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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 외할머니
임정예(krish@naver.com)기자2014년 11월 29일 14:00 분입력   총 172858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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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향진 | 음식연구가, (사)한국전통음식연구소 연구원, 채소소믈리에

흰 머리칼 가지런히 뒤로 모아 쪽진 머리, 잔뜩 주름진 얼굴, 거친 손마디와 구부정한 허리. 늘 웃는 얼굴에 드러나는 치아 없는 잇몸. 우리 외할머니의 외형은 그러했다. 특별할 것 없이 익숙한 시골 할머니의 모습 말이다.

아들 못 낳은 죄로 일찍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가 생전 후처 들이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줄줄이 네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홀로 노후를 외롭게 보내야했던 우리 외할머니는 엄마 말마따나 사람만 착하디착해서 늘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실속 없이 퍼주기만 하는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다.

엄마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친정집은 큰 대문에서 한참을 지나 작은 대문으로 들어가고 이후 마당을 가로질러야 비로소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으리으리하게 큰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초대면장을 지낸 아버지와 형제들 사이에서 유독 예쁨 받던 귀한 딸이었다는데 그 시절 으레 그렇듯이 집안어른들 뜻에 따라 시집을 갔고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쑥대밭이 된 친정과 한량인 남편, 네 딸을 건사하느라 젊은 시절 고생만 하다가 가슴에 멍이 들어도 누구 원망할 줄도 몰랐던 내 엄마의 엄마.

교통이 불편한데다 버스를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외가는 어린 내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상이 바쁜 어른들에게 골칫거리일 만큼 나는 외할머니 집에 가겠다고 자주 떼를 쓰곤 했다. 외할머니를 너무 좋아하는 나 때문에 엄마는 괜히 시댁 눈치를 볼 정도였다는데, 내 기억이 시작되는 어딘가부터 늘 혼자였던 외할머니가 나는 안쓰러웠던 것일까.

외가가 있던 곳은 내 또래 아이들이 훨씬 많은 동네였지만 낯선 아이들에 섞여 노는 것보다 외할머니와 노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 부득불 외할머니께 가겠다고 울고 불던 손녀딸이 어여쁜 외할머니는 누구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숨바꼭질에서는 꼭 외할머니가 술래를 맡았는데 그 작은 집 둘레만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숨을 곳도 많지 않았을 터인데 늘 찾기를 포기하셨고 나는 기다리다 지쳤다는 듯 쑥 나타나는 것이다. 소꿉놀이를 위해서는 온갖 그릇이며 도구들이 동원되었다. 꼼지락꼼지락 밥상을 차렸다하면 밥을 먹고 남편도 되었다가 아이도 되었다가 외할머니의 역할은 참 다양했다.

굴을 따고 게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거나 김 양식장에서 일을 해야 할 때도 어디든 외할머니가 가시면 그 곳이 내 놀이터가 되었다. 궁금한 것이 많은 손녀가 해대는 하찮은 질문에도 귀찮은 내색 전혀 없고 일터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예쁘고 총명한 손녀라 얘기 들을라치면 그렇게 뿌듯해하실 수가 없었다.

워낙 깔끔한 분이셨지만 손녀가 온다하면 집안 청소며 이불 빨래까지 다 새로 해놓고 미리 군것질거리도 마련해놓았다가 입이 궁금할 때쯤 이것저것 꺼내놓으시곤 하셨다. 실컷 놀고 폭신하게 깔아준 이불 위에 드러누워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면 기특하다 쳐다보시던 애정 어린 눈빛이 있었다. 종알종알 풀어내는 얘기에 일일이 대꾸해주던 다정한 목소리, 행여 모기에 물릴까 조바심치며 모기향을 피우던 바쁜 몸짓이 있었고 잠든 손녀 머리를 쓰다듬던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여름이면 더울까 잠들 때까지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고 겨울이면 추울까 이불을 여미고 머리 위로도 두툼하게 덮어 한기를 막고서야 안심하시는 외할머니셨다. 이른 아침, 손녀가 잘 먹는 음식을 준비하는 분주함 속에서도 빼꼼히 방을 들여다보며 막 잠에서 깬 나에게 장난을 쳐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자주 뵙지 못했고 연로한 몸에 병을 얻어 고생하시다 위독하다는 연락에 부모님이 급작스럽게 뵈러 가실 때만 해도 그리 돌아가실지 몰랐던 일이라 한참 학교에 다니던 우리 형제들은 임종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리 예뻐하던 손자손녀들을 못보고 먼 길 가셔서 맘이 서운하셨을 텐데 너무너무 그리운 우리 외할머니.

그 시대 여인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시대가 바라는 대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자신을 죽여야만 했던 안쓰러운 이름. 당신이 그리 예뻐하던 막내의 둘째딸이 손자손녀들을 위해 정성을 담아 준비하셨듯 그런 마음으로 요리를 하고 있다는 걸 하늘나라에서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계시겠지. 사랑하는 우리 외할머니께 살아생전 한 번도 차려드리지 못했지만 외갓집 집 담벼락 밑에 쉽게 보이던 호박잎과 뒤뜰의 풋고추와 직접 물을 주며 길러내던 콩나물을 재료로 온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하는 상차림.

외할머니께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셨던 손녀는 그 마음을 자양분 삼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뜻대로 즐겁게 살고 있노라고 올해가 가기 전 꼭 산소에 찾아뵙고 말씀드려야겠다.

쌈밥 & 견과류장

[재료 및 분량]
- 현미 1C, 호박잎, 200g, 양배추 200g, 물 1⅓C
- 견과류 쌈장 : 호박씨․ 땅콩․ 잣 10g씩, 청양고추 1개, 된장 1T, 참기름 1T, 고추장 1t, 매실액 2T

[만드는 법]
1. 현미는 4시간 이상 불려서 밥을 짓는다.
2. 호박잎은 겉면과 줄기의 질긴 섬유질을 벗겨내고 양배추와 함께 깨끗이 씻어 김 오른 찜통에 5분 정도 쪄 낸다.
3. 호박씨, 아몬드, 잣, 청양고추는 다져 놓는다.
4. 된장, 참기름, 고추장, 매실액을 팬에 살짝 볶다가 4번을 섞어 쌈장을 만든다.
5. 호박잎을 펴서 밥을 한입 크기씩 놓고 견과류 쌈장을 올려 돌돌 만다.

풋고추장떡

[재료 및 분량]
- 풋고추 5개, 홍고추 1개, 애호박 ½개, 밀가루 1C, 고추장 1T, 된장 ½T, 채소물 ½C, 식용유 2T

[만드는 법]
1. 풋고추와 홍고추는 꼭지와 씨를 제거하고 다지고 애호박도 잘게 다진다.
2. 채소물에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고추장과 된장, 다진 고추와 애호박을 넣고 잘 섞는다.
3.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올려 약한 불에서 부쳐낸다.

콩나물잡채

[재료 및 분량]
- 콩나물 300g, 당면 100g, 풋고추 3개, 국간장 3T, 조청 2T, 들기름 1T, 참기름 1T, 통깨 1T, 후춧가루 약간, 소금 약간, 물 1C

[만드는 법]
1. 당면은 찬물에 담가 불려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는다.
2. 콩나물은 소금을 넣고 찌듯이 익혀서 식혀 놓는다.
3. 풋고추는 꼭지와 씨를 제거하고 채 썬다.
4. 냄비에 물과 국간장, 조청, 들기름을 넣고 끓이다 당면을 넣어 윤기가 나도록 중간 불로 볶는다.
5. 채 썬 고추와 익힌 콩나물을 섞은 뒤 참기름, 통깨, 후춧가루를 넣고 잘 섞어준다.

뒤로월간암 201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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