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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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으로 힘들었던 당신, 떠나라 GoGo
고정혁기자2009년 11월 12일 15:11 분입력   총 880481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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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돌을 아시나요?
충남 태안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자리한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서해안 끝자락으로 떨어지는 석양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을도를 가보셨나요?
초여름의 눈부신 햇살이 적당히 몸 이곳저곳을 데워주던 6월 초순의 주말 암환우들이 모여 태안의 어을도로 슈웅~ 떠났습니다. 열심히 투병한 당신! 떠나라 하면서 말이죠. 날을 제때 잘 잡아서 내려가는 길은 차 안에서만 장장 일곱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분에 사방 확 트인 밀폐된 공간에서 상호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마는.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들려 올 듯합니다. 한 치의 비뚤어짐도 없이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해변의 소나무 숲과 물때를 따라 들오고 나가던 바닷물과 보석이나 다를 바 없었던 해변의 돌들.

캠프 가기 전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몸이 힘들어지자 우울해졌고 우울감은 상실감으로, 무기력으로 이어져 허탈감으로 빠져 들어가려던 즈음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전환이 되어줄 기제가 필요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대접해준 고려인삼공사 사장님 부부와 직원들의 각별한 접대가 스러져가는 활기를 다시 일으켜주었습니다. 식사 때마다 각양 좋은 영양식에 더해진 사랑과 정성을 먹어서인지 다녀온 후로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개운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사랑보다 더한 명약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들의 가감 없는 헌신에 다만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담아 궂은일을 감당해주신 임들께 삼가 감사의 정을 담아 정중한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면면은 정말 다양하기도 합니다.
철저한 채식과 절도 있는 생활로 암환자들의 롤모델이 되어 가시는, 그래서 뵐 때마다 나이를 거꾸로 뒷걸음질하시는 늦깎이 만학도를 대하는 존경심은 풀어져 가는 맘 매무새를 여미게 합니다. 홀몸으로 귀촌하여 하루 종일을 야생초를 걷어 녹즙을 내어 마신다는 괌 총각님의 재활을 향한 노력과 열정이 주저앉아가는 무력감을 곧추세워주었습니다.
입이 찢어져라 웃을 수밖에 없는 웃음강사 박금순님의 눈물 빼는 웃음이, 천천히 고인 듯 흐르던 혈류를 깜짝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었습니다.
아! 무엇보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것이냐고, 맥없이 손 놓고 있을거냐?”고 진심 어린 충고와 염려를 해주던 젊은 언니 우리 임실장님의 찌르기가 더없는 명약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길을 걷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하늘을 이고 길을 걸어가는 일에는 다만 구별이 있을 뿐 차별은 없습니다. 길을 걸어가다 만난 가차 없는 소나기를 길가는 인생들은 누구나 몇 번씩은 맞닥뜨립니다. 암 투병의 길을 걸어갑니다. 언제나 고약한 이 길을 벗어날지 알 수 없는 이 길을 걸어갑니다. 터벅터벅, 지루합니다. 때로 벌컥 화도 납니다. 견고한 벽처럼 사방으로 에워싸인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을 텅텅 치게 하기도 합니다. 목숨을 연명하기 위한 이러저러한 가열찬 눈물겨움이 때로 얼마나 치사한 욕심처럼 생각되는지 번쩍 들어 모두 다 내동댕이쳐버리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 나는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환우들을 만나 웃고 먹고 떠들고 삶을 노래하고 절망을 위로하고 다시금 재활을 약속하며 희망을 나눕니다.

그대 그곳에서 나오십시오. 햇살 쏟아지는 광장에 나와 아픔을 다 드러내놓고 다시 살기를 연습합시다. 그 삶이 번듯하지도 거창하지 않을지라도 이 한 날은 너무나 소중하니까요. 이 날은 다시금 올 수 없는 단 한 날이니까요.
혼자 가는 길도 필요하지만, 같이 함께 가십시다.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면 이 길을 빨리 벗어날 좋은 지름길, 풋풋한 오솔길 새로 만들지도 모르잖아요.
어은돌 해변에서 모셔온 자갈돌들은 오늘도 내 발밑에서 밟힙니다. 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합니다. 뻣뻣한 다리는 1시간이면 나른나른 보들보들. 조그만 돌들의 힘이 대단합니다.

환우님들, 마음자리 쌩 찬바람 들이치거든 툭툭 자리 털고 나가십시다. 산으로 강으로 들로 사람들에게로 유쾌하게 웃고 떠들고 내 몸에 자꾸 기회를 주어 신선한 공기가 돌게 하십시다.

내 삶은 암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귀중한 것이기에….

뒤로월간암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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