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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와 함께 나의 불면의 밤은 시작되고
고정혁기자2009년 01월 08일 16:05 분입력   총 887214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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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남편은 나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하고 물어 봅니다.
저는 “글쎄 한 십년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면 남편은 “아니 이십년은 더 살 거야.” 항상 자신은 더 오래 살 거라고 했지요. 늘 농담처럼.
저는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처음에 일단 잡곡밥을 먹기 시작했고 녹즙을 마셔야 한다니까 지인에게 녹즙기를 빌려서 한잔씩 마시게 해 주었지요. 그러다가 인터넷의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간 이식을 한 사람들이 모인 카페, 간염을 이긴 사람들, 또 약초 전문 카페 등….
우선 의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약을 충실히 챙겨 먹었고 일찍 자려고 노력했고, 저는 인터넷으로 알게 된 내용들을 하나씩 실천해 가기로 했지요.

제일 먼저 배운 효소 요법. 그러나 설탕이 마음에 걸려 꿀로 담갔지요. 시작해 보자, 무엇이든지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그 다음은 청국장! 아이 친구 엄마가 너무 좋다며 청국장 관련 책을 사다 주었지요. 청국장을 난생 처음 담가 보았습니다.
청국장을 시작으로 효소 만들기로 나의 불면의 밤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통영을 밤차로 때로는 운전을 해서 새벽에 도착합니다. 장날 맞춰 새벽시장에 나온 이른 봄쑥과 섬나물과 섬초들을 고르게 구입해서 이걸 가져와 씻어서 물기를 빼고 꿀에 켜켜이 재어 놓았지요. 처음에는 할 줄을 몰라서 유리병에 했어요. 그러다가 작은 고추장 담그는 항아리가 생각나 항아리를 찾아보니 아직 빈병이네요. 잘 됐다 싶어 그곳에도 담갔는데 그해 봄에만 꿀 값이 80만원이 들었습니다. 유리병에 항아리 값까지 생각도 못한 돈이 들더군요.
그렇게 두 달 만에 떠서 맑은 효소만을 걸러 항아리에 담아서 한 달을 더 숙성시켰지요. 기다리는데 속이 새까매졌지요. 언제 먹나 하고, 거기에 남편의 잔소리까지 더합니다. 햇볕 들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또 햇볕 가리자고 이것저것 덮어 씌워 놓으니 눈뜨고 못 보겠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야! 네가 한번 낮에 봐봐라.”
“왜?”
“이놈의 하루살이들이 얼마나 들끓는지 아나?”
“그럼 어떻게 해. 숙성 과정인데.”
“아, 죽겠다. 효소고 뭐고 나 드러버서 못 먹겠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돈이고 뭐고 나 죽어도 저거 못 먹는다.”
하루는 퇴근 후에 와 보니 난리가 났습니다. 하루살이 잡는다고 치렁치렁 테이프 붙여 놓고 대청소를 했네요.
“여보! 이러지 말자. 그냥 대충 살자.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네가 하루 종일 집에 있어봐라 그리되나.”
“나 환자다 하고 내버려 두면 되잖아.”
그렇게 자주 싸우게 되었고 남편은 자신은 모르지만 제가 볼 때에는 불안과 초조 그리고 암환자라는 사실에 쇼크 상태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기를 싫어했지요. 간 고주파 전까지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남편 동생들과 친정의 식구만 알고 있었지요. 시부모님 아시면 기절하신다고 아무도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고요. 5월까지는 효소 담그는 데에만 집중했지요.

어느덧 5월, 병원 가는 날짜가 되어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느닷없는 날벼락입니다.
“오늘 입원 하셔야 합니다. 내일 수술하시고요”
“네에???”
“간에 덩어리가 있다고 했지요. 이것이 세를 키워서 그냥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뭐라고요?”
“일단 조직검사를 해야겠지만 고주파를 하면서 생검을 해봐야 압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뭐라고 했는데 저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마냥 B형 간염과 간경화, 간경변증에 대해서만 알아보려고 했지 나머지는 몰랐기에 멍했습니다. 일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해야 되나보다 했고 무슨 수술을 어찌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고주파가 무엇인지도 몰랐지요. 아는 아줌마 덕분에 ‘간의 덩어리는 암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 이후 의사 선생님의 간암 진단까지 이르렀습니다.

수술 후에 고통으로 말도 못하는 남편, 언니가 그 옆을 지켜주었습니다. 나는 일해야 했기에 수술 후에야 남편에게 가서 정신 차린 것을 보고 다시 일을 하러 가게에 왔지요. 남편의 통증이 얼마나 큰지 짐작도 못하고서 말입니다. 일찍 가게 정리하고 알로에 베라 깎아서 가지고 갔습니다.
고주파는 간에 전기 침을 놓아서 열을 쏘아서 순간적으로 암을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암 덩어리가 네 개인데 두 개는 쏘았는데 두 개는 건드리지 못했다고 했지요.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건드릴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한 개에 150만 원이나 하는 바늘은 나중에 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바늘 비용은 안 받고 수술비용만 받는다고도 했습니다.
밖에서 대충 이야기 듣고 병실에 가니 남편의 얼굴이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주 간단하다고 해서 저는 정말 간단한 걸로 알았습니다.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지요. 잘생긴 얼굴을 그리 찡그리면 어쩌냐 하면서요.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얼마나 아픈데?”
“누가 지나가다 주먹으로 훅을 날렸는데 그 순간에 멈추어 있는 것 같아.”
“진짜 그리 아프면 이리 말하나?”
“농담 아니다.”
“일단 고주파도 열이니 알로에나 먹자.”
“야, 병원에서 수치 검사하면 다 나올 건데 어찌 먹노?”
“수치 검사해서 나오든 말든 나는 내 신랑이 먼저니까 괜찮다.”

서로 옥신각신 하다가 남편이 두 손 들고 먹어야 했습니다. 제가 좀 더 고집이 세서 수술한 자리에 붙이자고 했더니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또 난리가 났고 그렇게 수술한 첫날 그리 잠들었지요.
이른 새벽 눈을 뜨니 남편의 신음이 들립니다. 듣는 척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있었지요. 참다 못 참겠던지 가벼이 흔들면서 물 좀, 합니다. 그래서 물 한 모금 마시게 하고 얼굴을 보니 밤새 반쪽입니다. 속으로 ‘얼마나 힘들까’, 측은하지만 참으면서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하니 모르는 척 해 주어야지요.

새벽이면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합니다. 같은 병실의 세 사람 다 누워서 한 마디씩 하다가 의사 선생님 회진 소식에 이불 정돈하고 자세정렬, 베개까지 차곡히 놓고 모두 제자리에 양반 다리하고 언제 엄살했냐는 표정입니다. 세 남자, 다 간암입니다.
남편을 보시더니
“생검 결과가 나왔는데 간암입니다.”
“네.”
우리가 잘 몰랐다고 생각 되었는지
“간암이 확실합니다. 두 군데서 떼어 냈는데 똑같은 암입니다.”
“네.” 그래도 표정이 없자 다시 확인합니다.
“간경변증에서 간암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네.”
“어째든 잘 헤쳐 나갑시다.”
우리는 짐작했고 다음을 준비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는데 맞은편에 앉아 계신분도 간암인데 13센티라고 합니다. 색전술을 한다고 합니다. 옆에 계신 분은 위에 암이 꽉 찼고 간에도 암이 퍼져 있는데 원발암을 찾는다고 합니다.

퇴원 후 암을 다스리기 위에 첫 번째로 암관련 카페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숲향기님 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 나갔지요. 남편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기로 하고 공개 투병을 결심했습니다. 가입한 카페만도 여섯 개나 되었고 늘 노래하듯 남편의 상태를 알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간 이식, 산야초, 간염, 암 식이요법 등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27년 사신 분은 제게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그분 섭생을 따르되 비슷한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일단, 수술한 부위에 알로에 베라를 거즈에 싸서 붙였지요. 부위는 작지만 배라서 붙이기가 애매했어요. 붙여놓으면 금방 물이 되어서 줄줄 흘렀고 닦다가 다시 붙이고 하기를 다섯 번을 갈아 붙여 주었지요. 그 밤이 새고 나서 남편의 얼굴이 아주 편해졌고 쪼그라들었던 인상이 펴졌지요. 그러면서 일어나서 하는 말이
“거참, 신기하기도 하지. 진통제를 먹어도 통증이 멈추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로에로 통증이 멈추지?”
“그거야 고주파도 열이고 열을 다스리는 게 알로에의 성질이니 열을 누르니 당신이 편한 거지.”
알로에 붙이기를 일주일하고 나니 제가 꾀가 나서 안 붙여주었더니 본인이 직접 붙입니다. 붙이면서도 늘 티격태격해서 제가 한발 뒤로 물러났지요.

그런데 그 일 이후부터 남편이 저를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참 뒤에 그 말을 해 주었지요. 궁금한 것들,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때부터 부지런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공개 투병을 결심한 이상 제일 먼저 책의 주인공을 찾아갔습니다.
강남의 유명한 병원 사랑으로 암을 물리치고 텔레비전에 나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그분 책을 구입 후 읽어 보고 바로 전화해서 남편과 달려갔지요. ct찍은 것 복사해서 간암이 맞고 그분 시키는 대로 서로 껴안고 사랑한다고 하고 기도 하고 밖에 나왔습니다.
안내 한 대로 가서 설명 듣고 미슬토 요법과 송아지 흉선으로 만들었다는 무엇 또 아베마르는 밀 싹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전부 합해서 한 달 처방 비만 400정도 줄여 달라고 했더니 240 정도 나중에 의논 하겠다고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긴 한숨만 나온다. 돈이 원수다 그냥 녹즙만 먹자 효소 했으니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할 말이 없었지요.
너무 비싸고 또 돈도 없으니 한숨만 나오지요
그래도 강남까지 간 것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암은 하기에 따라서 급하게 갈수도 천천히 갈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사랑을 가슴에 담게 되면 암이 움찔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슬토 라는게 겨우살이로 만든것 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움직여 보니 살수 있는길이 보였지요
절망 보다 희망이 눈에 보이니 갑자기 길이 열린듯 했지요
당장에 경남 고성에서 보리와 밀 농사를 짓고 있는 아는분께 연락을 해서 보리 두가마니와 밀 한가마 구해 줄 수 있냐고 물었지요.
“보리는 쌀보리하고 맥주 보리가 있고 밀은 우리밀있지”
“그럼 전부다 한가마니씩 보내주세요 ”
밀 싹을 키워서 즙을 내서 먹으면 되고 보리는 키워서 가루 내서 먹고 하려고요
보리 심을 때만 있으면 보리 즙도 수은 중독 까지 풀어 준다는데 까짓것 해보지 하는 마음 이였지요.
그 다음 남편의 반응입니다 전화가 왔지요
“너 손 큰 것 알고 는 있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냐 ?!
일하지 말고 와서 봐 “
왜?!
간이 배밖에 나온 것도 아니고 덥석덥석 응 뒤를 봐가면서 뭘 쌓아놓던지 해야지 어디다 다 두려고 어쩌고저쩌고 ......
“아베마르가 200씩이나 들면 나는 땅에다 심으면 실속 있고 건강한 것 먹으니 더 좋을 것 같았지요 꿈은 좋았지요.
저는 날마다 그 밀과 보리를 보면서 심을 땅을 찾아 노래를 했지요 노는 땅 찾으려고 그런데 그걸 보는 남편은 날마다 뚜껑이 통째로 열렸지요
문입구에 밀한가마니 보리 두가마니가 떡 버티고 있으니 ...
남편 눈치 보라 땅 찾으랴 마음은 급하고 쌓아 놓으니 없는것 보다 마음이 놓이고 안심은 됩니다.
바람 솔솔 통하고 공기 좋고 물 좋은 곳 흙이 살아 있고 그런 땅을 찾는데 꼬박 두 달 넘어 걸렸지요
그사이 저는 삼일에 한 번씩 파주 깊은 산속에 가서 산야초를 뜯어 왔지요
새벽 다섯 시 50분만 되면 어찌 그리 눈이 딱 떠지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 합니다
봄이니 취와 짚신나물 질경이 신냉이 쑥 돌미나리 민들레 꼬들배기 종류 꿀 풀의 어린 싹 등을 뜯어와서 즙을 내어 마시게 했습니다.
한 시간 뜯어서 오는 시간 한 시간 9시 출근해야 되니 날이면 날마다 갈수도 없고 어떤날은 냉장고에 넣어 놓고 어떤날은 그냥 가게 되었지요.
미안해서 여보 이게 손질해서 냉장고에 좀 넣어줘요 하면 알았다고 해 놓고 손도 안대고 그대로 말라 있었던 적도 있었지요.
화가 나서 어찌 해야 하다가도 남편 보면 갑자기 할 말을 못하게 될 때가 더 많았지요
어떤 때는 산으로 등떠 밀어 좆을 때도 있었고 핑계대고 처가에 가서 벌침도 맞고 휴양림에 가서 풍욕도 하고 오라고 보내기도 했지요
여행이라도 하면 혹시 좋아 질까 해서 그러면 남편은 이리 빼고 저리 빼다가 마지 못해서 다녀 오기도 하지요
효소 담그라 인터넷 뒤지랴 병의 진행 속도와 병의 진행시기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뒤지게 되었지요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혈점이 왜 생기는지 궁금 했고 손발의 무좀도 의문이 풀렸지요 눈의 실핏선도 터지는것 입속의 염증과 잇몸의 변화 소변량의 증가와 색깔 변화 배변은 어떻게 변하는지 방구는 왜 뀌게 되는지 가스가 차고 배가 빵빵 하면 미리 복수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하는것도 알게 되었지요
하나를 알면 하나가 더 궁금 해 졌고 남편의 몸상태에 따른 변화를 미리 예지 하고 대처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알아야만 하는것 이 였지요 어떻게든지 찾아야 했습니다
책을 뒤지고 학계에 들여 다보고 의학종류의 카페는 다 들여다 보고 학교 홈 페이지 기웃하고 병원 쪽도 뒤져 보고 한의학도 찾아 보고 정말 시간이 모자랐고 잠잘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확신을 가지고 진행한게 알로에 베라 생잎 깍아서 젤리질을 먹게 했고 프로폴리스 세끼 먹게 했고 물을 얼러서 육각수로 만들어 먹었고 녹즙은 하루 두잔 꼭 먹게 했지요 그때 까지 제독에 대해서는 무지 했습니다 왜 제독이 필요 한지도 몰랐습니다
알로에는 암과 싸우기 위해서 건강한 세포에 힘을 주기 위해서
프로폴리스는 T세포에 힘이 된다고 해서 또는 잇몸에 염증을 잘 잡아 주었기 때문에
물을 얼러 먹은 것은 책에 나와 있더군요 얼리면 육각수가 된다고 이틀에 한번씩 건강한 약수 길러다가 꼭 얼려서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은 피를 묽게 하기 위해서 였고 녹즙은 남들이 하니까 했습니다 왜 ?! 좋은지 모르고 했습니다
그냥 좋다니까 그다음 자연이 주는거니까 믿는게 있었지요
건강한 것들을 채취하니 해로울것은 없다고 생각 했지요
눈뜨자 마자 밤꿀 한숟가락을 꼭 먹게 했지요 밤꿀에는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성분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위염을 완하 시키고 위를 도와 준다고 했지요 효소는 따로 먹으려니 번거로워 녹즙에 한숟가락씩 섞어서 먹으니 좋았지요
녹즙 마시기도 좋아 했지요 맛이 좋다고
그리 노력을 해도 고주파후 살이 조금씩 빠지더니 얼굴 색이 검게 변해 갑니다
온몸에 발긋한 열꽃이 하나씩 생겼다가 검은 테의 자욱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열꽃이 핀자리에는 어김없이 자욱이 하나씩 남겨지고요
그리고 화를 잘내게 됩니다 물론 평소에도 화를 잘냈지만 이유를 찾아가면서 하나씩 화를 내기 시작하면 감당이 되지 않았고 K1만 늘 보고 있거나 게임을 하고 있고는 했지요 물론 힘도들고 지루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던 어느날 하루 각시가 진짜 예뻐 보였나 봅니다
정성을 다하니 처음 같이 했다가 남편 잡는줄알고 기절 할뻔 했습니다
아랫배를 잡고 움켜쥐고 구르는통에 혼이 빠질뻔 했지요
그뒤 다시는 남편 곁에 가지 않았지요 화를 내고 짜증을 내어도 그래도 인간인데 싶다가도 통증 때문에 겁도 나고 어쩔수 없이 따로 생활을 했지요
인터넷에 부부문제를 올렸다가 모든 사람의 관심도 역시 우리처럼 왔다갔했지요
그러나 그일후로 다시 병이 완치 될 때 까지 함께 하지 말자로 결론을 내렸지만 남편은 무척 심각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다가도 안하던행동도 합니다
한번도 안하던 내 핸드폰 검사도 해보고 평소 남편 성격에는 전혀 하지않던 행동들입니다 한결같이 아내를 믿지만 은근히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떤날은 옆에 자주면 밤새 뒤척이다가 잠이들고 합니다
불쌍도 하고 그래도 세포 재생이 힘든데 어찌 몸상할짓을해
카페에 글올렸던 내용을 남편과 함께 보면서 반반 씩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보고 많이 풀렸지요 그래 내가 참자 로 남편이 마음을 바꾸니 다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늘 내던 화도 줄고 이제 아침이면 해뜰때 일어나서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얼굴 비비고 손비비고 귀도 만지고 점점 좋아져 가는것 같았지요 늘 눈뜨는 아침이 행복하길 빌었고 내손 끝에 마법의 주문을 걸듯이 신께 빌어지요 남편의 몸에서 모든 병마가 사라지길
시작하는 아침과 눈을 감는 순간까지 늘 평화와 사랑 가득하길 마음 따뜻하고 늘 기도를 합니다 살수있게 해달라고 아니 내손에 희망만 가득차게 해달라고

뒤로월간암 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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