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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사람으로 태어나 다행입니다
구효정(cancerline@daum.net)기자2015년 04월 30일 14:50 분입력   총 5312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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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아이들이 세계지도를 붙였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그 지도를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서 짧은 지식으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우리가 매일 밟고 있고, 숨 쉬고 있으며, 먹고 있는 지구를 너무 소홀하게 대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지구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너무도 작아서 아이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를 설명할 때는 돋보기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조그마한 나라에 살면서도 가 본 곳보다 못 가본 곳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냉장고 옆면에 붙어있는 사각형의 지구 그림이지만 그 그림이 얼마나 넓은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또 러시아 위쪽으로 바이칼 호수라는 곳을 보니 그 크기가 남북한을 합친 곳을 오려서 넣을 수 있을 만큼 넓은 호수였습니다.

지구는 정말로 넓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넓혀 우주로 눈을 돌렸습니다. 우주에는 별이 얼마나 많고 지구는 그중에 어디쯤 위치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빙성 있는 자료를 몇 개 찾았습니다. 우리나라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이렇게 구역을 나눈 것처럼 우주도 구역을 나누었는데 그것을 은하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은하계가 우주에는 대략 1,000억 개 정도 있으며 1개의 은하계에는 또 1,000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고 합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우주에는 1에 0이 22개 정도 붙어 있는 수치입니다. 말로 해보면 백 해 정도입니다. ‘해’라는 숫자는 조가 일억 개 있어야 1해입니다. 한마디로 ‘셀 수 없다’입니다. 사람이 평생 태어나서 밥만 먹고 숫자만 세어도 1억을 셀 수 없다고 하는데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를 세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상상이 안 됩니다.

어렸을 때 일요일 아침이면 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999’가 생각납니다. 어렸을 때는 신기한 탐험을 하는 일이 재밌겠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구라는 별의 아름다움과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때야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매우 철학적인 내용의 만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지성과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여행을 떠난 여행자입니다. 그 여행이 재미있을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으며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지만 지구라는 행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생명과 에너지를 나누어 줍니다.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여행은 계속됩니다. 이 여행이 끝날 때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미국에서 나이 80이 넘은 의사가 암에 걸렸는데 그분의 기고는 여행을 마치고 지구를 떠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귀감이 됩니다. 올리버 박사는 신경과 의사인데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눈에 암이 생겼습니다. 스스로가 의사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생긴 암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습니다. 눈에 생긴 암은 방사선 치료 등을 통해서 깔끔하게 치료를 했지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관리를 한다면 큰 문제없이 남은 생을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로 얼마 전 자신의 간에 암이 전이 되어 이미 간의 30% 이상을 암세포가 점령했고 남은 시간은 길어야 6개월 정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리버 박사는 평소에 좋아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을 떠올렸습니다. 흄은 65세에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1776년 4월 어느 날 하루 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습니다. 올리버 박사도 마치 흄처럼 짧은 기고문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는데 제목이 ‘나의 인생(My Own Life)’입니다.

그 글에서 올리버 박사는 자신의 삶과 죽음이 임박했을 때의 마음가짐 그리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해서 담담하게 글을 썼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이 무엇을 위해서 애쓰면서 살아 왔는지를 대략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올리버 박사는 지구라는 별이 좀 더 행복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면서 의사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구의 온난화 방지에 관심을 두었으며 바른 정치를 위해서 활동해왔고 중동의 전쟁 지역에 관심을 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습니다. 또 의사 일을 하면서 환자와의 관계를 써서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이 히트를 치는 바람에 인기 작가로 활동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일들에 손을 놓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제 이일은 후손들의 일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지구라는 별에서 남은 여행을 마치기 전에 해야 될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친구들과 더 교감하고 집중할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 하기, 조금 여유가 생기면 여행하기 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심경을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두렵다. 그렇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 받았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무엇보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에서 지각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혜택이었으며 큰 모험이었다.”

올리버 박사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의 의료센터에서 일하였고 지금은 뉴욕대학 신경학과 교수입니다. 지성과 교양을 갖고 품위 있는 삶과 죽음을 맞이하면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짧은 자서전은 인간 존재와 모습에 대한 귀감이 됩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지구별의 여행을 마치고 떠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요.
뒤로월간암 201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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