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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의 간병기 - 1 말도 안돼! 당신이 암이라니?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16일 20:21 분입력   총 88308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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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첫 번째 간병기인 이번 기록은
2005년 7월 혀암 소견.
2005년 12월 혀 생검 암 확진
2006년 1월 혀 부분절제, 구강, 잇몸 수술.
2006년 2월 간경변/간의 이상소견 확인.
간 초음파 검사 후 관찰.
2006년 5월 간암 및 간내담도암 진단.
까지의 내용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암에 걸린 것 같다고? 말도 안 돼, 당신 같은 사람이 암에 걸린다는 것은.”
암과의 인연은 이리 시작되었습니다.
2005년, 통영의 작은 개인병원 이비인후과로 아이들이 아프면 늘 달려갔었지요. 평소 존경하고 믿었지만 ‘암’일수도 있다는 한 마디에 그 모든 믿음이 강한 부정이 되었습니다. 늘 잇몸질환으로 치과를 다녔습니다. 칫솔질을 할 때마다 잇몸에서 피가 나와 치과에 다니기 시작한지 5년이 넘었지요. 도통 낫지 않아서 이비인후과로 발길 돌린 첫 날, 남편의 전화를 받았지요.
“나, 암일 수도 있다는데….”
“말도 안 돼! 암환자가 이리 멀쩡해? 머리도 아프고 누워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당신은 다 정상이잖아?!”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이주일 동안 치료해보고 낫지 않으면 혀암일 수도 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합니다. 퇴근 후에 남편을 보면서
“아~ 해봐요. 혀 좀 보게.”
남편 입 속을 처음 보았습니다. 요상합니다. 혀 안쪽에 하얀 백태 같은 것이 보이고 아이들 아구창처럼 미끈거리는 하얀 백태가 덮여 있었지요.
“여보, 내가 볼 때는 꼭 아구창 같아요.”
아구창치고는 좀 이상했지요. 뭐랄까 아구창은 막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 남편은 단단한 하얀 막이 쳐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백태가 백반증이나 그런 것보다는 암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암 환자 같아 보이지 않네요. 내가 아는 암환자는 하얀 병실에 하얀 시트위에 주사기 꽂고 누워 있어야 하는데, 빡빡 머리에 흰 모자 쓰고.

그 후 이주일 동안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으니 백태는 없어지고 혀의 따가운 느낌만 남아 있었습니다. 백태가 사라지니 지극히 정상인줄 알았지요. 그 뒤 여름휴가를 떠났습니다. 서울로 그리고 대전 과학 축전을 보고 바다로 섬으로 다니면서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다. 다만 뜨거운 음식을 먹거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 안쪽 백태가 있었던 곳이 자극을 받아서 아프다고 했습니다. 우리하다고, 그러나 먹을 때를 빼고는 괜찮다고 했지요.

남편은 오래된 무좀과 어지럼증이 있었고 약간의 빈혈이 있었지요. 그리고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 가려움증도 있었습니다. 오톨도톨 뭉쳐서 올라왔다가 검은 자국을 남기고 괜찮다가도 또 생기곤 했습니다. 녹용도 먹었고 빈혈이 심할 때는 헤모글로빈의 양을 늘려준다는 약도 써 보았지요. 개소주도 먹었는데 다른 약 먹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개소주를 먹고 나면 속옷을 버려야 할 정도로 끈적끈적한 땀이 배어 나왔지요. 진땀이라고 해야 하나 좀 이상스런 땀이 배어 나와서 다섯 번을 삶아도 안 빠져서 속옷을 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더워서, 아니면 땀이 많이 나서’라고 생각하며 이상한 냄새가 나도 남자 냄새가 나는가 보다, 하곤 넘어갔습니다. 한동안 남편에게 더덕주스나 당근주스를 해주면 얼굴이 보얘지고 어지럼증도 덜하고 소변도 잘 보았지요.
해외로 바다로 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배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지요. 배안에는 야채보다는 고기가 더 많다 하여 배에서 내리면 야채를 많이 먹게 했습니다. 주스는 인삼주스와 더덕주스, 마하고 당근주스를 많이 해 주었지요. 배에서 내릴 때면 항상 얼굴이 새까맣고 입술색은 검푸른 색이었지요. 내리고 일주일 지나면 조금 하얘졌습니다.
어찌 돌아보면 기회도 있었건만 내 무지함에….
내 남편은 늘 장군 같았고 늘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 착각하고 있었지요.
그해 여름과 가을을 넘도록 우리는 ‘암’일수도 라는 말을 흘려 보내고 지냈습니다. 남편은 다시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갔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보냈습니다.

2005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매서운 한겨울.
살이 떨린다는 말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힘든 날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암까지 오다니요. 수술날짜를 잡아놓고 남편과 아이들은 시골을 가고 혼자남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은 행운아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막내가 연말이 가까이 오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어떻게 기도했는데?”
“엄마, 웃지 마. 고개 숙여봐. 나 하느님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빠 보내 달라고 했다!”
“하느님이 선물을 보내 주실까?”
“엄마 내가 날마다 기도하니까 들어주실 거야.”
“아빠는 3월이 되면 오실거야.”
“엄마 그러면 눈뜰 때도 자기 전에도 기도할래. 꼭 선물로 달라고.”
정말로 12월 23일 갑자기 귀국했습니다. 원래 3월에 팔리기로 한 배가 팔려서 귀국하게 되었지요. 딸은 아빠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혀가 어떤지 궁금했지요.
“여보, 아~ 해봐.”
어머, 세상에! 혀에 하얀 알맹이가 여섯 개나 보이네요.
“여보 이상해. 혀에 하얀 알맹이가 보여.”
“응, 그쪽으로 씹으면 따끔거리고 먹먹해.”
“이상해! 암센터 가보자.”
“별것도 아닌데 그냥 동네 내과나 가보자.”
“안 돼. 혀는 이비인후과야.”
“싫어. 내가 암환자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때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혀에 암일 것 같다고….”
둘이서 옥신각신했습니다.
암센터 예약하고 갔는데 그 자리에서 조직 떼어내어 검사를 하더군요. 결과는 암은 아니고 0기 단계라고 합니다. 남편은 떼어낸 자리가 아프다면서 의사가 못됐다고 난리입니다. 그리고 2006년 1월 6일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하네요. 수술하고 난 뒤에 설암이라고 말을 합니다.
남편 앞에서는
“설암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 보통 운 좋은 사람이 아니네. 혀에 암은 한참 진행된 뒤 알게 된다는데 당신은 암이 자리 잡자 바로 알고, 또 3월까지 배를 탔으면 어찌 됐을지 모르는데 빨리 내려서 수술도 하게 되고 말이야. 각시도 옆에 있고 당신은 행운아야.”
혀를 절제해서 암을 제거하고 구강과 잇몸까지 제거했으니 말을 못합니다. 그냥 아내 너스레를 모르는 척 넘어갑니다. 보험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서 진단서를 떼어보니 이리 적혀 있네요.

‘식도와 위 상피내암종 부분 절제
혀에 악성암종 제거 수술 구강 잇몸 악성 제거’

그런데 그 당시 저희는 여기에 있는 내용을 하나도 인지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혀와 잇몸, 그리고 구강’만 암이 있었구나 할 정도만 알아들었고 ‘식도와 위 상피내암종’ 이 부분은 한참 뒤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있으면 집안의 분위기가 바뀌어 갑니다.
늘 긴장이 흐르고 밝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피해갈 수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암’이라는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거지요. 암을 처음 마주칠 때는 너무 황당했을 뿐이고 조직검사를 하고 암이라는 결과가 나올 때는 바로 머리가 텅 비었습니다.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들었던 설암이라는 낯선 단어가 가슴에 박히는 순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유명했던 가수가 설암으로 육 개월 만에 하늘로 갔습니다.’ 마치 주파수 맞추어놓은 라디오 소리처럼 반복되어 어디선가 들려옵니다. 혼자서 되뇌었지요. ‘그 가수는 혼자였으니까, 그러나 우리 남편은 육 개월 만에 가지 않을 거야. 내가 있으니 한번 해 보자. 일 년 육 개월만 더 살아주면 하느님께 감사하자. 그때까지 난 기도 하지 않을래.’
다짐을 했습니다. 혹시 하늘에 대고 빌기만 하고 사심이 들까봐서, 매달리고 절망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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