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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김진목의 건강칼럼 - 그림자 노동
고정혁기자2015년 10월 29일 15:04 분입력   총 14783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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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목 | 부산대병원 통합의학센터 교수 역임, 현재 진영제암요양병원 병원장, 대한민국 숨은명의 50, ‘통합암치료 로드맵’ 등 다수 저술

현대인들은 진동이 울리지도 않는데 진동을 느끼는 ‘유령 진동증후군’이라는 새로운 질병을 앓을 만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다. 이는 우리의 의식 속에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이라는 작업을 깔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때문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집중하지 못 하고 멀티태스킹을 하듯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들은 컴퓨터가 처리하고 인간은 좀 더 추상적인 일들이나 신속한 판단을 요하는 일만 처리하면 될 거라 믿었던 것이 현대에 와서 산산조각 났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비행기나 철도 예약은 여행사에서 해주었고 가게에서는 점원이 물건을 함께 찾아주곤 했지만 이제 이런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해당 분야 전문가나 회사가 부가서비스로 해주던 일을 우리가 직접 하는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은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급격히 늘었다.

몸만 바빠진 것이 아니다. 현대인들의 뇌는 더욱 바빠졌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1년 현대인이 하루에 처리하는 정보량은 1981년에 비해 5배나 많아졌으며, 그 양은 신문 175부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정보와 접하지만 그렇다고 5배나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쉽게 구분이 가지 않는 정보들의 홍수에 빠져있다.

온갖 정보들이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으려고 뇌에서 쟁탈전을 벌이는 정보 시대에 가장 긴요한 능력은 중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는 ‘주의력’이다. 우리가 자동차 열쇠, 지갑,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중요한 약속을 깜빡하는 경우 중 상당수가 이 주의력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릴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방해받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생산성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길 권유한다. 이 시간 동안에는 스마트폰도 TV도 모두 꺼두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특정 시간을 마련해서 일하는 것이 좋다.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이어폰을 꽂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보는데, 이는 좋지 않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에 집중하는 ‘생산성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암 환우들과 생활한 지도 어언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반인이나 환우들을 대상으로 자주 강의하는데, 강의 중 스마트폰 벨이 울리거나 울리지는 않더라도 통화를 하는 경우가 유독 암 환우 그룹에 많다. 일반인들은 대개 강의시간 중에는 휴대폰을 꺼두거나 진동으로 해두고, 혹시 전화가 오더라도 밖으로 나가거나 문자로 해결하는데 반해, 암 환우들은 강의장에서 전화통화를 시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는 말이다. 이는 그만큼 암 환우들이 집중력이 낮거나 주의가 분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오래 전 광고카피에 ‘휴대폰을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잠시 꺼두거나 통화를 보류하는 걸 참지 못 한다. 전화를 건 상대에게 결례를 하거나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강의 중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나중에 통화하자’는 말이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는 그만큼 대인관계에 있어서 종속적이라는 뜻이다.

자기 주도로 사는 것, 자기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인관계에서 만사가 내 뜻대로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내 뜻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는 흔히 발생한다. 그럴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를 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는 손해 보는 결정을 해버린다. 그러고는 그 결정을 오랫동안 마음에서 언짢아하며 몇 번이고 곱씹으니 바로 내 건강을 갉아먹는 스트레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필자도 남에게 싫은 표현을 잘 못 하고, ‘No’라는 말을 잘 못 한다. 그래서 내 뜻과는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고, 돌아서서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잘 잊는다. 잘 잊는 탓에 스트레스를 키우지 않으니 건망증이 내 건강을 유지해 주는 것인 것 같다.

남에게 바른 소리 못 하는 성격으로 스스로의 뜻과는 다른 결정을 하고는 그것을 잊지 않고 계속적으로 곱씹는다면 바로 암세포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성격 때문에 암을 키웠는데, 암을 치료하면서까지 그런 성격을 유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니겠는가? 성격을 바꿔야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혈기왕성한 사람들을 주위에서 자주 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심혈관계통 질환은 잦을지 몰라도 암에는 걸리지 않는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없다면 내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없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기는 하지만, 암 치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성격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

거절하지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한 팁이 있다.
결정해야 하는 모든 일들을 가까운 사람 핑계를 대고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다. 남자라면 ‘아내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라고 하고, 여자라면 ‘남편에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남편이) 하지 말라고 한다.’라며 거절하면 된다. 이렇게 거절을 통보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는 소심남(녀)의 경우에는 ‘나는 당신의 요청을 진심으로 받아주고 싶지만, 내 아내(남편)와 분란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도 된다. 어쨌든 거절하는 것이고, 거절한 뒤에는 속이 편안하며, 그 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듯,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의 리스트도 작성해서 할 일은 하고, 할 필요 없는 일은 깨끗이 머릿속에서 지워냄으로써 머릿속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도 없고, 집중력도 생긴다.

그림자 노동도 가능한 적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입원 중인 환자들을 보면 소일거리로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정보를 볼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는 증가한다. 전자파뿐 아니라 그림자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스마트폰은 가능한 멀리 하고 독서를 하는 등 생산성 시간을 마련할 것을 추천한다.
뒤로월간암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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