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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 검사의 부실한 디지털화
고정혁기자2008년 12월 23일 20:52 분입력   총 885967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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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섭님의 병상일기16화) PET 검사의 부실한 디지털화

2008년 1월 5일(일)
“비싼 검사료 내고 PET 찍은 지 얼마 안 되고, CT 찍은지도 엊그제인데 PET를 또 찍는다는 말이에요?”
아내가 볼멘소리로 의아스러워한다. 내가 생각해도 검사만은 남다르게 많이 해온 것 같다.

2007년 9월 6일 PET검사(제3차)
10월 1일 혈액검사(제45차)
10월 15일 혈액검사(제46차)
10월 29일 혈액검사(제47차)
11월 26일 혈액검사(제48차)
11월 30일 혈액검사(제49차)
11월 30일 초음파 심장검사(제1차) (2-D + Doppler Echocardiogam)
12월 14일 CT검사(제12차)
2008년 1월 3일 혈액검사(제50차)
1월 3일 PET검사(제4차)

이번 PET검사는 두 달 정도 앞당겨진 처방인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어찌되었던 간에 어제 제4차 PET를 촬영하였고 PET에 앞서 혈액검사용 채혈도 무사히 마쳤는데 어제의 혈액검사 처방 안에는 혈중 산성도 수치를 검사하는 항목도 있어 동맥혈도 채혈했다.
한방에서 손목 맥 짚는 부위에 주사바늘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으로 꽂는다. 약 5mm 정도 삽입하여 바늘이 동맥 안으로 들어가면 씨린지 안으로 붉은 피가 절로 고이며 채워 올라간다. 바늘이 삽입되면서 신경말초를 건드렸을 때에는 정맥혈 채혈보다 약간 더 아프기도 하다.
이번이 세 번째의 동맥혈 채혈인데 제1차 때의 PH수치는 7.415였고 제2차 때는 0.005가 줄어든 7.41이었다. 이번에는 적어도 7.420 내지 7.425가 되어야 나 자신이 생쥐가 되어 혈액관리 이론을 세워보려고 애쓰고 있는 일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될 것이지만….

PET 검사 결과지는 일주일 후에나 나올 것이므로 안용찬 교수님과의 면담일자를 내주 금요일인 1월 11일로 잡아놓았다. 두 달이나 앞당겨서 PET 검사 처방을 내린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9월 6일의 제3차 PET 검사 결과에 이어 제12차(12월 14일)의 CT검사 결과가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12차 CT판독 결과지에서 결론은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하다.
1)중격동 우측 최상부에 있는 전이로 병변된 림프절의 크기가 커졌음.
2)양쪽 폐에 있는 몇 개의 작은 결절들은 변동 없음.

의사들은 대체적으로 결론만 알려준다. 그런데 제12차 CT의 판독소견을 읽어보면 나의 상태가 결코 보통 상태가 아닌 비상사태를 알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CT 소견 번역문
11차 CT(2007년 6월 29일)와 비교하여 중격동 우측 최상부의 침윤성 전이병변 림프절 크기가 좀 더 커졌음. 이러한 소견은 10차 CT(2007년 4월)과 비교할 때 좀 더 뚜렷한 변화를 보이며 우측 갑상선 하단으로 침윤하는 소견을 보임.
흉부 제일 추골에 암 덩어리가 접하여 있으나 분명한 척추 뼈 침윤은 보이지 않는 소견임.
양쪽 폐에 보였던 몇 개의 작은 결절들은 변화 없음.
왼쪽 폐 하엽부 아래 부분의 폐막에 경화가 새로 보임. 양성 염증으로 보이나 추적 관찰이 필요함.

사태는 바야흐로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비상 상태인데 헤어날 뾰족한 수가 없으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1)방사선 추가 조사(照射) 2)화학약품에 의한 항암제 투여 3)외과적 절제 수술 4)토모테라피 조사 등 다시 시도하여 볼만한 항목들은 어느 하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으니 막막하지 않을 수 없다.

방사선의 추가 조사는 2차 때만 해도 안교수께서 탐탁지 않았던 것을 환자인 내가 강청하여 시행했던 것이고 그 결과는 역시 실패가 되었으니 3차를 결정하여 줄 리 없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프로토콜에서도 허용되어 있을 것 같지 않다.
림프절에 유효한 약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은 바 없고 심각한 부작용을 생각할 때 앞으로는 어떻게 암이 퍼져나간들 화학적 항암 치료는 받지 않을 생각이니 치료 방침에서 제쳐놓을 생각이다. 외과적 절제 수술을 바라고 있지만 2차에 걸친 방사선 조사로 주변조직들이 많이 켈로이드화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박리가 안 될 것이고 그러니 선뜻 응해줄 외과의사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토모테라피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지만 보험 적용이 안 되니 그럴만한 경제력이 없다. 돈이라면 이제는 몰릴 대로 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토모이든, 양성자이든 남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결과지를 미리 소상히 검토한 상태라 안교수와의 면담은 처음부터 암담한 심정으로 임했으며 기대라곤 꿈에도 없는 상태로 임했다. 나를 맞는 안교수 역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느 때 같으면 서로가 미소 지으며 가벼운 농담어린 인사로부터 시작했는데 이번은 그렇지를 못했다.
“칼로 화악 도려내고 싶은 심정인데 심교수께서 응해 주실까요?”
“아마 안 하실 거에요.”
“포커스에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차, 못 할 말을 해버렸다. 실은 지난 수 삼 개월 마음 바닥에 깔려 있었던 의문이었다. 2차 방사선 치료로 박살날 줄 알았었는데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혹시라도 시뮬레이션에서 정밀성이 결여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실제로 암 덩어리가 줄어들고 있었잖아요?”
“미안합니다. 실언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일단 PET를 다시 한 번 찍어보죠. 그리고 난 다음에 함께 고민하시죠.”
나를 위로하는 듯 안쓰러움을 나타내는 표정으로 안교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함께 고민하시죠.”

의사들한테는 좀체 듣기 어려운 어투다. 얼마나 고마운 배려있는 말인가.
비록 순간적인 말뿐인 말이었을지라도 이런 투의 말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몇이나 있을까. 고마운 말이다.
엊그제 PET 찍어 봤는데 뭐 또 딴 수가 보일 거라고 비싼 검사료만 내게 할 거냐 라는 반발 심리는 전혀 일지 않았다. 말 한 마디에 퐁당 감격 속에 빠져들어 순한 양이 되고만 늙은 환자가 거기 있었다.
“네. 고맙습니다. 그리 해보겠습니다.”
3분도 안 걸린 면담을 마치고 나온 환자 대기실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저작거리 장바닥 모양 우글대며 많이도 앉아 있었다.

2008년 1월 14일(월)
PET 결과지를 보기 위해서 몹시도 궁금한 한 주일을 보냈던 것인데 막상 결과지를 손에 쥐고 나니 맥이 풀리고 말았다.
열 두 시간 이상 굶어가며 비싼 경비를 들여 검사할 때는 다 그만한 목적이 있었던 것인데…. 결과지는 의료진의 리포트 같은 것인데 너무도 무성의하고 조잡스런 내용 기재에 놀라고 말았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내용 기재이다. 우선 PET 검사 소견부터 여기에 옮겨본다.

[검사명] Fusion Torso F-18 FDG [NX1001] [구분] 외래
[처방일] 207-12-20 [접수일] 2008-01-14 16:59

*****최종보고*****

[판독의 1] 현승협 [판독의 2] 김병태 [판독의 3] 이경한

16XXXXXX30 이승섭

05/1 ~ 06/3 esophageal cancer CCRT
06/12 ~07/1 palliative RTx
Glucose : 93mg/dl

영상소견 :
F-18FDG를 정맥주사하고 basal skull부터 mid-thigh 부위까지 CT로 보정하여 PET 영상을 얻었음.
07/9/6 영상과 비교하여 right highest mediastinal lymph node에 보이던 FDG 섭취증가 병변들은 이전보다 크기가 증가하였으며 새로운 병변들이 관찰되고 있어 disease progression 소견임.
양측 lung에 보이던 FDG 섭취가 없는 small nodule들은 이전과 변화없이 관찰되며 benign lesion으로 생각함.
그 밖의 전신에 악성을 의심할 만한 비정상적인 FDG 섭취증가는 관찰되지 않음.

결론 :
Increased FDG uptakes in right highest mediastinal area.
progression of lymph node metastasis more likely.

판독 내용을 보니 내가 처음부터 알고 받은 검사인데 환자가 정작 알고자 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하다만 CT 소견과 다를 바 없다. CT와 PET의 특성조차 파악 못한 내용이다.
PET 검사는 포도당 섭취의 강도를 측정하기 위함이지 암덩어리 크기를 측정하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검사에 응했던 것이다. 암의 크기는 CT로 측정될 수 있다. PET의 목적은 포도당 섭취의 왕성함을 수치(SUV)로서 파악하고 또한 앞서 검사한 수치와 대비 판독하여 암세포 증식의 강도를 검사하자는 것이 아닌가? 물론 새로운 포도당 섭취 부위도 탐색하면서….

판독글 중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아래 글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07/9/6 영상과 비교하여 right highest mediastinal lymph node에 보이던 FDG 섭취증가 병변들은 이전보다 크기가 증가하였으며 새로운 병변들이 관찰되고 있어 disease progression 소견임.

중격동 우상부 림프절의 SUV 값은 지난 번 8.2였다.
이번에는 당연히 증가된 수치가 나올 것으로 각오한 것이며, 증가되었더라도 어느 정도냐에 따라 진행성의 강도를 가늠할 생각이었다.
진행하는 정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항암약제로서 일단 진행을 저지시킨 후 다른 요양방법을 모색하던가, 진행이 느리다면 항암을 하지 않고 대체/보완의학으로 달리 치료하여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SUV 값이 안 나타났으니 환자로서 이토록 허전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SUV 값은 판독의가 따로 수작업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화 되어 있어 모니터에서 여기 찍고 저기 찍고 두 번만 마우스 포인터를 갖다 대고 클릭만 하면 수치가 뜨도록 되어 있는 것이며 그 수치를 판독 소견에 반영해 주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빼먹다니!!!

더욱이 지난 3차 PET 검사에서는 왼쪽 폐문(hylum)에 포도당 uptake p-SUV=3.1로 나와 있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전이암일까 하고 무척 긴장되어 있었던 것인데 언급조차 없다. 상식적으로 알기를 3.0 이상이면 병변이 의심되고 3.0 이하면 일단 마음을 놓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판독의는 앞서 검사한 CT 소견도 참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병변 림프절이 암덩어리로 변하여 갑상선을 침윤하는 과정이라던가, 흉부 제1추골에 바짝 다가가 있어 추골 내 침윤이 있다던가, 없다던가 무언가 언급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인가?
면담 전, PET 결과지를 미리 뽑아본 것인데 실망스러운 내용에 분통이 터지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늘 발길 가는 곳
늘 앉는 자리
뚫어지게 결과지를 읽어본다만…
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것이 이토록 속 태우는 것인지,
누구를 상대로 이 답답함을 풀어야 할 것인지,

텅 빈 마음
허공만을 맴돌며 메아리친다.
주야장창 끝도 없이 한도 없이….

병변 림프절이 암 덩어리로 변하여
끝도 한도 없이 커지려고만 하는데
잊고 또 잊고
오늘만이라도 좋게좋게 살아보려 하건만
날 살을 베어내는 통증이 암을 못 잊게 한다.

이튿날 안교수와의 면담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내 얼굴 또한 불만에 차 찌푸린 모습으로 안교수를 대했다. 한참동안 결과지 내용에 대한 항의를 퍼부었다. 물론 안교수의 일이 아님은 나도 안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를 만나면 싸잡아 항의하고픈 것이 일반적 심리다. 나라고 예외일 수야. 안교수가 판독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누락된 SUV 값에 대하여 물어봤다.

삼성서울병원은 그동안 암센터를 새로 건립하였다. PET도 새롭게 증설한 것이다. 새로운 기기를 설치하였는데 기존 프로그램으로는 새 기기에서 SUV 값이 안 나오게 되었던 모양이다. 판독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참으로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병원에서 첨단 기기를 설치하는 데 디지털화에 이상이 있다니, 기종 통일을 안 하고 새 기종 선택을 무엇에 기준해서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구석에도 검은 뒷거래가 있었던 것일까? 인충이 갉아먹는 현상이 있었을까? 어쨌든 피해는 환자가 보는 것이다.

모니터 상에 나타난 목 부위 병변 림프절은 그 크기가 완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굳이 SUV 값을 보지 않더라도 지난 번 영상과 비교하여 두 배 이상으로 커진 암덩어리가 그로테스크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짐작컨대 급격하게 커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배수(倍數) 증식인가.

지난번 언급한 “함께 고민하시죠”는 물 건너 간 이야기다. 너무나 뻔한 병변 영상에 안교수도 할 말이 없는 듯하다. 결론은 혈액종양내과 주관으로 항암치료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항암 약제 사용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또다시 항암주사를 맞는다면 다행히 반응도가 좋아 진행성을 침체성으로 변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라는 생명체는 부작용으로 모든 기능에 치명적 타격을 입어 더 이상은 삶의 활동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짐작된다. 안교수께서 혈액종양내과에 직접 전화를 걸어주겠다는 호의를 사양하고 면담을 마쳤다. 진통제만 열흘치 분을 처방받았다. 패치 석 장과 몰핀 썰페이트 10일분이었다.

방사선종양학과를 나온 길로 영상의학과 PET 판독의사를 만나보았다. 결과는 같았다. 프로그램이 작동을 안 하니 SUV 값은 구할 수 없었다.
기종 선택의 실무 책임자는 누구였을까?
기자재 발주 최종 권력자는 누구였을까?
반드시 한 사람의 잘못일 게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모든 의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환자들에게 불편을 주며 암센터의 평판을 나쁘게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통일에 대한 수정 작업이 속히 이뤄져야 할 텐데 아마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울적한 마음에 늘 가는 소공원을 찾았는데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눈아 눈아 펑펑 내려라
갈 길을 잃었노라
이 마음 덮어다오
암도 덮어다오
통증을 덮어다오
세상만사 덮어다오

뒤로월간암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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