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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와 활성산소
장지혁기자2014년 08월 31일 11:51 분입력   총 24430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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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는 유기물을 분해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호흡의 장소다.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키워드로 등장하는 화젯거리는 별로 없지만 그 존재와 역할은 인간의 건강과 장수를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우리는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산소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없으면 뇌도 심장도 근육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고마운 산소가 때때로 '활성산소'나 '유해산소'라는 이름으로 우리 몸에 해를 끼친다. 활성산소란 세포 호흡 과정 중에 미토콘드리아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산화력이 크고 불안정한 산소다. 우리가 산소를 들이마실 때마다 활성산소로 인해 세포의 구성 성분이 산화되어 손상되고 노화된다. 우리 몸에 내재하는 이 같은 모숨은 생물체가 살아남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다시 한 번 시간을 태곳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지구가 탄생해 38억 년 전에는 바다가 생기고 생명체가 나타났다. 그 후 핵을 갖춘 단세포생물이 등장하는데 이 무렵의 원시생물은 바다의 유기물을 섭취하며 살았다.

그때 지구에는 산소가 없었기 때문에 무기 호흡으로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다. 그들에게는 DNA나 단백질 같은 세포 속 물질을 산화시켜 파괴하는 산소가 맹독이자 적이었다.

바다에서 점차 유기물이 줄어들자 스스로 양분을 합성하는 생물이 나타났다. 이 생물들은 태양의 빛에너지를 이용해 당시 대기의 주성분이었던 이산화탄소와 주변에 풍부한 물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했다. 이 작용이 바로 광합성이다. 광합성의 결과 산소가 생성되어 대기 중에 증가했다. 마침내 대기의 주성분이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로 바뀌었다.

그 결과 산소에 민감한 10억 년 전의 생물체는 멸종의 위기에 내몰렸다. 이미 많은 무리들이 절멸한 상황에서 남은 생물체가 살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다. 몸속에 '산소의 독성을 해독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절박해도 그런 급작스런 진화가 일어날 리는 없었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미토콘드리아가 나타나서는 허락도 없이 원시생물의 세포 속에 들어가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는 원시생물의 포도당을 제멋대로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나약한 원시생물이지만 이런 뻔뻔스런 짓거리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침입자에게는 산소의 독성을 해독해 에너지를 만드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한 번에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숙주인 원시생물이 생산하는 에너지의 몇십 배가 될 정도다.

이쯤 되면 그냥 내쫓아버릴 수가 없다. 하는 짓거리는 밉지만 어쩌겠는가. 이 녀석만 있으면 산소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우선 죽음은 피할 수 있다. 이 녀석이 내 몸에 들어 있어도 평소에는 수소와 결합해 물과 이산화탄소가 생기는 것뿐이다. 어쩌다 활성산소를 내뿜기는 하지만 치명적인 것도 아닌데다 내 몸에도 미비하지만 안전장치가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일이다. 활성산소 따위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원시생물은 마침내 이 무례한 침입자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다. 미토콘드리아를 받아들이고 영양분을 제공하는 대신 산소가 내는 독성을 해독해서 에너지를 많이 만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침입자가 바로 지금 우리 세포 속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다. 원래는 독자적으로 생활하던 미토콘드리아가 원시생물의 세포 속에 기생해 함께 살게 되면서 하나의 세포 기관으로 분화되었다. 이를 '세포 내 공생설'이라고 한다. 세포 내 공생설은 간단한 세포 구조를 가진 원핵생물로부터 복잡한 구조를 가진 진핵생물로 진화하게 된 경로를 설명하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 미토콘드리아에는 핵 속의 DNA와 다른 독자적인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포 내 공생설이 나오기 4년 전엔 1963년에 스웨덴 스톡홀름대학의 마깃 나스(Margit M.K. Nass) 박사가 밝혀낸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하기 시작한 원시생물은 드디어 산소로 가득한 지구에서 살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산소를 이용한 '호흡'으로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다세포생물로, 포유류로, 인류로 진화했다. 원시생물이 미토콘드리아와 공생을 거부했더라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희생도 따랐다. 미토콘드리아가 뿜어내는 활성산소가 지금껏 우리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도 활성산소의 존재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20억 년이 지나도 그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진화를 통해 수명이 늘어나면 그만큼 활성산소의 해는 더 심각해진다.

만약 10억 년 전 원시생물이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의사가 처치 전에 환자에게 위험이나 부작용을 설명하듯 무언가가 원시생물에게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말이다. 혹시라도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지는 않았을까? 때늦은 아쉬움을 표현해본다.

연비 18배의 고성능 미토콘드리아 엔진
미토콘드리아를 자동차의 엔진에 비유한다면 마력은 ATP(adenosine triphoshate, 아데노신3인산)의 생산량에 해당한다. ATP는 세포 내 생명활동(영양의 대사와 운동 등)에 사용되는 에너지원이다.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저장해 전달하는 역할을 하므로 일종의 배터리인 셈이다. 뇌는 신체기관 중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이라서 뇌가 발달하고 건강하려면 ATP가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10억 년 전 원시생물이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하기로 결정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보다 미토콘드리아가 ATP를 훨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원시생물은 산소를 이요하지 않고 포도당을 분해시켜 ATP를 만들어냈다. 이 방식을 '해당계'라고 한다. 해당계는 효율이 낮아 1분자의 포도당으로 2ATP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반면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충분히 이용해 1분자의 포도당으로 36ATP나 생산할 수 있다. 이 방식을 '호흡계'라고 한다. 요컨대 해당계와 호흡계의 차이는 ATP를 만들 때 산소를 이용하느냐, 이용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해당계'는 생물이 긴급한 상황에서 ATP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자는 평소 초원에서 한가롭게 낮잠이나 자거나 어슬렁거리며 느리게 걷는다. 그러다가 배고플 때 먹이를 발견하면 맹렬한 속도로 달린다. 이럴 때는 호흡을 천천히 할 여유가 없다. 이때 해당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효율 낮은 해당계로 다량의 ATP를 만들다 보니 포도당이 금세 바닥이 난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피로물질인 젖산이 생기기 때문에 몸이 쉬 지치게 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사자는 눈 깜박할 새에 먹이를 차지하는 훌륭한 사냥 솜씨를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철새가 이동할 때는 장시간 계속 날아야 하므로 금세 연료가 바닥나는 해당계로 에너지를 얻는 것은 무리다. 이때야말로 미토콘드리아가 나서서 호흡계의 뛰어난 에너지 생산력을 발휘해야 한다. 더욱이 해당계와 달리 젖산이 생성되지 않아 피로도 덜하다. 이런 점은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하지 않았더라면 누리지 못했을 큰 이익인 셈이다.

미토콘드리아부터 늙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10억 년 전에 원시생물은 미토콘드리아와 함께 사는 것을 좀 더 신중히 결정했어야 했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와 공생함으로써 대체 어떤 불이익이나 피해를 받았기에 이렇게 두고두고 후회하는지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자.

DNA라고 하면 대개 세포의 핵 속에 있는 DNA(핵 DNA)를 가리킨다. 그런데 핵 바깥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독자적인 DNA가 있다. 이를 핵의 DNA와 구별하기 위해 '미토콘드리아 DNA(mt-DNA)'라고 부른다.

세포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미토콘드리아는 엔진에 해당한다. 미토콘드리아가 독립적인 생물이었을 때 엔진의 설계도는 미토콘드리아 DNA에만 있었다. 그러다가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와 함께 살게 되자 엔진의 설계도를 핵DNA와 서로 나누어 보존하기로 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엔진의 주요 부분의 설계도는 미토콘드리아 DNA에 있고, 그 밖의 상세 부분의 설계도는 핵 DNA에 있다. 핵 DNA는 그 설계도를 기준으로 세포 속에서 부품을 만들어 미토콘드리아로 운반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일종의 지점 같은 곳이라서 고장 난 부품을 수리하는 공장까지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미토콘으리아에는 손상된 유전자를 복구하는 기능이 없다. 이 점이 못마땅하지만 미토콘드리아가 배출하는 활성산소의 해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핵 DNA는 히스톤 단백질이 DNA를 감싸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거나 세포의 손상을 복구해준다. 그러나 미토콘드리아 DNA는 히스톤 단백질이 없어 그대로 노출돼 있다. 게다가 미토콘드리아 DNA는 미토콘드리아, 즉 엔진 안에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만들 때 발생하는 활성산소의 해를 직접 받아 쉽게 손상된다.

부상을 입은 미토콘드리아 DNA에 있는 설계도에는 자연히 오류가 늘어난다. 이런 상태로는 미토콘드리아를 새로 만들어내기도 곤란하다. 오류투성이 설계도로 만드렁진 불량 엔진 미토콘드리아는 더 많은 활성산소를 뱉어낸다. 미토콘드리아는 근육세포에 특히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약해지고 쉬 피로한 이유가 바로 불량 미토콘드리아가 배출하는 다량의 활성산소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토콘드리아가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면 그 여파는 세포 전체로 퍼진다. 세포질과 세포막, 핵 DNA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손상된다. 핵 DNA에는 손상을 복구하는 기능이 있지만 그 기능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손상 정도가 빠를 경우에는 세포 분열로 생긴 새로운 세포에까지 악영향이 미친다.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분열하는 암세포가 만들어진다. 미토콘드리아가 늙으면 세포가 늙고 조직이 늙어 결국 개체 전체가 노화된다.

추천도서: <당신 안의 장수유전자를 단련하라>, 쓰보타 가즈오,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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