늘로 뻗어 그늘을 만들고 있는 감포항의 맞은편 언덕이다. 얼핏 보아도 200년 넘게 해풍을 맞은 듯 보이는 소나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널’로 쓰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을까.

해송들 사이로 감포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무역항으로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온갖 사치품들이 이곳 감포항을 통해 경주로 반입되었는데, 아마 장보고의 선단도 이곳에 닻을 내리지 않았을까. 옛 영화는 간데없이 쓸쓸한 항구의 모습이 마치 툇마루에 걸터앉아 추억을 곱씹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아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동해의 거친 해풍 탓일까. 이리저리 굽은 해송들 사이로 보이는 방파제들은 육지에서 뻗어 나온 것과 함께 섬처럼 온전히 바다 위에 놓인 방파제들도 눈에 들어온다. 저 방파제 위에 서서 맞이하는 일출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방파제 끝에 파수꾼처럼 서 있는 저 등대는 색깔에 따라 배들이 들고 나는 차이가 있으니, 육지에서 보았을 때 하얀 등대는 오른쪽에, 빨간 등대는 왼쪽에 있다. 하얀 등대는 항구에서 출항하는 방향이고, 빨간 등대는 바다에서 입항하는 방향이다. 간혹 보이는 노란 등대는 소형 선박을 위한 등대로 특별한 방향이 필요 없는 등대이다.

언덕에서 남쪽을 내려다보니 기암괴석 아래로 감포항의 잔잔한 바다 위에 몇 척의 배가 한가하게 떠가고,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송림 끝에 서 있는 하얀 송대말등대 너머로 거친 파도를 휘몰아치는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다시 북으로는 송림이 펼쳐진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손에 잡힐 듯하니 한 곳에 앉아 세 가지의 색이 다른 바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몇이나 될까.

9월 중순에 어울리지 않는 더위는 소나무들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식혀주기에 충분한 오후. 세 곳의 바다가 모두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멀리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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