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에세이
[에세이] 원미산과 칡잎무침
고정혁기자2007년 12월 05일 18:04 분입력   총 879528명 방문
AD

하루비_대구에서 태어나 소설 <꽃잎의 유서>를 냈습니다. 하루비는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뜻하는 작가의 인터넷 ID명입니다. 최근에는 <경상도 우리 탯말>을 공저 출판했습니다. 소설을 쓰며 소소한 삶의 이야기도 잔잔히 그려내는 소설가입니다.


다산은 “가득 차면 반드시 망하고 겸허하면 반드시 존경받는다(盈則必亡 謙則必尊)”고 했습니다.
가득 채우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나로부터 조금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래 전부터 저녁 무렵이면 나는 산책을 하는 것이 습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무조건 동네를 처벅처벅 걷는 것이지요. 생각을 없애기 위한 걸음... 그렇게 몇 바퀴 정신없이 걷다보면 점점, 주먹만하게 뭉친 울혈 같은 것들이 내 안에서 낙엽처럼 흩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바람 속을 걸으면 응집력이 조금씩 사라져 나가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부터 습관적으로 어딘가 걸을만한 데를 찾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러더니 요즘은 도통했는지 매일 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못 견디게 좋아서 갑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하루가, 지난날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고 산소량이 많아서인지 우울감이 확 사라지는 걸 느낍니다. 숨이 끝까지 닿을 때마다 욕심과 아집들이 저 혼자 어디론가 달아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집에 앉아 명상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보다 글의 구상도 잘 풀리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나온답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도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면 응어리가 저절로 풀리는 걸 느끼지요.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며 걷다 보면 웬만한 문제는 실마리를 찾게 되더군요.
등산이나 산책은 생각을 정리해주고, 사람 간에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좋은 도구인 셈입니다. 자꾸 걷다보면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만족감이 내 몸 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낍니다. 점차 육신이 피곤해지면서 동시에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랄까요?

위대한 사람들은 산책한 시간만큼 글을 썼다고 합니다. 칸트도 산책을 즐겼고, 니체 또한 걷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가능한 앉아서 지내지 마라.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게 아니라면 어떤 사상도 믿지 마라. 그 사상의 향연에 몸이 참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니체의 말입니다.

사람이 늘 긴장을 하고 최선을 다 하면서 지낼 수는 없으니 긴장을 한 시간만큼 풀어주고 느긋하게 지내는 시간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줄을 풀어두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그냥 사랑하는 것이 정말 사랑하는 것이 아닐지요. 걷는다는 일, 그 자체에 만족합니다. 항상 목적 지향적으로 살수는 없지요. 그저 걷는 것입니다. 한쪽에 더 빨리 효율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또한 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창강선생님을 따라 관악산에 다녀왔습니다. 못 견디게 가보고 싶어 관악산에 한번 데려다 주십사하고 제가 요청을 했습니다. 창강님의 문자가 이렇게 왔었습니다. <꼭 데려갈게요. 산은 용서를 가르치거든요.>

관악산은 산길이 워낙 가팔라 숨이 턱에 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오듯 떨어졌지만, 창강님의 뒤를 열심히 따라 붙어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요즘 제가 매일 다니는 원미산에 비해 관악산은 계곡도 있고, 기암 절벽, 바위들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연휴라 길이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통에 괴로웠어요. 혼자 무섭지 않을 만큼 등산객이 오락가락하는 조용한 원미산의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소리가 금새 그리워졌습니다. 관악산 사람들은 왠지 정이 가지 않았어요. 서울 사람들의 북새통에 산도 세련이 되어 내 눈엔 사람이고 산이고 모두 깍쟁이들 같았습니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느끼지 못하겠으니, 거참...

그에 비해 때묻지 않아 약간 시골스러운 원미산은 요즘 밤알이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밤이 떨어지는 소리에 책 읽기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저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나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작은 밤알을 몇 개 주어 다른 사람들처럼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까서 먹었습니다. 시중에 나오는 밤알보다 많이 작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약간 큰 구슬만한데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원미산 밤보다 더 맛있는 밤은 없어요." 하던 어느 등산객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고요할수록 뚜렷하게 보이는 게 있습니다. 원미산은 바람 품은 나무처럼 홀로 조용히 흔들리며 보였다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서 좋습니다.

며칠 전엔 울창한 줄기를 길게 뻗어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가는 칡잎을 보고 금광을 발견한 사람처럼 나 혼자 손뼉을 딱 쳤습니다. "야아, 이거다!" 초록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칡잎만 골라 조금 뜯어 부리나케 돌아왔지요.

이번에 일주일 단식을 끝내고, 보름 가까이 거의 음식의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생리반응에 초월이 되어 가는 것일까요. 맛있는 음식도 없고, 배가 고파도 먹고 싶은 음식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침을 돌게 하는 못 잊던 맛이 거기 있었던 것이지요.

<칡잎 무침>은 부드러운 칡잎만 골라 끓는 물에 삶아서, 된장 한 큰술, 마늘, 참기름, 통깨를 넣어서 바락바락 버무려서 먹습니다. 약간 거칠고 투박하지만 씹는 맛도 좋고, 어느 반찬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머니의 향내가 나는 자연의 맛입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추억이 담긴 인정 많은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어머니의 맛. 그 눈물 같은 맛을... '칡잎 무침'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표현한 분이 생각나서 잠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가슴이 찡하게 아파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지요.
그 분과 함께 먹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대 품이 내 품이 얼마나 깊다 하랴 얼마나 넓다 하랴.
눈어림으로도 잴만한 작은 웅덩이이거늘.

뒤로월간암 2006년 11월호
추천 컨텐츠 AD