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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의 간병기 - 가고파라에서의 새로운 투병
고정혁기자2009년 04월 17일 15:43 분입력   총 881835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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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경희(44)|미용업. 야생화사진.
남편(48)|혀암. 식도상피내암. 위상피내암. 간암. 간내담도암. 비장비대증. 간섬유종. 간세포암.

이 글은 2년 동안 암에 걸린 남편과 함께 생명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기록들입니다.
간병기를 쓴다고 하나 아내입장에서 쓰다보면 이야기가 자꾸 곁가지로 빠지지나 않을까 겁이 납니다. 병은 늘 예고가 있었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내 무지까지 들추어내야 하기에 힘든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 우리 부부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좋겠습니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이른 아침 눈을 떴는데 싸늘하지만, 몸은 가뿐했습니다.
“환자식단을 몰라서 그냥 우거짓국을 끓여 놓았어요. 좀 드세요.”
“네. 고맙습니다.”
여덟 시 삼십 분쯤, 밥을 먹고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지요. 남편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녹즙과 잡곡밥으로, 그리고 알로에 등 나머지는 친정 엄마가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그동안 제가 알려준 식이요법을 성실히 해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산속에 방을 준비하니 필요한 것이 많아졌지요. 밥솥, 냉장고, 도마, 작은 정리함 등의 살림 장만을 해 주고 남편 먹을거리를 준비해주었습니다. 청국장이 걱정인데 친정 엄마가 조금 주셨고 제가 담근 것은 가져왔고국거리까지 준비하고 나니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다음날 혹시 양지쪽에 녹즙거리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니 개불알 풀꽃-된장풀이라고도 하지요-그리고 냉이가 지천으로 있고,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눈에 띕니다. 냉이가 좋다고 했더니 주인 부부가 오후에 한 가마니를 산속에서 캐왔는데 뿌리가 마치 산삼과 같습니다.
“세상에 어디서 이런 걸 캐셨어요.”
“산속 양지쪽에 냉이밭이 있어요. 늘 캐서 진공 포장해서 먹어요. 요맘때 캐면 향이 좋아서 항상 캐서 국 끓여 먹고 있어요.”

산을 골고루 살펴보니 아주 좋았습니다. 앞은 호수요 뒤의 계곡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고, 산바람이 닿아서 더 좋았습니다. 이 산바람 때문에 줄곧 나중에 남편과 늘 티격태격했지요. 저는 독소를 가져가서 좋다고 하고 남편은 바람이 살을 애이듯이 불어 춥다고 했지요. 겨울바람이 7월까지 춥다고 했으니 친정 부모님은 이틀에 한 번씩 들리겠다고 했고요.

친정아버지께 남편의 벌침을 부탁했습니다. 왔다갔다 힘드시지만 그래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가고파라>산장 부부께도 지나가다가 보시면 쑥과 냉이 또는 민들레와 봄동 그리고 월동 무를 지나치지 마시고 캐다 주십사 부탁했습니다.

과일은 유기농 사과, 간식으로 고구마를 준비해 뒀습니다. 꿀은 친정엄마가 꿀을 딸 때 윗부분 잘라놓은 것을 가져다주신다 했고 동치미, 김장김치, 돌미나리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효소와 겨우살이 달인 물, 그리고 생각나지 않지만, 더 많은 종류의 효소와 약제가 있었습니다. 정읍 <가고파라>산장에 내려온 지 삼일 째 되니 남편 얼굴에 검은색이 거두어지고 화색이 돕니다.

부모님과 주인집에 남편을 부탁하고 돌아서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만 어찌합니까? 그래도 돌아가야 하는 것을요. 주인집에서 준 냉이즙은 마시니 향은 매우 강한데 기운이 나는 게 참 좋더군요. 몇 봉지 챙겨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에 오니 할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남편 자리를 돈이 차지합니다. 한 달 방값에 이중생활에 들어가는 비용, 남편 용돈, 왕복 교통비, 그곳에 가면 평균 30만 원에서 40만 원 정도 쓰게 되니 기본 생활비가 200만 원 정도 더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부어온 보험에서 약관대출을 받아 한 달씩 보태서 써야만 했지요. 남편 앞으로 들어놓은 생명보험이 있었는데 사망 시에는 1억 정도 나온다고 하더군요. 죽는다면 그 돈 무슨 소용이랴 싶어 차라리 남편 살리는 데 다 쓰자 하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어차피 쓰는 돈이라면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최선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돈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그동안 주식을 했던 것이 조금 있어서 700만 원 정도로 본격적으로 주식공부를 했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 정도만 벌리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밤에는 암 공부를 더 했고 그때 그네님과 홍연님과도 교류를 하고 있었지요.

암 공부가 늘 모자라서 책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저는 식이요법, 니시요법, 거슨요법 관련 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알로에 요법도 더 관심을 두게 되고요. 남편의 병 이전부터 바라본 것은 자연이 준 풀꽃이었지만 늘 모자랐습니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데…. 거기에 비파 찜질과 커피관장, 프로폴리스, 녹즙, 효소….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편의 상태는 그대로였습니다.

거의 한 달이 다 지나갈 무렵 주인집에서 사람을 만나달라고 하네요. 남편과 같은 간암인데 형님으로 모시고 삼 년을 그곳에서 지냈다고 했지요. 형님 부부가 제가 일하는 가게로 오셨는데 병원에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선고했다고 합니다. 방사선 치료를 한 달 가까이 받았고 이제 저희처럼 해보고 싶은데 용기가 없다고 하십니다.
저는 두 분에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남편은 지금이 지난번에 만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형 선고 달이라고 말했습니다.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지요. 그분은 남편과 함께 산에서 생활하겠노라 말씀하시고는 바로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반신반의했지만 정말 고맙게도 부부가 남편 옆방에 이사를 오셨어요. 비슷한 성격이지만 나이가 많으니 형님이요, 암을 먼저 알게 되고 겪으신 분이니 금방 친해졌지요. 서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로 마음으로 가슴으로 좋아졌습니다. 두 분은 산책도 같이하고 운동도 같이하고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즐거운 생활이 되었지요.

차가 생겨 남편과 둘이 친정으로 벌침을 맞으러 가니 부모님이 편해지셨고 보폭이 넓어진 만큼 투병 생활에 해이해지기도 했지요. 산에서 산야초를 채취하던 시간이 없어져 그곳에 가면 잠깐씩 해야 했고, 머무는 시간이 짧지만, 부모님도 곁에 계시니 들러야 했고 항상 시간이 모자랐지요. 남편은 더 모자랐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아내는 오밤중에 도착해서 떡이 되어서 곤히 자니 무어라고 말도 못하고…. 기다림에 목이 메다 보니 아이처럼 보채는 날이 많아지기도 했지요. 늘 기다림은 제 몫이었는데 어쩌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커피 물 끓여 줘라.”
“왜?”
“귀찮아.” “비파도 끓여줘.” “알로에 깎아줘.”

해달라는 일이 점점 늘었고 남편의 홈쇼핑 중독도 늘어만 갔지요. 다녀간 사이에 운동복만 네 벌을 샀고 옷도 몇 개를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림도 올 때마다 늘어납니다. 가고파라 주인집 말로는 택배가 자주 오는데 하루에 두 번이나 올 때도 있다고 전해줍니다.

남편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요. 거의 충동구매입니다. 필요 없는데도 꼭 사야 할 것 같아서 구매했다고 변명하는 남편의 방은 홈쇼핑으로 오는 물건들이 가득해 갑니다.

저는 그만큼 힘들었지만,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는데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사들이는 만큼 빚이 늘어만 갔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씩 마이너스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커피 관장을 열심히 하더니 복수는 점점 줄었고 몸이 가벼워지니 먹고 싶은 게 많아졌습니다.

옆집 아저씨와 함께 투병생활을 하면서 외로움도 덜 타고 함께 운동도 하고 하니 얼굴이 아주 편안해져 갔습니다. 복수와의 긴 싸움에서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정읍 <가고파라>에 내려가는 길은 제게도 즐거운 일입니다. 결혼하고 명절날 친정 한번 못 갔었습니다. 항상 명절 다음날에 가거나 그나마도 못 가는 때가 더 많았는데 남편이 친정 가까이 머무니 설날을 친정 식구와 함께 지내기도 했지요.

오랜만에 보는 친정 조카들과 올케들. 우리 아이들도 오랜만에 아빠와 시간을 갖습니다. 남편의 잔소리는 여전했지만, 한자리에 모인 가족을 보니 남편도 뿌듯해합니다. 명절을 지내고 나니 산 생활도 조금씩 적응이 되고 나오는 산채가 많아져 갔지요. 주인집에서 산을 개간해서 한쪽은 밭을 만들어서 채소를 심어 먹으라고 땅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선 옆집 아줌마와 함께 산나물과 효소 담기를 하고 녹즙도 함께 내어 자주 나누어 주니 남편이 점점 꾀를 부리고 자꾸 옆집에 의지하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빼놓지 않고 꼭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호법이랍니다. 네 발로 걷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드나 봅니다.
“운동 안 했지?”하고 물으면,
“아니야,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거짓말!”
“참, 내 봐라.”하며 둘이 밤에 동그란 원을 그리면서 다섯 바퀴씩 돌기도 했습니다. 실컷 돌고 같이 웃으며 방까지 기어올라가며 “우리 개 같다 그렇지?” 실없는 소리도 하고 서로 쳐다보며 웃고….

남편과의 즐거운 시간은 빨리도 지나가고 아랫방에 새로운 식구가 늘었습니다. 주인집의 친척인데 이후로 삼인 삼색의 투병생활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가고파라 안내>
위치 전북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730-5
연락처 063-538-5052
음식점, 황토방 민박 운영.

뒤로월간암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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