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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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분도 먼저 가신 분도 스승이었습니다.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23일 20:17 분입력   총 88179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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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2005년 7월 혀암 소견.
2005년 12월 혀 생검 암 확진
2006년 1월 혀 부분절제, 구강, 잇몸 수술.
2006년 2월 간경변/간의 이상소견 확인.
간 초음파 검사 후 관찰.
2006년 5월. 간암 및 간내담도암 진단.

암이 있다는 혀의 일부와 잇몸, 구강을 수술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 퇴원을 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방안의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비인강암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암 때문에 27번째 항암 중이라는 분과 비슷한 병 때문에 다른 병원을 6개월 돌다가 오셨다는 분과 혈액이 이상해서 몸에 세군데 관을 심는 수술을 하셔야 하는 분과 입원실을 함께 썼습니다. 옆 병동은 아이들이 희귀병 때문에 입원해 있었지요. 일주일동안 입원실에는 사람이 바뀌어 가는데 남편은 퇴원을 시켜 주지 않으니 궁금합니다. 제가 일을 끝내고 나면 저녁 9시가 넘으니 의사 선생님은 늘 남편 혼자 보았지요.
드디어, 일주일째 되는 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분명히 수술 후 일주일이면 퇴원해도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저기 환자 상태는 무척 좋아요. 혀의 암은 정말이지 이런 경우 처음이다 할 만큼 초기여서 1, 2, 3, 4, 이렇게 나누는데 표피에 암이 생겨서 아직 혈액이 지나는 곳까지 암세포가 자리를 잡지는 않았고요. 수술 결과는 좋아요.”
“그럼 아주 좋다는 것인가요?”
“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요?”
“다 좋은데 혈소판 수치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요.”
“그게 뭔데요?”
“일종의 피의 수치인데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 지혈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만약에 이빨을 닦다가도 잇몸에 피가 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나오곤 합니다.”
“네! 그런데 남편은 평소에도 늘 잇몸에서 피가 나왔는데요. 빈혈도 늘 있었고 가려움증도 심했고요. 무좀은 10년도 넘었어요.”
“다른 병의 원인일수도 있으니 우선 혈액 정밀 검사를 의뢰했으니 기다려 보지요.”
그러면서 수술한 내용과 수술 후 겪게 되는 일들과 앞으로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소상하고 상세히 알려 주시네요.
한 30분을 선생님을 잡고 서서 이야기를 했고 다음 날 간 기능이 조금 이상하다고 간암센터에 연결을 시켜 놓았으니 내려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오라고 합니다. 간암센터에 갈 때도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혈소판이 문제라고 하니까 간에서 피를 잘 못 만들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초음파를 찍어 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혈액 검사 결과는 퇴원 무렵이면 나온다고 합니다. 내부에서도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 외부에 의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퇴원날짜가 잡히고 간암센터의 호출을 받고 남편과 함께 내려갔더니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잘 들으세요! B형 간염을 앓으신 적이 있지요?”
남편은 금새 대답합니다.
“네.”
“간염을 치료하지 않아서 간경화가 왔습니다. 간경화가 진행된 지 10년이 훨씬 넘은 것입니다.”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간염이라니 말도 안 돼! 남편이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질문합니다.
“간염을 알게 된 게 몇 년 되었지요?”
“그러니까 20대 후반에 알게 되었습니다.”
“치료 받았습니까?”
“아니요.”
“그걸 방치해서 오늘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단은 퇴원하기 전에 CT 찍으시고 퇴원하세요. 그 다음에 자세히 알려 드릴 테니 그동안 잘 드시고요. 그때 다시 말씀드리지요.”

밖에 나와서 물어 보았습니다.
“아니 무슨 이야기야? 한 번도 간염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잖아?”
“그게 아니고 배도 타지 않고 집을 나와서 떠돌 때, 자꾸 어지럼증이 있어서 내과 갔더니 검사하래. 그래서 해 보았더니 간염이라고 하드라고 뭐 약 먹고 나으니까 괜찮기에 나은 줄 알았지.”
“그럼 나한테 언질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난 염증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 너 알잖아? 곪아서 고름 빠지면 다 낫잖아. 뭐 그런 걸 줄 알았지.”
어째든 퇴원시켜 준다고 하니까 퇴원하고 집에 오자마자 알로에 베라 생잎을 깎아서 입에서 녹을 때까지 녹이듯이 씹어 먹게 했지요. 물이 될 때까지 구시렁대면서도 잘 먹었습니다.
“이걸 꼭 먹어야 되냐?”
“그럼, 새살 돋는 데는 최고야.”
투털투덜 했는데 다행히도 잘 따라 줍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살이 차오르고 혀에 물풍선이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수술한 부위에 작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고 합니다. 병원에 갔더니 빨리 나아간다고 합니다. 보통 세 달은 넘어 걸리는데 남편은 벌써 보름동안 많은 새살이 돋았다고 살성이 좋은가보다고 합니다. 정말 한 달 보름이 지날 무렵 거의 혀는 수술 전처럼 발음도 되고 혀가 움직여집니다.

간암 센터에 들르니 CT 결과가 나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확실히 간 경변입니다. 진행시기는 14년~15년 정도 이었고요. 서서히 진행이 되었네요. 간염은 활동 중입니다. 그리고 간 안에 작은 덩어리가 있는데 이것은 걱정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애가 불량배가 될지 조직 폭력배가 될지 아니면 똘마니가 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불량배와 똘마니는 선도를 잘하면 착하고 바른 사람이 되지요. 그러나 조직 폭력배는 조직이 있어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지요.”
“네”
“말 잘 듣고 착한 학생은 반듯합니다. 그러니 약 잘 드시고 마음 편히 가지세요.”
병원 입구에 암 정보 책자를 뒤집니다. 간 경변, 설명은 장황하고 내용은 인지되지 않고 전문용어는 정말 모르겠더군요. 헷갈리고 정신이 까마득하고 마치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듯 했지만 환자 앞이라 말 한마디 못했습니다.
“그냥 뭐 별거 아니네, 나중에 책 한권 사서 보자. 우선 집에 가자 쉬자.”
태연하게 굴었네요. 남편은 타는 제 속도 모르고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합니다.
이것이 우리와 간암과의 긴 인연의 시작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간경변이라….
한참을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잡념이 너무 많고 긴장감만 흐르고 뭔가 기분을 바꾸자 싶어 서울로 외출을 감행했습니다. 남편은 환자인데 괜찮을까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함께 가자고 했지요.
퇴원 후 첫 외출. 남산 한옥마을에 가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떡메 치기도 하고 연도 만들고 조선시대 양반가옥 구경도 하고, 마침 행사가 있었는데 붓글씨로 소원쓰기 행사도 있었지요. 각자 하나씩 소원을 적어서 종이를 접어서 긴 끈에 매달아 행사 끝에 불로 태워서 하늘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글씨를 쓰면서 마음을 담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난생처음 소원을 적어 보았습니다. 한 자 한 자에 주문을 걸듯이.

신이시여, 제 간절함을 아시고 하늘까지 닿게 하소서.
많이 사랑하게 하시고 많이 사랑받게 하시고 많이 나눌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가족 더없이 행복하게 하소서.

소원을 적어서 매달고 남편을 보니 아이마냥 즐거워합니다. 내려오다 보니 방송차량이 있었지요.
“야, 신기하다!”
처음 보는 방송촬영 장면도 신기해하고 할 말이 많은 남편, 혀 수술로 아직은 약간 어눌한 말씨이지만 기분은 최상입니다. 청계천을 돌면서도 한마디 합니다.
“이게 시골에 있으면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볼 텐데….”
“서울에 있으니 보물이지 뭐.”
오랜만의 나들이로 남편의 기분은 최상이었고 저는 병을 싸매고 있다가 잠시 여유를 부렸지요. 저는 어찌 간호를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설암센터 입구에 신문에 오려진 작은 글씨, ‘오래전에 해 넣은 이빨에는 수은 성분이 있다’고, 이빨도 바꾸어 주어야 하는데 그걸 방치해서 혀에 암이 생겼나 보다 정도였습니다.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말할 수 없는 불안에 하루하루가 두렵고 혀의 암은 뇌로 전이가 가장 빠르다는 것만 어디서 주워들어서 눈앞만 캄캄했습니다. 길을 찾아야겠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서 날마다 노래를 했습니다. 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해줍니다. 간경화에 대해, 간암에 대해, 복수와 정맥류가 터지는 이야기까지. 난생 처음 듣는 소리들을 접하면서 마음을 추슬러 갔습니다.
‘난 병을 어찌 하지는 못하겠지만 죽어가는 시간을 늘리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완치는 바라지 않아도 한 일 년만 늘릴 수 있다면, 아니 일 년 육 개월만이라도….’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간경화로 25년을 지내셨고 간암 판정으로 2년 반 정도 사시다가 가셨다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그 엄마는 긴 간병 끝에 마음도 지쳐서 이제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딸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는 BRM 연구소 소장님을 만나서 식이요법 지도를 받았고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다른 것을 살 엄두도 못 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알려준 녹즙과 운동을 충실히 했다고 했습니다. 녹즙 재료로는 민들레, 씀바귀, 쑥, 질경이, 미나리, 돌나물, 취 등이었고 사과와 당근을 이야기 해 주었고 비트와 또 다른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지요. 항상 아이들이 잠들고 있을 때 아침운동을 했고 아빠 병이 깊어 갈 즈음에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고 했지요.
또 다른 한 분은 남편이 우리 남편과 똑같은 경로로 간암 판정에 아산 병원에서 입원해서 간이식 후에 건강해졌고 복직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들어간 비용을 물어 보았는데 엄두도 나지 않을 액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병원 의사 선생님을 뵙고 싶었는데 알아보니 그분을 만나려면 6개월은 기다려야 했지요. 친구를 통해서 다른 의사라도 좋으니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무슨 과, 선생님 이름, 전문 분야 등 소상히 알고 연락을 해달랍니다.
그걸 다 알면 직접 병원으로 찾아갈 것을….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고 하는 마음은 접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그분이 식이요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콩을 갈아서 먹어라. 그리고 식이요법에 대해서 알아봐라, 의무기록 사본에서 GOT/GPT/AFP 이걸 잘 관찰하라고도 일러 주었지요. 간경화에다 간의 덩어리는 암이니 가벼이 보지 말고 잘 하라는 충고도 함께요.
그러나 의사 선생님이 암이라는 말을 안했는데 어떻게 암이야? 참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하고 넘겨 버렸지요. 그래도 그분이 부러웠습니다. 한 동네에 살기에 자주 보게 됩니다. 가족이 함께 손잡고 가는 모습만 봐도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해야겠지요.
나도 저리 웃을 수 있을까?

날마다 퇴근 후에 컴퓨터를 잡고 있었고 나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시작되었습니다.

뒤로월간암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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