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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말하는 삶과 죽음의 지혜
임정예(krish@naver.com)기자2015년 11월 24일 10:49 분입력   총 16240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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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장자는 꿈속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닌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의 장자는 우쭐대면서 훨훨 날아다니는 한 마리 나비였다. 그리고 그냥 즐거울 뿐, 별로 그것이 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비가 나인 줄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스라쳐 놀라 꿈에서 깨어 보니 장자는 여전히 형체가 있는 나로 돌아왔다. 도대체 나는 나비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꾼 것인지 헷갈렸다.”

이 글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나비 꿈)입니다.

장자는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370년경에 태어나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가 중에 한 명입니다. 노자와 더불어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보통 노장이라고 하면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부릅니다.

우리의 삶이 한바탕의 꿈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글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나비 꿈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어디서부터 생겨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비가 나를 꿈꾸는 것인지, 내가 나비를 꿈꾼 것인지 아리송하다는 대목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의 세계이며, 우리가 돌아갈 고향은 따로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삶을 탐하는 것이 하나의 무엇에 홀려 정신을 못차린다라고 부정할 수 없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마치 어려서 고향을 떠나 타향을 유랑하다가 커서도 귀향할 줄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희는 애(융나라의 변경)땅의 국경지기의 딸이었는데 진나라로 시집갈 때 어찌나 울었는지 눈물로 옷깃을 적셨는데, 헌공의 왕실에 들어선 뒤, 왕과 푹신한 침상에 뒹굴면서 미식을 즐기게 되면서부터는 당초에 울고 불던 것을 후회했다.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이, 죽어 보니까 비로소 그 죽음이 편안하여 왜 죽기 전에는 살려고 발버둥쳤나를 후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

꿈과 현실은 더러 상반 된다.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이 되어 통곡하는 일도 있고, 꿈속에 울고불고 하더니만 낮에 사냥질을 하면서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꿈속에서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르고 그 꿈의 길흉을 점치기에 버둥거리다가 꿈이 깬 뒤에서야 그것이 한바탕 꿈이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큰 깨어남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 삶이 큰 꿈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뽐내고 자기가 명철하게 사물을 보고 있는 줄 안다. 그것뿐인가? 어떤 것은 높다고 추어올리고 어떤 것은 천하다고 업신여기니 얼마나 고루한 짓인가? 나도 지금 꿈속에 있다.”

장자가 바라보는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글입니다. 인간의 삶도 결국 하나의 꿈이며 그 꿈에서 깨어나면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무작정 안 좋은 것, 무서운 것, 그래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의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기야 우리는 기억에 의지해서 살아가는데, 태어난 기억조차 없는 죽음을 예견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는 삶의 태도에 많은 변화가 생겨납니다.

미국 코넬대의 칼 필레머 교수는 2004년부터 인류유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삶에 대한 지혜와 조언을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삶에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 총 1,500명을 인터뷰하여 설문조사를 했는데 질문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가장 많은 노인들이 대답하기를 ‘걱정하지 말고 살 걸 그랬다.’ 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결론이 비슷합니다. 걱정하는 일은 불필요하므로 걱정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리고 덧붙여서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하던 날이다, 이런 내용으로 기사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섣부른 결론이 아닐까요? 이 프로젝트를 이해할 때 장자의 지혜로 바라본다면 더욱 현명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바라보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시간은 언제든지 가고 또 오는 것이기 걱정을 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아마도 나이가 높은 어르신들이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걱정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뜻은 저 멀리 삶의 끝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명한 지혜가 겨우 시간을 아끼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기 위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간단한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 나비가 되어 훨훨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지는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장자와 칼 필레머 교수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아무 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라는 매우 간단한 내용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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